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문제일 것이다. 아이를 낳으라 한다. 너무 아이를 낳지 않아 문제라며 어떻게든 아이를 낳으라 독려하고 강요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어쩌란 말일까? 낳기야 어떻게든 낳는다지만 낳고 나면 기르는 것은 누가 할까? 시할머니가? 시어머니가? 아니면 친정어머니가?
그나마 시부모나 친정부모가 아이를 대신 돌볼 수 있는 경우라면 조금은 낫다. 아니 그조차도 그것이 다시 고부갈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아이보다 일이 더 소중하다. 자기 자식인데도 자식을 돌보는 것보다 자기 일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결국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유럽에서 출산률이 최근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도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더 이상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도록 되고 나서다. 얼마든지 자기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회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따른 비용을 최소화한다. 그 최소화된 비용마저 사회가 대신 상당부분을 지불한다. 여성은 단지 자기가 낳고 싶을 때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된다. 최소한 일단 낳으면 기르는 것은 자기들이 대신 책임져 줄 테니 낳기만 하라는 시할머니(강부자 분)와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와 같은 그만한 노력과 배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과연 아이를 낳고 나서도 차윤희(김남주 분)는 지금과 같이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는가? 남편 방귀남(유준상 분)은 또한 아이가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전처럼 차윤희만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차윤희의 망상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체험에 기초한 한국여성의 보편적 두려움이다. 차윤희가 처음 돈많은 고아와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고 시집살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릴 때 그를 질투하면서도 부러워하던 그것이다. 드라마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참 얄궂을 것이다. 결국 결혼하며 친정부모다. 자기에게는 친부모지만 결혼하고 나면 친정부모가 된다. 그런 친부모를 위해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하자고 찾아온 자리에서 친정부모를 먼저 찾아뵈어야겠다는 올케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그러면 결혼하고 나서는 친정에 아예 발길을 끊을 것인가? 그런데 여기에 또 적용되는 논리가 있다. 그게 경우가 같은가?
차윤희의 친정엄마인 한만희(김영란 분)나 시어머니인 엄청애나 마찬가지다. 자기에게는 며느리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딸일 것이다. 자기에게는 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며느리다. 며느리인 민지영(진경 분)을 대하는 것과 딸인 차윤희를 대하는 것이 다르다. 며느리인 차윤희를 대하는 것과 딸인 일숙(양정아 분)과 이숙(조윤희 분), 말숙(오연서 분)을 대하는 것이 다르다. 결국은 그와 같은 평면적인 인식과 대응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딸이면서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며느리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남편이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동료일 것이다. 여러 일면이 있는 것을 이해한다. 그에 따른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음도 받아들인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드라마에서도 결국 그 다양한 일면에 대해 어느 일방만을 요구하려 들고 있다 보니 문제가 커지는 것 아니던가.
내가 지금껏 해오던 방식대로. 내 경험에 비추어.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그러나 차윤희는 시할머니도 엄청애도 아니다. 그들이 그랬다고 차윤희까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체험이 오히려 인간의 사고를 제한시킨다. 관습이 오히려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억압한다. 과거에는 그것으로도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계는 커졌고 다양해졌고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다. 막는다고 막혀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예전의 방식만을 강제하려 한다. 더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차윤희가 영악한 이유다. 남편인 방귀남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다. 방귀남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속엣말을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다. 그는 영리하다기보다는 자기의 상식에 충실한 사람이다. 상식이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결론을 뜻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차윤희는 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행동한다. 친정엄마에게는 딸로,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로, 시누이들에게는 올케로, 남편에게는 아내로. 그녀가 주인공인 이유다. 그녀가 겪어야 하는 위기나 곤란 만큼이나 그녀의 대처는 참으로 훌륭하다. 드라마 제작프로듀서란 괜히 주어진 직책이 아니다.
작은아버지 방정배(김상호 분)가 다시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 없는 살림에 짐이 무겁다. 남자는 남자다. 지켜할 가족이 생기자 어떻게든 살기 위해 돈을 벌려 거리로 나선다. 지하철 행상에 신문배달까지. 차윤희가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방귀남이 자칫 지나치게 부성이 깨어나는 바람에 보통 남자가 되지는 않을까. 어쨌거나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그 모습이야 말로 우리사회의 진정한 아버지상일 것이다. 방귀남의 세련됨과는 다른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맛이 있다.
방귀남이 아버지 방장수(장용 분)로부터 빵만들기를 배우겠다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이 자기 일을 대단하다 말하며 그것을 배우고 싶다 말한다. 아직 아이가 없어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기쁠 수는 없지 않을까? 가업으로 물려받지는 않더라도 빵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유전자만이 아닌 그같은 삶에 관한 모든 것을 물려주고 물려받는다.
