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10년 안에 돈벌어 지을 거야, 남자 꿈을 짓다.

까칠부 2012. 5. 7. 07:36

집이란 삶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의 삶의 그곳에 있다. 일을 하고, 사랑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성공도 거두고, 실패도 겪고, 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오는 곳이 집이다. 돌아와 다시 다음날이면 새로운 일상을 찾아 떠나간다. 삶이 시작되고 결국 모든 삶이 수렴된다. 삶이 그곳에 있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따라서 삶을 설계한다는 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 전문건축가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다시 말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기존에 이미 지어진 집에 자기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게 집이 맞춘다. 그렇다면 내게 맞는 집은 어떤 집인가?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순수한 욕망이고 욕구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솔직히 감동이었다.


"테라스에서 보통 아빠와 딸이 화해를 해. 집안에서 싸우고 테라스에서 화해를 한다구."


김태원이 그리는 삶의 모습이 어렴풋 보이는 것 같았다. 


김태원에게는 딸이 있다. 아마 요즘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것이다. 사춘기가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또래의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무리 사이가 좋다고 해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만큼 갈등과 다툼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때로 부딪히고 싸운다. 하지만 결국 집안에서 싸우더라도 테라스에 이르면 너른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냉정을 되찾고 이성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다툼이란 끝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느 사람과의 사이에서 싸움이란 단지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해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기회일 뿐이다. 서로 다르기에 다투게 되었다면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서로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던 오해를 풀어간다. 그려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얼굴까지 붉히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던 아버지와 딸이 어느새 테라스에 이르러 얽힌 감정을 풀어가는 모습이.


김태원에게 집이란 곧 가족이었다. 벌써 몇 년 째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있던 그가 다시 가족과 함께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장소였을 터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읽힌다. 더불어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를 보게 된다. 그같은 간절한 바람이 그의 집에 적절히 녹아들고 있었다.


아마 집이 삼각뿔 형태를 띄는 이유였을 것이다. 삼각뿔은 최소한의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입체다. 다시 말해 그 내부공간이 가장 좁다. 그래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가장 좁은 공간에서 모든 가족이 함께 살려 하니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원은 넓다. 인위적인 좁은 공간과 최대한 자연을 살린 바깥풍경은 김태원의 내면을 보는 듯하다. 가장 윗층에는 하늘과 연결된 창이 있다. 가족간의 갈등도 그렇게 보다 넓은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함께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윤형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계단 옆면에 빛이 들어옵니다. 계단을 내려오면 늘 후광이 비추는 거에요. 누워 있다가 무심코 계단을 보면..." 


놀라웠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동선까지 고려해가며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일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아니 자기를 위해서다. 자시이 연인의 모습을 항상 더욱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더구나 집의 컨셉 자체가 하트 - 사랑이었다. 명실상부한 러브하우스였다. 윤형빈의 연인 정경미에 대한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집이었다.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는 과연 그렇게까지 사랑한 적 있었는가?


이경규의 집에서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이경규다운 계획과 바람이 전해지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할 일이 없으면 안됩니다. 할 일을 만들기 위해서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붕어도 키우고, 2층에 와서 매일 자려고 하면 서울에 있지요?"


다른 멤버들과도 구분되는 평범한 집의 외형과 마찬가지로 그 집에서의 삶 또한 매우 구체적이다. 현실적으로 너무 멀리는 아니고 가까운 근교일 것이다. 방송은 나이 먹어서도 하나 이상은 하고 있을 것이다. 비는 시간 만큼 대신 동물을 키우며 소일거리를 만든다. 그런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들과의 어울림도 있을 것이다. 아마 아내와 딸이 찾지 않을 것이라는 투정같은 체념 뒤에는 그런 자신의 바람을 이해해주기 바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살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내가 가족을 지켜주었다면 이제부터는 가족이 나를 지켜준다. 나이를 먹으면 남자는 약해진다. 아무래도 주위에 의지하려든다. 많은 남자들이 바라는 꿈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지금까지 삶 만큼이나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한 가족들의 배려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방송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 역시 이경규답다 하겠다. 그때도 필자는 이경규의 팬으로 남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멤버들이 각자 구상해서 모형까지 완성한 집들을 보며 멤버들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닌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멤버들 자신들의 과거의 기억이며, 미래에 대한 바람이며, 현재의 그들의 의식하거나 혹은 의식하지 않은 솔직한 본모습일 터였다. 특히 양준혁의 경우 아직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장차 자기가 살 집을 지으라 하는데 그 집에서 함께 살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당분간 좋은 소식은 없을 듯하다. 집의 디자인은 야구인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다. 가장 현실에서 보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김국진은 반면 좋은 소식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김국진의 집은 얼핏 김태원의 집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내부는 방과 마루가 원을 그리며 이어짐으로써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나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정원은 외부가 아닌 집 내부에 있다. 최소한의 내적공간과 최대한의 외적공간으로 이루어진 김태원과는 달리 무한의 내적공간과 단절된 최소한의 외적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걸 흔히 자폐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방이 여럿이라는 점에서 그 방에 들어가 살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과연 김국진다운 집이었을 것이다.


