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백자에 대한 오해...

까칠부 2014. 3. 9. 01:12

청자의 화려한 도자기기술을 잃어버리고 백자로 퇴보하고 말았다.


아마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청자는 보다 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진 도자기이고 백자는 보다 단순한 기술이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에 가서 청자파편의 단면을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붉다. 그리고 거칠다. 반면 백자는 단면까지 희고 투명하다. 유리처럼 날카롭다.


청자는 아무 흙이나 채로 걸러 재료로 삼는다.


백자는 고령토를 필요로 한다.


바탕이 거칠고 투박한 만큼 장식의 필요성이 생겼다. 색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백자가 청자보다 더 고온에서 구워진다.


당연히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것이 더 첨단의 기술일 것이다.


더 높은 온도를 일정시간동안 유지해주어야 한다.


분청사기가 그래서 만들어졌다.


조선초기 조선에는 고령토가 없었다.


백자를 고온에서 구워내는 기술 또한 없었다.


하지만 흰 빛깔의 도자기를 원하고 있었다.


원의 영향이었다. 몽골인들은 흰 색을 신성한 색이라 여기며 숭앙한다.


여기에 성리학의 영향으로 질박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도 더해졌다.


조선이 흰 색을 좋아한 것은 색을 넣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흰 색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연에도 염료는 넘친다. 일부러 표백해서 흰 빛의 옷을 입는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중국에서도 그래서 원을 거치며 백자가 유행하고 있었다.


다만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기에 그 분위기만 흉내내려 청자 표면에 흰 흙을 발랐다.


고령토가 발견되고 백자의 기술을 손에 넣은 뒤 분청사기가 사라지게 되는 이유였다.


조선후기까지도 아무런 무늬도 그림도 없는 하얀 그대로의 도자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 가운데는 균형조차 맞지 않는 것들이 허다하다.


지금도 지방의 오래된 고택을 보면 옹이며 비틀림을 그대로 살려 지은 집들을 볼 수 있다.


경복궁의 바닥돌마저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지지 않은 채 깔려 있다.


오히려 요즘은 그런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위의 완벽함보다 자연스러운 허술함에 더 이끌리고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조선에서 고려의 청자는 잊혀졌다.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의 무덤에서 도굴한 청자를 보여줬을 때 고종이 놀란 이유.


지금 떠돌아다니는 청자는 거의 도굴한 물건들이라 보면 된다.


조선에서는 청자의 수요가 거의 없었으니.


기술적인 미숙함을 화려함으로 가렸다.


그런데 그 화려함이 더 첨단의 기술로 비쳐졌다.


백자는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하던 조선의 멋이다.


하얀 것은 싸고 허술한 것이 아니라 더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것이다.


나는 하얀 옷을 입지 않는다. 관리하기 귀찮다.


아무튼.


여전히 오해는 떠돌아다니길래.


지금 쓰는 도자기가 무슨 색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백자인 이유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과 소고기 - 소 좀 작작 먹으란 말이다!  (0) 2014.05.24
화폐경제 비판...  (0) 2014.04.04
명예와 체면...  (0) 2014.02.19
섬노예 옹호의사 논란...  (0) 2014.02.09
도덕적 타락이란...  (0) 201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