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어느 과학자가 권력욕을 기계에 넣고 분해해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도록 만드는가? 그래서 얻어낸 결론이 분노와 질투, 그리고 탐욕이었다.
분노란 부당함에 대한 거부다. 부당함이란 불합리이며 부조리다. 내게 불이익을 강요하고 고통을 강제하는 모든 것이다. 모든 어긋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을 때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권력자는 항상 무언가를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부수는 것도 새로 짓는 것도 결국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권력이다.
질투란 열등감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이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다.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것이 부럽고 그래서 탐이 난다. 차라리 내가 갖지 못한다면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리라. 모두가 갖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다. 탐욕과 다른 점이라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누군가가 없다면 질투도 없다.
권력이 항상 위를 바라보는 이유일 것이다. 위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자 한다. 상대를 끌어내려 부수고 짓밟더라도, 결국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내 위에 다른 누군가를 두지 않겠다. 내가 허락한 누구도 내 위에서 굽어보도록 허락하지 않겠다. 당연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탐욕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갖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일 것이다. 다른 누군가로 인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바라는 것이다. 돈이라든가, 아니면 사랑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어떤 신념이나 이상이 아마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의 것이 되기만을 마냥 기다리거나, 도저히 자신의 것이 될 것 같지 않다고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경우에조차 차라리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그래서 도저히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이다. 단지 그것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뿐이다. 그런 자신을 사랑하여 그것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추진한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기보다 설사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도록. 순리를 역리로, 역리를 순리로 만든다. 그를 위해 권력보다 좋은 것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다.
신혜라(장신영 분)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강동윤(김상중 분) 한 사람이었다. 그와 같은 꿈을 꾸었다.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를 위해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자신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여성인 자신과 자신의 감정, 그리고 아버지의 우정과 자신의 추억마저도 모두 그를 위해 내놓았다. 그의 아내인 서지수(김성령 분)를 대신해서 그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죄인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버려졌다. 강동윤으로부터. 가장 소중한 존재일 것이라 여겼는데 필요한 순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자신 또한 꼬리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설사 망가진 그일지라도. 꺾이고 뒤틀린 흉한 몰골의 그일지라도 그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 서지수를 대신해서. 항상 오만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서지수를 대신해서 자신이 그의 곁에 있고자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신혜라에게는 강동윤과 서회장(박근형 분)을 모두 납득시킬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강동윤이 서회장을 막다른 궁지로 몰았기에 가능했던 무기였다. 그녀는 비로소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아마 그와 같은 사정이 없었다면 신혜라 자신도 강동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그것을 무기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르지 않다. 강동윤 역시 여러차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토로한 바 있었다. 어째서 그는 권력을 가지고자 했는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였고,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질시였으며, 무엇보다 그를 통해 가지게 된 탐욕과 그에 대한 집착이었다. 서회장은 다를까? 서영욱(전노민 분)이 강동윤을 싫어하는 것도 결국은 질투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훨씬 유능하고 수단이 좋은 강동윤을 굴복시키고자 서회장이 가진 힘을 동원하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어떤 현실에 대한 분노도, 그리고 무엇보다 간절히 갈구하는 탐욕 역시 없다. 과연 그는 서회장의 한오그룹을 물려받고 싶어하기는 하는 것인가?
백홍석이 권력이 되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그가 분노하기 시작한 것도 딸 백수정의 억울한 죽음이 오히려 법과 정의에 의해 능욕당하는 부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부터였다. 누구도 질투하지 않았고 무엇도 탐욕하지 않았던 그가 그래서 비로소 유태진(송재호 분)과 장병호(전국환 분)라고 하는 불의한 권력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간절한 이유가 생겨나고 말았다. 그래서 총을 들었다. 총을 들고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강동윤과도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총은 그에게 권력이었지만 강동윤의 권력은 더 강했다.
그래서 강동윤도 처제인 서지원(고준희 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처음 거절했다가 백홍석도 끝내 자기 발로 유태진과 장병호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간절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래서 강동윤 역시 어떻게든 그 힘을 손에 넣고자 한다. 양심을 저버리고,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저버린 채.
좋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 난세에 사람이 좋으면 일찍 죽게 된다.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마저 피해를 입히고 만다. 난세란 권력을 다투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권력을 두고 다투는데 사람이 좋다. 분노하지도, 질투하지도, 탐욕하지도 않는다. 굳이 권력을 간절히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마치 서지원처럼. 그녀는 마치 아이처럼 눈물만 흘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눈물만 흘리지 않았기에 백홍석의 딸 백수정을 죽이고 그의 일가족을 파멸시킨 댓가로 강동윤은 서회장이라는 괴물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손에 넣게 된다.