효도는 셀프다. 결국은 형식이 아닌 내용이다. 무엇을 주는가보다는 그 무엇을 무엇으로 채우는가다. 무슨 대단한 귀한 선물을 주어 효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아들이 찾아와 빵만드는 법을 배우겠다 말한다. 그동안의 잃어버렸던 30년의 시간을 솔직하게 담담하게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들려준다. 제비뽑기가 자못 긴장되고 설레기도 한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거나, 일을 도와주거나, 혹은 등산을 같이 하는 정도지만 그 진심이 고맙다. 둘째 작은어머니 장양실은 끝내 울고 만다. 용서해주겠다는 말이 그리 서럽던 까닭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은
어쩌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허술했다. 제대로 눈물을 쥐어짤 수 있었던 장면이었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생략하여 보여줌으로써 여상하게 드라마에 녹여낸다. 여기까지가 딱 좋다. 너무 능숙해지면 드라마의 룰이 깨지게 된다. 한 아이가 부모도 모르는 사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첫사랑도 하고 다시 부모를 찾아오기까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나의 드라마속의 드라마다. 잃어버렸던 30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감동을 넘어 감격이다.
이숙(조윤희 분)의 첫사랑 규현(강동호 분)이 이숙에게 결혼까지 앞두고 느닷없이 고백을 해 온 것은 새삼스럽게 그녀에 대한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주위에서도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서 자주 보게 된다. 그동안 사귀는 동안에는 좋았다. 그러나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이란 동거와도 또 다르다. 공식적으로 서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서로를 자기 사람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부담감이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결혼에 대한 불안을 불러온다. 그런때 옆에 예전에 좋아하던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런 난리도 없다. 차윤희가 시집식구들을 찾고 매일같이 망상속에서 보내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니다. 결혼이란 때로 버거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냥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넋두리다. 하소연이다. 책임을 돌리고 싶은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숙에게 계기를 만든다. 결국 규현과는 서로 완전히 결별하는 수밖에 없다. 작은 미련조차 남겨서는 안된다. 결혼식장에도 찾아가지 않으려 한다. 천재용(이희준 분)에게도 기회가 될까?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싫어하는 옹졸함이 그런 나약한 이숙의 모습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감정을 전하는데도 서툴다. 이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역할이다. 3각관계 4각관계를 만들려 해도 이숙의 캐릭터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숙(오연서 분)의 눈물이 애처롭다. 어째서 말숙은 그렇게밖에는 살지 못하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숙은 더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바르게 살고 있다. 막내인 탓이다. 아무래도 막내란 것이 자꾸만 주위에 응석을 부리게 된다. 모든 것이 응석이다. 당연히 받아주리라. 제대로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는 차세광(강민혁 분)에게 그녀가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결여되어 있다. 중요한 때 곁에 있어주지 않은 어렵기만 한 아버지가 아닌 응석을 받아주고 하소연을 들어줄 아버지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어머니를 찾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아버지를 찾는다. 그냥 막내인 것이다. 당연히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면 상실감은 더 크다. 말숙과 엄순애(양희경 분)는 그래서 상당히 닮아 있다.
윤빈(김원준 분)은 스타다.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게 된다. 단 한 사람의 팬만 있어도 그는 바로 그 한 사람의 팬에게 있어 스타일 것이다. 스타는 동정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팬에게 인기를 구걸해서도 안된다. 인기를 구걸하는 것은 단지 인기연예인일 뿐이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물의 포스를 느끼게 된다. 차라리 동정받기보다는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혼자만의 스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과거 자신의 매니저로서 잘나가는 기획자로 성공한 이수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바로 그것처럼 말이다. 최소한 자기의 마지막 팬인 일숙(양정아 분) 앞에서는 과거의 윤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앨범 내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히트곡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스타로서 자존심을 지키는가 지키지 못하는가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신의 팬들에 대해 스타로서 자기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보같을 정도로 서툴다. 하지만 그런 서툰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영악하다. 윤빈같은 바보도 필요하다. 하필 양정아의 전남편이 영리하게 이익을 찾아 떠났던 남남구(김형범 분)라는 사실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마 일상의 우화일 것이다. 차윤희가 겪는 모든 일들이 모드 현실에 있는 것들이다. 차윤희와 주위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현실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다. 침잠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미덕이다. 가벼우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곰곰이 씹고 있다 보면 작가의 사려깊음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과연 몇 마디 글로써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지. 항상 쓰기가 부담스럽다. 그렇게 잘 쓴 잘 만든 드라마다.
재미있다. 웃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하게도 된다.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그 안에 그 만큼이나 다양한 진실이 있다. 역설도 존재한다. 복잡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필요한 만큼, 그러나 나머지마저 적절히 알뜰하게 써먹는다. 효율이 좋다. 재미 이상의 감탄이 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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