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 두 번의 만남과 원망, 그리움, 이름을 묻다

까칠부 2014. 2. 18. 07:04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웃는 모습을. 다른 한 번은 우는 모습을. 그녀가 울던 날 운명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사랑을 잃었고 그는 미래를 잃었다. 원망을 쫓아 찾아간 길에서 힘들지만 빛나던 때의 기억을 되짚는다. 돌아가고 싶고 돌아갈 수 없다. 정세로(윤계상 분)가 한영원(한지혜 분)를 쫓아가 말을 건 이유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줬으면.


"그러니까요? 내가 누구일까요? 아, 이은수... 이은수... 라는 사람인데요. 내가요."


많은 것을 함축한 대사일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당사자라 생각했다.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고 아버지를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만나는 순간 떠올리고 말았다.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이 되어버린 빛나던 시절의 기억들을. 그 시절을 기억하는 - 그 시절이 기억하는 한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을 기억하는지.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졌다. 어째서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었는지.


한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짧은 순간의 우연이 겹치며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알 수 없는 악의와 중첩되는 오해와 그리고 의도된 오류들이. 정세로의 아버지 정도진(이대연 분)이 박강재(조진웅 분)와 함께 한영원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 계획하면서 악연은 시작된다. 공우진(송종호 분)이 그 계획을 일찌감치 눈치채면서 계획에도 없는 납치를 하게 되고, 그 순간 정세로가 한국에서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된다. 정도진이 박강재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며 아지트는 비게 되고, 정도진의 의도를 눈치챈 정세로가 돌아옴으로써 아지트에는 공우진과 정세로 두 사람만이 남게 된다. 그 순간 총소리가 울린다. 하필 공우진의 상처를 누르고 있던 정세로의 상의에는 정도진이 훔친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세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공우진이 총에 맞는 그 순간 정세로의 아버지 정도진 역시 박강재에게 쫓기다 차에 치이고 만다. 정도진이 입원한 병원에 공우진도 역시 함께 입원해 있었다. 우연히 정세로는 한영원과 다시 마주친다. 멀리서 혼자서 울고 있는 한영원을 지켜만 본다. 공우진의 죽음에 대해 한영원이 경찰조사를 받고 있을 때 정세로도 역시 용의자로 체포되어 끌려온다. 다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문다. 심지어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공우진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엇갈린다. 마치 운명처럼 다른 의도에 의해 한영원을 만나러 가던 정세로의 걸음이 돌려진다. 간절히 만나고자 했고 반드시 만나야 했건만 그들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만나지 못한 연인처럼. 어떤 예정된 이야기처럼. 그리고 무심하게 5년이라는 시간만 흘러갔다. 오해와 상처만을 남긴 채.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곪아 썩어가고 있었다. 정세로는 자기를 잃어버렸다. 자기의 이름으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한영원 역시 자신을 잃어버렸다. 의미를 잃은 채 삶을 떠돈다. 이제 드디어 두 사람을 만난다. 오해를 간직한 채로. 악연으로 이어진 채로.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그때처럼 그들은 다시 정세로에 의해 만나게 된다. 아직 한영원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정세로 역시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정세로은 원한 이외의 것을 한영원에게서 보게 된다. 희망이란 상처가 썩어 죽어가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첫장면은 그래서 충격적이며 비극적 종말을 예고한다.


사실 그리 쉽지는 않을 작업일 것이다. 시작에서 이미 모든 내용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후의 전개를 거의 예고한 채 결말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드라마의 환경에서 과연 그 사이의 내용을 치밀하게 허술한 없이 채워넣을 수 있을 것인가. 이후의 전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지켜볼 수 있도록 흡인력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잠시만 삐끗해도 개연성을 잃고 만다. 그러나 충격과 더불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훌륭한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 아니 상당부분 충분히 예상가능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결혼을 반대하는 한영원의 아버지 한태오와 공우진은 치명적인 담판을 벌인다. 공우진의 죽음에 대해 태국경찰이 수사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한태오가 그 사이에 개입한다. 정세로가 한영원을 만나지 못한 이유다. 한영원이 정세로를 만나지 못한 이유다. 시간이 멈춰버린 두 사람의 지금이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두 사람의 비극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역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작가의 역량이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


소년의 밝은 웃음과 세상의 어둠을 경험한 어른의 음울한 표정이 한결같이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윤계상은 배우였다. 한지혜 역시 상실과 허무의 심연을 훌륭히 표현해내고 있었다. 김영철은 등장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긴장시키는 힘을 지녔다. 조진웅과 우현의 조합 또한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적당한 웃음과 긴장이 재미를 더한다. 우려는 있지만 기대가 더 크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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