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시곗줄 없는 시계가 있었다. 탐스러운 머릿결을 가진 아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빗이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빗을 위해 시계를 팔았고, 아내는 남편의 시계를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다. 쓸모없어진 선물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아내는 몸을 팔았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그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차라리 불륜을 저질렀다고.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놀아났다고. 자신으로 인해 자기가 희생한 것을 안다면 남편은 상처받을 것이다. 남편에게 상처를 줄 바에는 자신이 나쁜 여자가 되어 모든 미움과 비난을 받는 것이 낫다.
의심은 하고 있었다. 혹시 불륜은 아닐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내를 뒤쫓아 남자가 있는 집앞까지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생만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아내가 남자를 죽인 것을 알았을 때도 오히려 아내를 위해 자기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 그렇게라도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깨닫게 된다. 아내가 지금 스스로 불륜을 저지르고 끝내 내연남까지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자가 되려는 이유를 듣게 되었을 때 진정 남편으로서 자신이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아내가 그토록 모든 진실을 자기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아내를 위하는 일일 것이다. 아내가 바라는대로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채 철저하게 배신당한 남편의 모습이 되어 비난을 퍼부어주는 것이 어쩌면 아내를 마음편하게 해주는 일일지 모른다.
남편에게는 항체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믿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전혀 믿지 않았다. 남편은 강했다. 순식간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변종인플루엔자에조차 남편은 항체를 가지고 있었다. 불륜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 아내이건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지켜주려 하고 있었다. 아내를 위해 스스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범인이 되려고까지 하고 있었다. 아마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충분히 딛고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모든 것이 파국으로 끝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남편으로, 자신은 그의 아내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부부였다.
사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상당히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흔히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몸을 팔던 주부매춘이 제법 이슈가 된 바 있었다. 파렴치한 범죄자가 될지언정 혹시라도 아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까 진실을 감추고 죄를 더 키우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 아내라도 사랑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큼이나 사랑이란 바이러스는 변종도 많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수 만큼이나 수도 많고 다양하다. 때로 아플 만큼.
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에도 변종이 많은 만큼 죄에도 변종이 많다. 그래서 수사드라마가 재미있다. 매번 새로운 변종이 나타난다. 변태적인 성적취향을 가진 피해자와 그가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들, 그리고 그로 인한 절박한 살인까지. 공직자로서 더 윗선의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증거물을 빼돌리는 이들도 있다. 차라리 여지훈(주상욱 분)의 증오는 범죄자의 그것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가 오늘도 범인을 잡고자 발벗고 뛰는 이유, 이지수와 김주철 부부가 진실을 마주하는 고통스럽고 잔인한 과정과도 닿아 있을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만난 어느 이상성애자는 여지훈에게서 자신과 같은 성향을 발견하고 있었다.
과연 백도식(김상호 분)과 남예리(조안 분)가 감추고 있는 여지훈의 약혼자를 살해한 범인 송경태에 대한 진실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여지훈과 같은 괴물에게 항체를 가지고 있기를 바랄 정도로 그토록 충격적인 것이었을까? 슬슬 밑밥을 뿌린다. 여지훈이 마주해야 할 숙제다. 다만 지금까지 진행된 경과로 보아 그것은 다음 시즌을 위한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그를 위한 과정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지수 김주철 부부의 진실과 관계있지 않을까.
트릭이 절묘했다. 마치 분위기가 질병관리국의 윤서연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듯한 암시를 주고 있었다. 현장에서 사라진 물품들과 윤서연이 접촉하고 있던 의문의 인사, 김주철이 등장하기까지 어쩌면 윤서연이 방재작업을 하면서 미리 관련물품들을 빼돌린 것은 아닌가. 실제 핸드폰은 윤서연에게 있었고 이후 빈집털이범 장석범으로부터도 PDA를 입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 황성민이 유명한 애널리스트였고 단지 그 정보를 누군가 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건은 의외로 심플한데 함정을 심어두었다. 필자도 깜빡 넘어갔다.
부제가 흥미로웠다. 감염이라. 무슨 뜻이었을까? 황성민의 악의가 이지수의 범죄로 이어진다. 황성민의 악의로부터 남편 김주철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방재작업이었을 것이다. 감염원을 미연에 차단한다. 황성민의 악의에 감염되어 고통받는 이지수와 그로부터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저질러지는 사건들. 무엇보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변종들에 대해. 역시다. 감탄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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