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우치 - 미처 위기감을 느끼기도 전에... 오용과 마강림 몰락하다.

까칠부 2013. 2. 7. 08:38

항상 지적해오던 부분이었다. 뜨뜻미지근하다. 감정이 최고점에 이르기 전에 지레 드라마가 알아서 풀어버린다. 반역이 있었다. 마강림(이희준 분)이 좌의정 오용(김병세 분)을 앞세워 난을 일으켜 궁을 장악하고 왕을 뒤쫓고 있었다. 이미 좌의정과 공신들에 의해 무력한 상태이던 왕은 감히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무력하게 도망만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반란군의 기세 앞에 왕조가 바뀌고 새로운 왕이 즉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 차라리 오용이 왕으로 새로이 즉위하여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어째서 이씨만이 왕이 되어야 하는가? 어차피 조선의 이씨왕조도 고려의 왕씨왕조를 뒤엎고 새롭게 시작된 왕조였었다. 이씨왕조의 끝이 오씨왕조라 해서 그것에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개명한 21세기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조를 수호하는 것이 무슨 절대적 가치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너무 고루하다. 그렇다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굳이 지금에 와서 당시의 가치를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오용이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필요했다. 쫓겨난 왕이 다시 왕위를 되찾아야 하는 당위가 필요했다. 왕이라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왕 또한 반정에 호응하여 선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입장이 아니던가 말이다. 지금의 왕을 몰아내고 오용이 왕위에 올랐으면 그 또한 왕이니 그를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는 것은 잘못인 것인가. 그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구체적인 이유들이 제시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실제 오용이 왕위에 오르더니 어떻게 하더라. 그를 왕위에 올리는데 앞장섰던 마강림 또한 그 한 이유가 된다. 그의 야심은, 정확히 그의 친아버지 마숙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그러나 없었다. 왕위에 올라 위세를 부리는 오용도, 그 오용을 등에 업고 전우치(차태현 분)와 그의 동료들을 압박해 오는 마강림의 위협도, 그리고 오용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려는 마강림의 야심 또한. 반란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속여야 할 상대가 바뀌었다. 마강림이 아닌 시청자를 속였어야 했다. 왕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왕이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반란은 성공했어도 성공한 것이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오용은 왕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즉위하려던 순간 상선(이재용 분)과 전우치를 앞세운 왕의 반격에 지리멸렬해버리고 만다. 마강림의 반란군을 제압하는 방법 역시 장난스럽다. 반란으로 인해 고조되던 위기감은 이내 그렇게 허무하게 스러져버리고 만다.

 

반란이야 진압되겠거니. 어떤 짜릿한 쾌감같은 것도 없었다. 통쾌하다거나 후련하다거나 하는 느낌 또한 없었다. 더구나 찌꺼기처럼 마강림이 남아 있었다. 마강림은 도망쳤고 그를 마무리짓지 않으면 안된다. 그나마 한 가지 건진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잃고 제대로 악역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희준의 연기랄까. 이희준은 참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마숙과 오용이 사라지는 순간 오로시 홀로 서게 된 마강림의 모습은 처음 기대했단 압도적인 도력을 갖춘 위험한 존재 그 자체였다. 마강림의 광기가 어쩌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지 모른다. 아니 자기 자신마저 파괴해 버리고 만다. 어쩌면 마강림의 위에 군림하던 마숙과 오용의 존재가 마강림의 캐릭터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가.


아무튼 산이 가파를 때 오르고 나면 그 쾌감도 몇 배 더 커지는 법이다. 골짜기가 가파르면 내려가는 쾌감 또한 몇 배 더 커지는 것이다. 평지처럼 오르고서 그곳을 산이라 할 수 있을까? 평지처럼 완만하게 걸어내려간 골짜기는 아무리 깊어도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반란이 일어났다면 그로 인해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시청자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는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더 깊이. 그리고 더 높이. 그러고 나서 고조된 긴장을 한 순간에 통쾌하게 풀어낸다. 오용이 몰락하고 마강림이 쫓겨 달아날 때 보고 있던 시청자마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고 만다.

 

다모 은우(주연 분)가 마강림의 산채에서 종사관 서찬휘(홍종현 분)를 구하고 대신 독침을 맞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펐고 유치했다. 함정이 작동되고 대롱에서 독침이 발사되기까지 너무 간격이 길었거니와 그것을 막아서는 은우의 동작 역시 민첩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차라리 서찬휘가 보고서도 피할 수 있었던 것을 은우가 괜히 막아선다고 맞지 않아도 될 독침을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6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남자를 위해 희생 - 아니나 다를까 일부러 그런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었음에도 은우는 멀쩡히 살아있다. 슬픔조차 더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나마 기대한다. 마강림의 광기가 진짜이기를. 마강림의 폭주가 마지막 순간에나마 모두를 긴장시킬 수 있기를. 그리고 허탈할 정도의 반전과 진실이 시청자를 기다린다. 그야말로 대미다. 옭죄던 긴장이 그렇게 한 순간에 해방되며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이희준의 역할이 크다. 물론 결말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엔딩이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코미디로서 웃음도 그다지 충분치 않았다. 그렇다고 액션이 충분했던 것도 아니었다. 애초 의도한 도술대결이라는 부분도 제작여건의 문제인지 어설픈 무협으로 바뀐지 오래다.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어야 할 음모 역시 너무 완만해서 긴장을 느끼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번도 후련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긴장으로 옭죄는 느낌도, 그렇다고 억압된 긴장에서 해방되는 통쾌함도 너무나 미미했다. 재미가 없었다. 마지막은 아니기를.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