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닌 생존을 나누는 곳이다!

까칠부 2013. 4. 9. 09:01

동료란 동류다.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하고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마주볼 수 있을 때 그를 동료라 부른다. 그것은 어쩌면 최소한의 자격일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동료라 할 수 있다. 업수이여기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우러르게 될 때 그는 동료가 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훈장이기도 할 것이다. 명예이고 자부심이다. 열심히 노력했다. 타고난 재능에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그것을 결과로써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무엇보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남들을 굽어볼 수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보상처럼 주어져 있다. 그에 따른 예우가 필요하다. 주위로부터이든, 혹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이든.

 

모두가 성공을 꿈꾼다.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와 더 안정된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 도입부의 나레이션은 이 드라마의 시작이며 끝일 것이다.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다시 대학에서도 열심히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고, 기왕에 취직하는 것이면 화이트칼라에 정규직이어야 한다. 그것이 성공한 삶이다. 그것이 인생을 바로 사는 것이다. 그렇게 듣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믿으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삶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했고 누군가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댓가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란 자신의 전부다. 동료란 자신의 가족과도 같다. 회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료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 정사원으로 -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그런 자신과 어울리는 동료들에 대한 예우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회사에 집착하고 동료에 집착한다. 그같은 회사와 동료를 쟁취해낸 자신에 대해 집착한다. 거래처인 마트의 점장(김광규 분)의 일갈이 그것을 한 마디로 대변한다.

 

"내가 어떻게 올라온 점장자리인데..."

 

알아주기를 바란다. 아니 누구보다 자신이 알아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억울하다. 그런 자신의 노력을, 자신이 마침내 이루어낸 결과들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 누구보다 치열했고 누구보다도 충실하고 성실했다. 자랑하고 싶은 삶이다. 과시하고 싶은 삶이다. 그것이 좌절했을 때 그것은 절망 이전에 분노가 되고 원망이 되고 증오가 된다. 이제까지의 자신의 모든 노력들이 의미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어떻게 지금까지 올라왔는데.

 

역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장규직(오지호 분)은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던 미스김(김혜수 분)과 정주리(정유미 분)에 대해 비로소 처음으로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게 된다. 궁지에 몰린 자신을 구해주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이 살아났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내쫓기듯 그만두어야 했던 회사에 - 그것도 성과를 인정받으며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 3개월 뒤면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최소한 그 동안이나마 자신과 함께 일하기에 충분한 실력과 실적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미스김도 말한다.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나누는 곳이라고. 동료란 바로 그것을 전제한다. 회사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 자신에 도움이 된다. 그런 믿음이 있다. 내일도 함께 출근해서 함께 회사를 위해 일한다. 자신을 위해 일한다. 회사의 이익과 성장이 곧 자신의 보람이며 또한 증명이다. 하지만 전제는 역시 회사에 이익이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제서야 장규직도 미스김과 정주리를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미스김이 굳이 장규직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게장쇼를 대신하면서도 그에 따른 급여를 받지 않으려 한 이유였다. 그것은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일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비루한 몰골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그동안 그토록 장규직은 비정규직인 미스김을 적대하며 정주리에 대해 멸시와 모욕을 서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위기에서 벗어나자 이내 언제그랬느냐는 듯 태도를 바꿔 그들을 동료로써 대하려 한다. 본능이다. 아마 미스김이 굳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같은 번거로운 감정들이 부대껴서인지 모른다. 원작과는 또 다르다. 회사에 얽매인 개인의 군상이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거나 하면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 자신들부터 철저히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거나 하지 않는다. 열악한 처우와 낮은 임금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은 정규직이 아니니까. 정규직이 되는데 실패했으니까. 그만한 결격사유가 분명히 있다. 타고는 재주가 부족했거나, 아니면 노력이 부족했거나. 그렇다면 그에 맞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대기업 노동자가 중소기업 노동자와 다르고, 원청기업 노동자가 하청기업 노동자와 다르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르다.

 

어떻게 자신이 정규직까지 올라왔는데. 어떻게 자신이 이런 대기업에 더구나 정직원으로 취직할 수 있었는데. 본전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 연봉 3000만원의 금빛나(전혜빈 분)와 연봉 1200만원의 정주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자본 앞에 노동자는 평등하지 못하다. 자신이 받는 급여와 처우가 그 신분을 결정한다.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시리도록 적나라한 현실이라고나 할까?

 

하필 게장의 달인으로 '달인' 김병만을 캐스팅한 센스가 돋보였다. 어쩐지 우스꽝스럽다. 게장의 달인이라니. 게장쇼라니. 그런데 '달인' 김병만이라면 그조차도 어울릴 것 같다. 코미디프로그램의 한 코너였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였을 테지만, TV밖 시청자와 만나는 그같은 외적요소들이 허술한 내적 요소들을 받쳐준다. 원작에서의 '참치해체'와는 달리 자칫 우스꽝스러운 헤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 그렇게라도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드라마를 지탱한다. 우스운데 우습지 않다. 이런 게 바로 센스라는 것일 게다.

 

코미디가 아니다. 코미디라고만 여겼는데 도저히 더 이상 웃으며 볼 수만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현실이 더 시리다. 아마 작가 자신이 비정규직 생활을 경험했거나 아니면 그것으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주위에 두고 있을 것이다. 아니 비정규직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은 직장생활이라고 하는 본질을 꿰뚫으려 한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동기를 위해 굳이 늦게 미스김을 찾아가 사정하는 무정한(이희준 분)의 모습과 그런 무정한의 설득에 넘어가주는 미스김의 모습에서 비단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 애써 주장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렇게까지 삭막하게 기계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

 

장규직에 대한 무정한의 우정과 정주리에게 다가가려는 금빛나의 선의, 그리고 그 가운데 단단한 벽을 두른 채 홀로 외로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미스김과 역시 지금의 자신을 지키려 애써 가시를 세우고 있는 장규직까지. 무정한의 이름은 어쩌면 어떤 역설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드라마일 테지만. 현실보다는 드라마가 따뜻하고 즐겁다. 재미있다.

 

확실히 원작과는 그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주인공인 미스김조차 마치 전체를 위한 하나의 큰 조각처럼 보인다. 전체라고 하는 구조 안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자기가 맡은 역할은 연기해 보이고 있다. 허술한 듯 짜임새가 있다. 주제가 분명하다. 흥미롭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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