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타임 - 생사의 경계에 선 야전지휘관 최인혁의 난폭함...

까칠부 2012. 7. 31. 09:09

"무릇 장수가 전장에 나가 있으면 임금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경칠서의 하나로 병가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가 자신을 채용하려는 오나라왕 합려 앞에서 했던 말이다. <손자병법> 구변편에서도 임금의 명령 가운데서도 듣지 말아야 할 명령이 있다고 정의하고 있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승자는 이기고 패자는 죽는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지만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전장은 그런 곳이다. 그런 첨예함 위에 전장에 임한 자는 서 있는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같은 전장의 당위 앞에 임금의 명령따위 따르지 않아 죽으나 싸움에 져서 죽으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임금을 위해서라도 이기고자 한다면 이기는 오로지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로부터 전장의 장수와 후방의 관료가 서로 다투게 되는 이유였다. 전장의 장수가 왕의 의심을 사고 마는 이유였다. 후방은 아직 평화롭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여유가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전장의 치열함 속에서 의미있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뿐이다. 이기는가? 아니면 지고 마는가? 다른 모든 것은 그 한 가지 명제로 수렴하고 만다. 전쟁이 일어나면 법은 정지한다. 인간의 모든 상식과 가치는 정지되고 만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민간인이 모여 있는 도심에 폭탄을 떨군다. 피난민이 모여든 도시를 아예 초토화시켜버린다. 필요하다면 아군도 죽일 수 있다. 자국의 국민을 미끼로 삼을 수도 있다. 학살마저도 정당화된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전장이라는 극한상황에서는 승리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진다. 아직 평화롭기만 한 사람들에게 결코 이해될수도 납득될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어찌 일반의 상식과 보편의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저버릴 수 있는가.

 

물론 상황은 다르다. 그곳은 전장이다. 그리고 이곳은 병원이다. 그곳은 싸우는 곳이고, 이곳은 살리는 곳이다. 그곳은 사람을 죽이려는 곳이고, 이곳은 사람을 살리려는 곳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죽는가? 아니면 사는가? 한 순간의 판단으로 사람의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 하필 최인혁(이성민 분)이 해운대세중병원을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구하는데 전장을 전전하는 용병회사가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곳이야 말로 진짜 의사가 필요한 곳이다.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진짜 외과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바로 삶이 전장이다. 종영한 경쟁방송사의 드라마 <추적자>에서 대법관출신의 변호사 장병호가 젊은 검사 최정우에게 타이르듯 말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법은 정지한다. 삶이 곧 전쟁이다. 매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선택의 순간이 온다. 죽는가? 사는가?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사람은 때로 죽고 때로 살아난다.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바로 의사다. 병원응급실이며 긴급한 외상치료를 수행해야 하는 외상외과다. 최인혁은 외상외과 의사다. 그는 다시 당구라는 일상을 치르고 나선 길모퉁이에서 그 전장을 마주하게 된다. 순간의 판단이 사람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다.

 

파격이 일어난다. 병원의 시스템따위 깡그리 무시된다. 학과장들의 권위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어 버린다. 사람을 살린다고 하는 당위 그 자체가 정의다. 그를 위해 편법마저 동원된다. 불법마저 저질러진다. 그리고는 끝내 피가 부족하자 환자의 오염된 피를 '쎌세이버'를 사용해 다시 환자에게 수혈하는 모험을 선택하게 된다. 자칫 오염된 피로 인해 감염이 일어나 환자가 죽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조차 수혈이 이루저지지 않으면 환자는 바로 죽게 된다. 그 절박한 경계에서 그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사에게는 가장 괴로운 일이지. 이게 디시전(판단)이다."

 

피가 튀는 모습마저 어쩌면 전장과 닮아 있었다. 피가 튀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긴장된 표정이 되어 있다. 죽음을 앞에 둔 전사처럼 비장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생살을 가르고 피를 닦아내는 모습이, 피를 멈추고 장기를 잘라내는 그 모습들마저, 생사를 가르는 전장이다. 삶과 죽음의 최전선이다. 그곳에 최인혁이 있다. 최인혁이 학과장들에게 밉보인 이유다. 그들은 아직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굳이 학과장들이 병원의 운영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을 삽입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트라우마 센터도 역시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학과장들의 관료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그들이야 말로 병원이라고 하는 시스템이다. 구조다. 그들은 그같은 구조 안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살린다. 그것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최인혁은 그같은 그들의 안정된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존재다. 지금 모습처럼 병원의 체계따위 깡그리 무시한 채 환자만을 보고 혼자서 내달리고 있다. 그는 병원의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존재다. 수많은 뛰어난 야전지휘관들의 후방의 관료들로 인해 곤란을 겪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던 그 모습 그대로다.

