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 가족과 타인의 경계에서, 부부를 묻다

까칠부 2014. 2. 19. 07:04

어떤 아이들은 일찍 어른이 된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켜줄 어른이 없다. 혹은 있어도 능력이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돈버는 법부터 배운다. 합법적인 방법부터 때로는 불법적인 수단까지. 삶의 피로는 술과 담배, 섹스, 심지어 약물까지 어린나이에 배우게 한다.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의 삶이란 어른보다 더 피폐하다.


어른이 있었다.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가 송미경(김지수 분)과 송민수(박서준 분)을 돌볼 능력이 안되었다. 결혼도 않고 유부남과 불륜으로 송민수를 낳았던 어머니는 이내 자신의 행복을 찾아 그를 버리고 떠나가고 말았다. 남편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송미경의 어머니는 자신의 비극에 취해 있었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떠나간 여자에 대한 미련으로 아버지는 두 남매를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다. 사랑받아야 했다. 아이들은 본능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위해 아이들은 거래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가.


그래서 그들 남매에게 사랑이란 조건이다. 거래다. 무조건적으로 주고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져야 했다. 완벽해지기 위해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남편으로부터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아내가 되는 방법이었다. 남편에게 유재학(지진희 분)에게 아내 송미경은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혼하고 송미경이 자신의 빈틈을 허락했을 때 유재학은 아내에게서 여자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들이 처음으로 한 남자와 여자로서 마주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격이 되어야 한다. 과연 자신에게 나은영(한그루 분)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나은영은 굳이 그런 것을 따지려 하지 않았다. 상대의 조건을 따졌지 자신의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부모에게 언니와 자신을 차별했다며 투덜댄다. 송민수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거절당할 리 없다. 어떤 경우에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은영이었다면 어쩌면 상관치 않고 송민수를 사랑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격이 없다. 자신은 자격을 잃었다. 그것이 송민수를 체념케 한다. 그렇게 익숙해 있다.


어쩌면 나은진(한혜진 분) 역시 사랑받는데 익숙해 있을 것이다. 유재학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연하게 사랑받으려 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전혀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잠시 사랑이 시들한 순간조차 그들은 견뎌하지 못한다. 김성수(이상우 분)의 부모를 보더라도 그는 또한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가. 당연해졌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그리고 지겨워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태연히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방법이야 어떻든 그들은 솔직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려 한다. 송미경은 아직도 유재학을 사랑하면서도 유재학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다. 보답받지 못했다.


어째서 부부는 0촌인가. 사랑해주는 부모도 부모다. 사랑해주지 않아도 부모는 부모다. 아무리 싸우고 틀어져도 그들은 형제일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송미경과 송민수는 남매이면서도 항상 사이가 좋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흔한 다툼조차 없이 사이좋은 남매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항상 성의를 다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가장 격의없어야 할 형제의 관계조차 이렇게 들은 왜곡되어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익숙한 유재학이라면 피곤함을 느낄만도 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이다. 송미경은 지나치게 노력했다. 지나치게 노력했기에 부부였지만 가족일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움이 부족해싸. 부부는 가족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너무 가족같았기에 결국 서로가 별개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느낌조차 사라졌다. 당연히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으리라는 확신마저 가지게 된다. 긴장이 사라지며 상대에 대한 거리마저 지워진다. 비로소 헤어짐을 고민하고 나서야 그들은 다시 잃었던 것을 되찾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보게 된다. 별개의 인격으로 여기게 된다.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남자와 여자일 때와는 다르다. 가족일 때와도 전혀 다르다. 낯설 것이다. 새로운 설레임이다. 이혼을 결심하고 나서야 송미경은 유재학에 대한 자신의 긴장을 놓는다. 솔직해지고 격의없어진다. 빈틈도 보인다. 유재학은 그제서야 송미경을 여자로 보게 된다. 이름을 불러준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와 여자처럼 낯설고 설렌다. 아직 이혼이 확정되기 전이라는 점에서 과연 공중파 드라마다운 엄숙함을 보여주고 있구나 감탄한다.


그저 자신의 아내에서. 딸의 엄마에서. 한 여자에서.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였다. 딸의 엄마였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여자였다.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처가식구들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그녀로 인해 그들과도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그녀는 며느리였다. 한 걸음 물러서니 그 관계가 보인다. 아내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자신을 배신했다면, 아직 그녀와의 사이에는 많은 관계가 남아 있다. 여전히 소중한 관계들이다. 헤어질 것을 고민하며 서로가 타인에 가까워졌을 때 그것들이 그녀와의 멀어진 거리를 채워준다. 연인의 사랑과도 가족의 정과도 다르다. 인간에 대한 신뢰이며 존경일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의 곁에 있고 싶고 그가 곁에 있어줬으면 싶다.


복잡미묘한 관계일 것이다. 단순한 남녀사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족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서로가 독립된 인격이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별개의 인간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 어머니의 말처럼 모두가 사정이 다르고 이유가 다 다르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벌써 모르게 된다. 그래서 더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남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일상들 또한. 사랑하면서도 울고,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헤어지고, 헤어지고자 하면서도 같이 밤을 지샌다. 헤어짐을 말하다가도 다시 사랑을 말하게 된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불륜은 단지 계기였을 것이다. 질문을 던진다. 부부에 대해서. 부부라고 하는 관계를 흔듦으로써 부부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요란스럽게 떨구어낸다. 무엇이 부부이게 만들고 무엇을 부부라 말하는가. 정답은 없다. 다만 한 가능성을 말한다. 그들이 잊고 있던 것.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잊고 있느 것들에 대해. 아직은 모를 일이다. 조심스럽다. 흥미롭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