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 마치 확신처럼 말하고 있었다.
"한국인에게 헤비메탈은 무리야."
시도해 본 사람은 있었을 테지만 해외파로 이루어진 밴드 '무당'이 나타나기까지, 아니 무당의 음악조차 제대로 된 헤비메탈이라고 하기에는 무기라 있었기에, 어쩌면 한국인에게 헤비메탈이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바로 바다 건너 일본에서 라우드니스라는 이름의 밴드가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을 때 그렇게 한국의 연주자들은 그들의 음악을 카피하며 부러워하고만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특히 밴드음악인들에 있어 뿌리깊은 열등감과도 같았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시나위와 백두산, 그리고 부활. 시나위는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백두산은 완성된 연주와 스타일을 들려주었다. 부활은 그런 가운데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시나위는 선구적이었고, 백두산은 완성되어 있었으며,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던 것은 바로 부활이었다.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이 백두산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었듯 그렇게 그들은 이 땅에 새로운 밴드문화의 가능성을 연 선구자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운데 임재범이 있었다.
백두산이 헤비메탈로써 완성된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연주자들의 아쉬움을 해소해주었다면 임재범은 바로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파워풀한 보컬로써 한국인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연주는 어떻게 흉내낼 수 있어도 인종적인 특징인지 그들만의 고음과 파워에 대해서는 도저히 어떻게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한국 특유의 고음에 대한 집착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되었다. 김종서 이후 고음보컬은 적잖이 배출되었지만 파워를 겸비한 보컬은 여전히 드물다. 그런 때 임재범이 나타났다. 한국에게게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고음과 파워를 겸비한 완전체로써. 더구나 그는 흑인의 소울까지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었다.
임재범 이전에도 임재범은 없었고, 임재범 이후에도 임재범은 없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임재범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에 대한 가장 간명한 정의일 것이다. 이전에도 임재범과 같은 보컬은 없었고, 이후에도 임재범과 같은 완전체의 보컬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백인의 힘과 흑인의 소울을 겸비한, 그러면서도 한국인의 감성을 관통할 수 있는 보컬이란.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고음과 힘과 소울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그의 노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멜로디만 따라한다고 해서 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였다. 그래서 아마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임재범의 노래를 무리없이 욕먹지 않고 소화해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유미는 박완규의 힘을 빌었고, 신용재는 자기 스타일의 감미로운 발라드로 불렀다. 일락은 그만의 경쾌함으로 임재범을 소화하려 하고 있었다. 데이브레이크는 밴드라는 장점을 살리려 했었다. 얼마나 고마웠을까?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기의 노래들을 소화하고 있던 후배가수들에게. 임재범의 눈가가 촉촉히 젖은 듯 보였던 것은 비단 필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임재범 자신이 밝힌 그대로 전설의 자리란 그리 무겁고 어렵기만 하다.
유미는 오히려 파트너를 잘못 선택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완규가 너무 셌다. 박완규의 힘이 유미의 존재를 눌러버렸다. 박완규를 이기고 자기를 드러내려 잔뜩 힘을 주고 부르는 유미가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노래가 갖는 감정까지 살리며 부르기에는 박완규의 존재가 유미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그저 악을 쓰는 듯 고음을 쫓아가기에 급급한 무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원곡에서도 임재범은 자기 파트를 가성으로 소화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가성이 안되는 박완규이기에 그의 목소리를 뚫고 들릴 수 있는 여성보컬이란 그 자체로 희귀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도 부담스럽고 파트너는 더 버겁다. 그녀의 장점은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아쉬웠다.