 

하기는 바로 그래서 트라우마 센터가 필요한 것일 게다. 특수부대일 것이다. 그같은 행정적 문제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운 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때 전력을 투사할 수 있다. 브레인 역할까지 한다. 만일의 사태에 병원내 모든 인력과 자원을 컨트롤하는 브레인이며, 또한 실제 긴급한 전력투사를 행하는 첨병일 것이다. 트라우마 센터만 있었다면, 그래서 적절한 지휘와 통제 속에 제대로 된 치료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그랬더라면 길 위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한다면 죄악이다. 더욱 최인혁이 서 있는 전쟁의 무서움을 엿보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이민우(이선균 분)가 말한다. 이과 갈래? 문과 갈래? 좀 더 쉽게 의대 갈래? 법대 갈래? 세상을 쉽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강재인(황정음 분)은 그나마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한 자기 자질로써 의과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의사에 대한 꿈이나 사명따위 그들에게는 없다. 없었다. 그저 의대 가면 좋다고 하니 선택해서 왔고 지금 새삼 그 무게에 치이고 있다.

 

이민우의 잘못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어릴 적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그런 물음을 듣는다. 공부를 조금만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바로 그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당연히 공부 잘하면 의대나 법대를 가야 하고, 의대나 법대를 가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편하게. 안락하게. 풍요롭게.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면 자꾸 편해지려고만 한다. 해운대세중병원의 학과장들이 관료적으로 바뀐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편해지려 한다.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지켜야 할 검찰이 편해지려 한다.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출세할 생각에 의사가 되고, 검찰이 되고, 기술자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그래서 정작 가장 필요한 때 편해지려고 하고. 우리사회의 근본적 모순이 그곳에 있지 않을까? '출세'와 '성공'이라는 두 단어 안에. 물론 그럼에도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의사가 더 많기는 하다.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다. 단지 그 동기에 대한 물음은 한 번 쯤 필요할 것이다.

 

과연 학과장들은 잘못되었는가? 동생이 위독하다니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형이 있다.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다. 병원의 질서를 해치고 다른 환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불쾌한 존재일 것이다. 질서는 또한 지켜져야 한다. 체계는 또한 지켜져야 한다. 그런 한 편으로 그런 것들을 무시해도 좋은 또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그 경계다. 트라우마 센터란. 최인혁이란. 개인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난동부터 부리려 드는 사람을 보면 경명과 혐오를 감출 수 없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감정에 관대하다. 특히 자기의 감정에 관대하다. 감정에 못이기는 것을 죄라 여기지 않는다. 더욱 엄격한 체계가 요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병원이 이상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인턴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는 것이 과연 병원이 입장에서 타당한가? 아직 미숙한 인턴이기에 그 윗선에서 다시 한 번 환부에 대한 체크가 이루어져야 했었다. 인턴이 보지 못했으니 다른 의사들도 모두 보지 못했다. 인턴에게 책임을 묻는다. 다른 의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심장이 뛰고 있었다. 화약내음이 맡아지고 있었다. 어디선가는 포성이 울리고, 피와 신음이 들판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곳은 전장이다. 지옥이다. 그러면서 천국으로 가는 경계다. 그들은 살아날 것이다. 살아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최인혁의 카리스마는 진짜이고 수술장면은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수술장면보다 더 긴박함이 느껴진다. 재미있었다.

 

올림픽 때문에 시작이 늦었다. 대신 끝은 빨랐다. 마시다 만 맥주잔처럼 감질나게 김이 빠진다. 이제 겨우 지혈을 마쳤을 뿐이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고 환자가 살았는가를 본다. 그 뒤를 보게 된다. 너무 아쉽게 끝났다. 올림픽을 원망해 본다. 시기가 나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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