드라마

사랑비 - 진부한 어른이 민망한 신세대의 옷을 입다.

까칠부 2012. 4. 24. 10:24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자식들과 어울리겠다고 젊게 차려입고서 젊은이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낸다. 반갑기도 할 테고, 우습기도 할 테고, 그보다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민망할 것이다. 아무리 흉내를 잘낸다고 해도 그것이 본질일 수는 없을 테니까. 본질을 흉내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80년대의 정서를 담아낸다. 90년대도 아니다. 90년대의 정서는 보다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그에 비하면 드라마는 70년대의 배경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서정과 낭만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김윤희(이미숙 분)는 3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병을 앓고 있고, 서인하(정진영 분)는 그에 대한 보상이기라도 한 듯 그런 그녀를 모른 채 사랑하고 있다. 병을 알기에 상대를 떠나보내려는 비련과 그런 상대를 모른 채 사랑하고 있는 순정, 사랑이란 동화일까? 현실의 치열함이나 추악함과는 상관없이 사랑이란 한결같이 아름답다.


물론 나이가 나이이니 그렇게 사랑이란 마냥 동화같지만은 않다. 이미 서인하에게는 이혼한 전처가 있다. 아들 서준(장근석 분)의 어머니다. 동화같은 사랑이었지만 한때 그의 아내엿던 백혜정(유혜리 분)이나 아들 서준에게 그것은 차라리 저주와도 같았다.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여전히 죽었다고 여기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백혜정에게는 그것이 큰 상처로 남았고, 부모가 서로 상처입히며 그 상처를 후비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 서준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럼에도 서인하는 아직도 김윤희를 사랑하며 그녀와의 못 다 이룬 사랑을 이루고자 집착한다. 과연 그로 인해 크게 상처받았던 백혜정과 서준의 입장과 감정이란 어떻가겠는가? 그들에게도 그것은 동화였을까?


차라리 서인하와 김윤희가 주인공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3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여전히 사랑하는 두 남녀와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이 만나게 한 또다른 인연들이 서로 얽히며 곰삭아간다. 동화같은 사랑과 결코 동화가 될 수 없는 현실, 순수하고자 해도 더 이상 순수할 수만은 없는 나이다. 그같은 현실이 자신을 붙잡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순수하려 한다. 과연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했을까? 라푼젤은 마녀를 죽이고 왕자를 따라가 행복하게 살았을까? 심청은 비천한 신분으로 황후까지 되어 문제없이 편안한 말년을 맞았을까? 그랬다면 서인하와 김윤희의 70년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고풍스런 대사들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자식들이다. 아마도 신세대의 통통튀는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그들의 삶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하지만 역시 그들 세대에서도 사랑이란 동화였다. 그대로였다면 좋았다. 사랑이란 동화다. 혹은 사랑이란 욕망이며 현실이다. 어느것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 무리하게 신세대의 정서를 흉내내느라 과장된 몸짓과 말투를 보이던 어느 시대착오적 자품을 더올리게 만든다. 어색한 신세대 기믹조차 사실은 상당히 고전적이다. 고루하고 진부한 전형적인 클리셰다. 그런데도 과도한 작가의 의도가 드라마로 하여금 동화조차 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동화는 아름답기라도 하다.


물론 드라마란 판타지다. 사랑이란 가장 순수한 동화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꿈꾼다. 무엇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을. 그랬다면 좋았다. 시대를 고스란히 2010대로 옮겨다 놓고 단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순수한 사랑을 한다. 세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들은 부모의 세대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그들은 순결하다. 하지만 무리하게 덧씌워진 시대의 기믹이 도리어 그같은 인물들의 감정마저 간섭하고 들어온다. 모호하고 설득력이 없다. 필연이 없다.


인물들의 감정에 절박함이 없다. 간절함도 없다. 어떻게든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다. 그것이 70년대 부모세대와 다른 점이다. 현대에 와서도 그들이 부모세대와 다른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서인하와 김윤희의 늦은 사랑에 관신을 갖고 연민을 보내게 된다. 그들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어야 하는 백혜정의 현실에 동정을 보내게도 된다. 그러나 지금 서준과 정하나(윤아 분)가 헤어진다고 해서 무슨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을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뻔한 관념처럼 젊은 세대는 살아을 모른다. 단지 가볍고 얕게 서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긴장이 없다. 긴장이 없으니 기대도 없다. 장근석은 매력적인 배우다. 윤아 또한 마찬가지다. 매력적인 남녀가 만나면 그 자체로 판타지가 된다. 그것이 없다. 그저 만나고 습관처럼 토닥거리다 헤어진다. 술에 취해 진심을 내뱉고, 우연처럼 키스하고, 운명처럼 다시 만나 진한 키스를 나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인식해도 그런 모습들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란 어렵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 작가가 사랑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작가의 머리와 글 속에 있다.


낮은 시청률에는 이유가 있다. 그나마 그동안에는 영상이 아름다워서라도 만족하고 있었다. 진부하지만 고전적인 대사들에 아련한 그리움조차 있었다. 문제는 장근석과 윤아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서준과 정하나의 사랑이야기다. 가장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이유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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