신용재는 자기에 어울리는 달달한 발라드로 노래 '너를 위해'를 소화하고 있었다. 처절했다. 가사 만큼이나 차라리 전쟁과도 같은 후회와 번민과 끓어오르는 듯한 치열한 사랑이 그녀를 위해 떠나야겠다는 희생으로 이어진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러나 그녀에게 자기란 전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기에,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으로 그녀를 떠나주겠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녀와 상관없이 그리 다짐하고 결심한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에 비해 신용재의 '너를 위해'란 그야말로 '너'에게 들려주는 노래같지 않은가. 잡아주기를 바라는. 하기는 사랑하는 사람인데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임재범이 아닌 신용재라면 그렇게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데이브레이트의 '이 밤이 지나면'을 들으면서는 문득 조용필이 인터뷰에서 밝힌 '노래의 키를 낮춰불러야 한다면 은퇴할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말았다. 한껏 키를 낮춰 부르는 '이 밤이 지나면'이란 어쩌면 이리도 달달한가. 원곡에서 느끼던 처절함도 치열함도 없이 달달한 멜로디와 밴드가 들려주는 흥겨운 사운드만이 남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데이브레이크만의 '이 밤이 지나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할 것도 처절할 것도 없는 사랑 그 자체가 흥겨운, 이별이라는 것조차 즐겁기만 한 젊은 날의 꿈이라고나 할까. 역시 밴드는 강하다. 유쾌했다.
일락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1980년대와는 다른 2010년대의 감수성을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무료한 자신이 한심하고 무력한 지금이 화가 난다. 그것은 분노이고 절규였다. 원곡이 갖는 폭발력에 비래 일락은 일상의 지루함을 부수기 위한 진지하지만 진지하지 않은 개인의 작은 반란을 들려준다. 도입부의 루프스테이션에 이은 일락의 무대 전반을 채우고 있는 것이 어쩌면 절실하기까지 한 유쾌함과 흥겨움이었을 것이다. 삶이란 즐거움이다. 그러나 1980년대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었다. 1980년대와 2010년대가 그렇게 노래를 통해 만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고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름아닌 정동하의 '비상'이었다. 임재범의 '비상'이 움츠렸던 날개를 펴려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면 정동하의 '비상'은 그렇게 날개짓을 시작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치열하고 처절했던 자신의 내면의 싸움과 갈등, 그리고 결심과 다짐을 들려주고 있었던 임재범과는 달리 정동하는 이제 곧 날아오르게 될 자신에 대한 기대와 감격, 환희를 들려주고 있었다. 빛이 어울린다. 마지막 순간 내리쪼이는 빛이, 그리고 그 순간 도취된 듯한 정동하의 표정이 노래의 느낌을 십분 살려준다. 마치 필자 또한 따라서 정동하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힘을 빼고 기교마저 배제한 채 부르는 그의 노래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담담했고 그래서 더욱 듣고 있던 자신마저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임재범의 '비상'이 하나라면 정동하의 '비상' 역시 하나다. 그는 이미 날개를 달고 저 높은 하늘을 날고 있다.
물론 김태우의 '고해' 역시 김태우만의 '고해'였을 것이다. 오히려 더 임재범보다 흑인의 소울을 담아내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가스펠처럼 '고해'가 갖는 진지하고도 간절한 소망을 더욱 확실하게 전하고 있었다. 내면의 치열함은 없지만 그보다는 온전히 상대에게 자신을 맡기려는 진실함이 있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을 듯. 혹은 저 깊은 내면의 누군가에게 닿을 듯. 혼란조차도 사라진 평온하면서도 올곧은 그 간절함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온다. '고해'란 또한 이런 노래였다. 김태우는 과연 No4를 자부할 수 있는 보컬이다.
정동하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이 무척 아쉽다. 문득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기도 전 처음 부활의 보컬로써 공중파에 모습을 비췄을 때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활이라는 유서깊은 밴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애송이라 여겼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젊다. 하지만 오히려 힘을 빼고 들려주는 그의 노래에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도 될 것이다. 노래를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재주가 있다. 그의 어색한 춤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치 친구처럼 자기 자신처럼 그렇게 들리도록 그는 노래한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벌써 50줄일 것이다. 장발에 청바지 차림으로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당시로서는 너무나 멀기만 했던 50대의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고 말았다. 그래도 멋지다. 나이를 먹을수록 멋져진다는 것은 질투조차 나지 않는 부러움일 것이다. 젊어서보다 오히려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다. 팬들의 환호가 이해가 간다. 그를 만나서 또한 반가웠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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