이윤석은 가부장적 몽상가 스타일이었다. 장차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지으라는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아내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 있다. 대신 구상한 집을 보고 있으려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위적이기까지 하다. 평행우주론까지 나오며 아예 집이 아닌 추상적인 작품을 보는 것 같다. 그야말로 대학교수까지 지내고 있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가족에 대해서는 지극히 가부장적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고 순수하다. 대신 지식인다운 추상화와 지적허영심이 조금은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살고 싶은 집이었다. 필자도 곡선을 좋아한다.


전현무는 어째서 그의 예능스타일에 대해 항상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에 의문을 내보이는가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그의 집을 통해 찾아볼 수 있었다. 결국 다른 멤버들은 모두 자기가 장차 살고 싶은 집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그만이 오로지 어떤 이상화된 유희로서의 디자인을 쫓고 있었다. 이런 집에서 살아보면 재미있겠다. 그는 어쩌면 쾌락주의자일 것이다. 자신의 호기심과 충동에 충실하다. 자기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이 가장 우선한다. 아나운서이면서 오히려 예능인보다 더 예능출연이 잦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단지 그같은 말이나 행동에서 진지한 공감을 끌어내기란 무리다.


고작 새로 가구를 하나 놓는데도 여러가지 신경쓸 것들이 많다. 집의 전체적인 구조나, 기존의 가구들의 배치, 무엇보다 자신의 동선이다. 나는 어떤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다른 가족들은 어떠한가?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그리 자리를 찾아들어가기도 한다. 똑같은 규격화된 아파트임에도 집마다 풍경이 다르고 느낌이 다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물며 집을 지을 때는 어떠했는가?


문득 필자 자신도 머릿속으로 집을 그려보았다. 직접 만들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어떤 집에서 어떤 삶을 누리며 살고 싶은가? 이것저것 갖다붙이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은 일부러 뺀다. 이런 즐거움일 것이다. 당시 내가 머물고 있는 곳과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들.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까지. 언제고 반드시 내 손으로 집을 지어 바라는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꿈이지만 꿈을 꾸는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재미있다.


역시 <남자의 자격>은 멤버들을 한 데 모아놔야 재미가 생겨난다. 각자 흩어놓으니 조용한데 모아 놓으니 왁자하다. 이경규와 김태원이 소중한 이유다. <남자의 자격>의 절반 이상을 이 두 사람이 담당하고 있다. 어떻게든 이야기거리를 만든다. 스스로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다른 멤버를 공격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준다. 김태원의 비판이야 말로 가장 처절하다. 의도를 부정당한 멤버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예능다운 재미를 불러온다.


담담하지만 의미깊다. 지루한 모향작업에 지루해하고 지쳐하면서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전현무는 순간 집중력을 잃은 듯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단지 모형을 만든다는 자체만으로도 꿈을 꾸는 그 열정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30년을 자신의 집을 짓겠다는 목적으로 살아오신 김태원의 아버지의 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은 살아간다.


10년 안에 반드시 돈모아서 지으리라. 가족을 만나는 꿈이 있다. 결혼에 대한 희망과 설렘도 있다. 인생을 마무리할 나이의 조심스러움도 있다. 이제껏 지나온 길들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가 있다. 몽상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름답다는 것.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다. 마음이 다 흐뭇하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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