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은 통쾌하기까지 한 역설이었을 것이다. 28년을 한결같이 손목에 차고 다니던 시계였다.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 기념으로 선물한 시계였다고 한다. 워낙 오래된 시계라 자주 고장이 나서 때로 멈추기도 하고, 때로 터무니없이 시간이 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고쳐가며 여전히 지금도 시계는 한몸처럼 고정도(김기천 분) 과장의 손목을 지키고 있다. 그런 시계를 가리키며 그러나 고정도 과장은 미스김(김혜수 분)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이 시계 막내딸 졸업할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차려고. 그 다음엔 내가 알아서 벗을께."
단 한 번도 자신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 회사는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으며 회사의 동료들은 가족과도 같았다. 당연하게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다시 퇴근길에 동료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즐긴다. 챗바퀴와도 같은, 그러나 익숙한 일상이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이어질 수 있으리라.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처럼. 고치고 또 고치면 낡은 시계라도 계속 차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것이다. 시계는 단지 시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계란 도구다. 시간을 알기 위한 수단이다. 더 이상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시계는 버려지게 된다. 고쳐써도 안되면 그때는 버리고 새로 장만해야 시간을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시계가 멎는 바람에 약속시간이 된 것도 알지 못하고, 시계가 전혀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니 전혀 어뚱한 시간에 약속장소로 나가 상대를 곤란케 만든다. 중요한 계약이라도 걸려 있었더면 어쩔 뻔 했을까? 시계가 먼저 자기를 저버릴 일은 없을 테지만 이미 시계로써의 쓰임을 다한 순간 시계는 자신의 기대를 배반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계지 다른 것이 아니다.
겨우 한 가지 자기가 쓰일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컴퓨터에 의지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현대의 기업환경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게 되면 모든 업무가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직 본격적으로 기업의 업무에 도입되기 전부터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웠던 탓에 고정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에서도 너끈히 주어진 일들을 처리해낼 수 있다. 계약서를 양식에 맞게 작성하는 것이야 당시 그가 담당했던 여러 업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컴퓨터가 없으니 그 대단하다는 미스김도, 회사에서 촉망받는 엘리트인 장규직(오지호 분)도, 그리고 동기로써 한참 앞서 출세한 황갑득(김응수 분) 역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찾아낸 한 가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고정도는 미스김의 어깨에 실려 계단을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의 자기란 그리도 한심할 정도로 무력하기만 한 존재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과연 실제 기업 가운데 권고사직 대상자를 단지 한 가지 업무에서 중대한 공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회사에 남아있게 하는 경우란 얼마나 되겠는가? 굳이 고정도 과장이 아니었어도 되었다. 노트북은 자체배터리로 구동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전원이 끊겼어도 상당한 시간동안 문제없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프린트는 조금만 나가면 PC방이 있을 것이다. PC방에서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라 한다면, 대신 노트북으로 완성한 계약서를 이메일로 전송해서 프린트만 PC방에서 하는 방법도 있다. 언제 다시 이번처럼 고정도 과장의 손글씨를 필요로 할 경우가 발생할 줄 알고. 설사 있더라도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프리랜서일 것이다. 굳이 그 힘든 계단을 고정도를 들쳐매고 올라가야 할 당위가 느껴지는가?
철저히 여성인 미스김에 의지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자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야말로 짐짝처럼 미스김의 어깨에 들쳐져 그녀의 능력과 판단에 의지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굳이 자염상품화 아이디어를 고정도의 공으로 돌리려 한 것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 고정도로 하여금 계약서를 가지고 사장에게로 올라가도록 한 것도, 모두 다른 직원들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시장조사를 하러 나가서도 그는 아직 대낮인데도 술을 마시고 한쪽 구석에 취해 늘어져 있었다.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장난 시계처럼 가끔 우연과도 같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한 번 쯤 있을 뿐이다. 그것이 지금에 고정도 자신의 현실인 것이다. 시계가 쓰임을 다했다.
물론 사람과 시계는 다르다. 시계와는 달리 사람은 판단을 내린다. 선택을 한다. 회사와 자신을 동일한 존재로 여기던 잠시의 착각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람이 시계를 필요로 했듯 자신이 회사를 필요로 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회사가 자신을 도구로서 보았다면 자신 또한 회사를 수단으로써 이해한다.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아 가죽을 부양하고 가족의 학비를 부담한다. 헤어짐을 확인한다. 회사에서 이미 자신의 쓰임은 다했다. 자신의 쓰임이 다한 순간 회사와의 관계 또한 수명을 다했다. 나머지는 연명의 시간이다. 회사를 수단으로 삼아 필요한 만큼만 다니고 자신의 처지를 알아 그만두고자 한다. 그토록 자신을 회사에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동료들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들조차 타인이다. 다만 시계바늘처럼 목적을 위해 함께하고 있을 뿐이다.