권력으로부터 질투를 빼고 탐욕을 뺀다. 그래서 남는 것이 바로 검사 최정우(류승수 분)이다. 그는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간절히 탐욕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분노한다. 오로지 순수하게 분노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권력으로부터 멀리 있다. 권력으로부터 멀리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도전하고 싸움을 거는 것이 가능하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법이 정의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부당함에 분노한다. 불의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한다. 권력의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최정우의 예에서 보듯 그런 권력이 권력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그다지 높지 못하다. 분노는 백홍석도 한다. 서지원이 아니었다면 최정우 역시 무력하기만 할 뿐이다.
서지원이 어른이 된다. 비로소 홀로서기를 한다.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가족을 벗어나. 개인의 관계를 떠나. 하지만 그조차 결국 최정우에게 의존한다. 그녀는 아직 분노하지 못한다. 분노가 아닌 연민이다. 분노하기에는 그녀는 아직 강하지 못하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 연민이 최정우의 분노를 빌어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과연 진심으로 분노할 수 있게 될까? 분노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최정우가 묻는다. 한오그룹의 딸인지, 아니면 사회부기자인지. 선택의 시간은 계속해서 다가온다.
그렇게 잔인하게 배신을 당하고서도 백홍석이 끝내 살려달라 전화를 거는 것은 황반장 황일관(강신일 분)이었다. 원래 노예들에게는 정조란 큰 의미가 없었다. 하층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몸을 팔다가도 눈이 맞으면 서로 살림을 차리고 자식 낳고 사는 것이다. 서로 아쉽고 안타까운 처지를 아는데 배신 좀 했다고 그를 원망하고 비난할 것이 무에 있을까? 딸을 죽인 윤창민(최준용 분)에게조차 백홍석은 단호하게 대하지 못했었다.
10억이라는 돈에 배신을 하고, 그 10억이라는 돈으로 인해 죄인이 되고, 그러나 오히려 죄인이 되고 보니 후련하다. 죄인이 되어 처벌받기보다 그로 인해 백홍석에게 진 마음이 빚이 더 무겁다. 양심이라는 것일 게다. 그런데도 배신을 해야 했다. 한 순간이나마 황일관은 백홍석에 대한 자신의 양심을 10억이라는 돈에 저당잡혔다. 현실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황일관의 우정과 의리가 그래서 더 서글퍼지고 우울해진다. 그런 황일관을 조형사는 잡아야 한다.
백홍석의 딸을 죽였고, 자신의 죄를 팔았으며, 신혜라를 버렸고, 이제는 다시 서지수를 버려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생각은 선택지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항상 궁지에 몰려 최악의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들이 마치 업보처럼 쌓여 그에게로 다시 돌아오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더라도 처음의 그때로 다시 돌아가 선택을 하라 한다면 그는 같은 선택을 하고 말 것이다. 강동윤에 대해 비난하기보다 연민의 감정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과연 나였다면? 나였더라면?
고작 일개 국회의원의 비서관이었을 것이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 서회장이나 강동윤에 비해서도 아직 한참 어리다. 재산이나 많은가?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대단한가? 그러나 그녀는 권력을 손에 쥔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장차 대통령이 유력할 정치인과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재계의 실력자를 마음대로 요리한다. 그 힘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세상에 군자란 흔하지 않을 테니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이다. 치명적인 약점이거나 달콤한 유혹이거나. 그것이 또한 정치이기도 하다. 신혜라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다. 분노와 질투, 탐욕, 그리고 그 이전에 주어진 힘을 활용하는 기술로서의 정치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다. 일개 국회의원 비서관조차 권력을 손에 쥐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반지와도 같을 것이다. 타락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아직 강동윤에 대한 진심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쉽지 않다. 최정우가 백홍석의 위치를 알아냈다. 백홍석은 신혜라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협상카드 가운데 하나다. 서지수의 선택도 주목된다. 서지수는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백홍석의 위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딸과 아내의 복수는 어느 정도 하고서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여튼 백홍석이 마치 주변으로 전락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옳다. 일개 소시민이다. 고작 전직 말단형사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현실에서 아무것도 없다. 통쾌한 결말조차 통쾌하지 않을 것 같은 이유다.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어른들만 있다. 거인들만 있다. 소인국에 거인들이다. 답답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92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시탈 - 마침내 돌아선 이강토와 기무라 슌지, 식민지의 모순을 묻다. (0) | 2012.06.28 |
---|---|
빅 - 이제서야 결혼, 사설이 많고 사족이 길다. (0) | 2012.06.27 |
빅 - 길다란의 설레임의 진실, 절대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0) | 2012.06.26 |
추적자 - 친절한 강동윤과 불편한 진실, 이건 어른들의 싸움이야! (0) | 2012.06.26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방장수의 분노, 남자가 화내는 법에 대해... (0) | 2012.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