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에고다. 가장 지독스런 이기다. 모두가 반대한다. 부모와 가족, 친구, 주위의 모두가 심지어 사랑을 하려면 모두를 포기하고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모두를 포기하고서라도 사랑을 한다. 이보다 더 지독한 이기가 어디 있을까? 때로 사랑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무너져도 서로 이미 사랑한다면 사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당연히 폐를 끼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존재한다. 자식을 위해 살아간다. 부모란 그런 존재다. 마냥 기대고 응석을 부린다. 마음껏 바라고 떼를 쓴다. 오히려 부탁하기가 미안하고 신세지기가 꺼려진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뜻이 된다. 부모를 믿기에 응석을 부리고, 부모의 사랑에 대해 확신이 있기에 떼를 쓴다. 부모를 믿지 못하는 아이는 결코 응석을 부리지도 떼를 쓰지도 못한다. 일찍 어른이 되지만 그만큼 외롭고 사람을 쉽게 가까이 하지 못한다.
사랑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에로스와 아가페는 결코 둘이 아니다. 이기와 이타도 사랑이란 감정 안에서 하나가 된다. 내가 사랑하니 상대도 나를 사랑한다 믿는다. 내가 상대를 믿는 만큼 상대도 나를 믿는다. 그래서 응석을 부린다. 떼도 쓰고 무리한 부탁도 한다.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며 그러고도 다시 멋대로 기대한다. 어쩌면 환상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환상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환상이다. 그래서 허영만의 만화 <타짜>에서 스토리작가 김세영은 주인공 곤의 입을 빌어 사랑을 구라라 정의하고 있었다. 구라란 전문도박꾼이 사기도박을 하며 쓰는 기술을 일컫는 속어다. 결국은 상대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허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허구지만 그것을 믿고 인식할 때 그것은 또한 실체를 갖는다. 사랑하기에 사랑은 존재한다.
당연히 내가 원한다면 상대도 원한다. 내가 후회없다면 상대에게도 후회란 없다. 그만한 이기는 있어야 비로소 사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의 입장따위 상관없이 내 좋을대로만 하고서도 상대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 과연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란 가능한가?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 순간 후회가 없다면 되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고, 아버지는 연인에게 응석을 부린다. 딸도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린다. 우리 제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거짓말을 못한다. 30년만에 만난 연인에게 서운할 수 있는 말을 건네는 그 순간에조차 서인하(정진영 분)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
누가 무어라 하든 두 사람은 이미 사랑하고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두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이다. 아버지도 상관없다. 어머니도 상관없다. 친구와 주위사람들 전혀 아랑곳없다. 오로지 맹목적으로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심지어 남매가 되자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부모의 결혼에 남매가 되어서라도 함께 있기를 바란다. 비논리가 논리가 되고 모순이 개연성을 갖는다.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설명되고 납득된다. 결국은 부모가 져줄 수밖에 없다. 바로 그들의 부모인 때문이다. 김윤희(이미숙 분)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혼을 깨려는 서인하조차 그녀는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할 것은 없다. 모두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므로. 기쁨이 없다면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강하다. 세월이 지켜야 할 것들과 더불어 견뎌낼 수 있는 강함도 선물했다.
다만 문제가 너무 순조롭다. 너무 쉽게 포기했다. 너무 간단히 포기했다. 서인하는 아들 서준(장근석 분)의 사랑을 인정하고, 그런 서인하의 마음을 김윤희도 받아들인다. 결국 정하나(윤아 분)도 김윤희의 배려에 힘입어 혼란스럽던 마음을 정리하고 솔직한 자기의 감정에 대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별 문제없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연인들이 자식들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대신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게 되리라. 하지만 말했듯 김윤희의 병이라는 복병이 있다.
이미 한 번 병으로 김윤희를 떠나보냈었다. 김윤희를 미국으로 떠나보내며 당시 서인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하마트면 영영 이별이 될 뻔 했었다. 다른 이유에서도 아닌 병으로 김윤희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아무리 아들의 일이라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경우란 것이 있다. 앞서도 전제했듯 사랑이란 이기적인 것이다. 자식이 이기적으로 부모의 사정따위 아랑곳없이 자신의 사랑을 챙기려 든다면 부모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세대라고 해서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조로울 것 같은 상황이기에 그것은 반전이 되고 새로운 완고한 장애가 된다. 두 개의 사랑이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국은 누군가는 희생하고 포기해야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너만 괴로우니까. 한태성(김영광 분)의 그같은 걱정에 정하나는 말한다. 내가 원하니까. 내가 바라니까. 차라리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기보다 내가 괴로워하고 아파하겠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다. 나의 보람이다. 그래서 이기가 이타가 되고 아가페와 에로스는 하나가 된다. 사랑이란 결국 하나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으로 만난다. 3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운명으로 만난다. 우연한 사랑이 더해진다. 사랑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로지 자신의 사랑 하나 뿐이다.
진부하지만 중독처럼 보게 된다. 뻔한 장면이고 뻔한 대사들인데 그렇게 사랑의 감정이란 절절하게 사람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지켜야 할 것과 지키고 싶은 것이 교차하는 중년의 사랑이 마음을 잡아끈다. 한때 뜨거웠고 여전히 뜨겁다. 뜨겁기에 오히려 차분히 그것을 관조하는 지혜도 생겼다. 그래도 본질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다. 반전과 갈등을 기대한다. 격정처럼 부딪히고 폭풍처럼 가라앉으리라. 누군가는 행복하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김전설(서인국 분)의 캐릭터가 잔잔한 드라마의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선호(김시후 분)는 조용한 해결사의 역할이다. 이미호(박세영 분)과 한태성은 희생양이다. 결국은 서준과 정하나를 위해 소모되는 존재다. 한태성은 그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처럼 보이지만. 오그라들 정도로 직구인 감정들이 오히려 오래전 어느때를 떠올린다. 아마 일본의 소녀만화를 즐겨 읽는 필자의 취향도 어느 정도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은 판타지다. 사랑이란 구라다. 드라마 자체가 구라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직은 손이 눈보다 느리다. 아쉬운 부분이다. 어색하게 걸린다.
항상 뻔하다는 말을 되뇌이게 된다. 그만큼 자주 쓰인다. 그만큼 흔히 많이 쓰인다. 그만큼 당연히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 다만 드라마다운 격정은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굽이가 치고, 폭포가 쏟아지고, 때로 못이 되어 고였다가, 바다에서는 하나로 모이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바위에 부딪혀 물결이 깨진다. 너무 잔잔하다. 가장 불만이다. 아직은 아쉽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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