미스김의 일갈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무팀장님? 그 공포를 아픔을 계약직들은 6개월, 혹은 3개월마다 겪습니다."
어차피 정규직과 계약직은 다르다. 임금도 다르고, 처우도 다르고, 회사에서의 신분도 다르다. 계약직은 사원증이 아닌 출입증을 가지고 회사의 정문을 통과한다. 그들은 타인이다. 이방인이다. 계약이 끝나면 떠날 사람들이다. 계약을 하게 되어 잠시 일하게 된 사람들이다. 장규직도 알고 무정한도 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그들은 온전한 같은 회사의 동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런 계약직 앞에서 정규직인 과장의 거취를 고민한다. 선배라고. 고참이라고. 어차피 계약연장이 안되면 떠날 계약직들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정주리(정유미 분)의 입장이 묘하다. 그녀는 분명 계약직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계약연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런데 마치 정규직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첫직장인 때문일 것이다. 처음 다니게 된 직장이기에 애착도 남다를 것이다. 배신을 경험해봐야 한다. 미스김처럼 믿었던 직장으로부터 내쫓기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고정도 과장도 지금에서야 그같은 일들을 겪어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회사는 자기 자신도, 혹은 자신의 일부도, 자신을 대신할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을.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그 댓가로 임금을 받는다. 쓰임이 사라지면 회사는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여길 것이다. 회사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더 나태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필사적이기까지 한 계약직들에 비해 고정도 가장은 언제나 느긋하고 한가하기만 하다.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회사를 믿고 회사에 기대며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야 깨닫는다. 아마 조금만 더 일찍 회사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깨달았다면 보다 자신을 다그치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낡은 시계는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면. 정주리의 차례다. 한가하게 고정도 과장의 입장만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계약직인 정주리보다 훨씬 한가한 시간을 보내도 그는 회사가 그를 거부하는 그 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는 정규직으로 4배나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가? 아무일도 않고 잠만 자는데도 그는 더 높은 급여에 이제는 한동안 고용까지 보장될 것이다. 그는 정규직이다.
고정도 과장 한 사람의 급여를 아낀다면 네 사람의 계약직을 더 채용해 쓸 수 있다. 어쩌면 계약연장을 거부당할 지금의 계약직 가운데서도 그 빈자리를 틈타 계약연장에 성공하는 경우도 나올지 모르겠다. 뒤집어 말하면 고정도 과장에 대한 권고사직을 철회함으로써 결손된 비용은 결국 계약직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과는 달리 계약직은 회사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계약서에 쓰여진 안에서 자유롭게 인원을 정리할 수 있다. 무정한은 그래서 이름이 무정한이다. 그에게는 단지 고정도에 대한 자신의 연민만이 보일 뿐이다. 그런 자기의 연민에 취해 있는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착하다.
비단 계약직의 경우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환이다.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면 최소한 이익은 늘지 않더라도 적자의 폭은 줄일 수 있다. 그만큼 회사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의 여유가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회사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김을 뜻한다. 그래서 어떠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구조조정의 대상을 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지 인정을 위해 그 구조조정을 훼방놓는다. 고정도 과장의 능력이 아닌 주위의 배려로 고정도 과장을 살리려 한다. 그것은 결국 누구를 위하는 것인가?
물론 고정도 과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나서는 고정도 과장의 이름을 직원들은 연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정도 과장의 지금 모습은 그들 자신의 앞으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스김에게는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매몰차기까지 한 말과는 달리 결국 미스김 자신도 고정도 과장을 구하는데 동참하고 있기도 했다. 연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어떤 연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가까운 누군가에 대한 인정에 가까울 것이다. 부서가 다르다면 몇 명이 정리해고당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다. 고정도 과장을 위해 애쓰는 자신의 모습에서 위로와 안도를 얻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결국 사기다. 회사의 입장에서 정리해야 할 대상을 정리하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그에게 있어서 그리한 것이 아니다. 주위의 인정 때문이다. 정규직이다. 신입사원이었다면 그렇게까지는 힘들었을 것이다. 오래 회사에 몸담고 있었던 과장쯤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실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더욱 역설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회사와 자신을 하나로 여겨왔던 만년과장이 마침내 구조조정을 맞이해 회사와의 이별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별의 순간은 회사가 아닌 자신이, 자기의 입장을 고려해 주도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짐덩이처럼 들쳐매져서 계단을 올라갔어도 그들은 살아남는다. 미스김은 계약직이다. 현실이다.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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