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중세 유럽에서 모든 토지는 국왕의 소유였다. 영주는 봉신으로서 단지 국왕으로부터 영지의 생산물과 속민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아 관리할 뿐이다. 그로부터 얻어지는 수입이 국왕에 대한 충성의 댓가가 된다. 영지들은 다시 영주들의 봉신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나누어졌다. 중세봉건제도다.
그런데 처음 모든 영지는 충성을 맹세한 당사자에게만 1대에 한해 주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미 딸린 식구도 많은데 영지를 반납하고 나면 그 후손들이나 가신들이 수입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째고 버틴다. 왕에게 다시 충성을 맹세하고 봉신이 되어줄테니 영지에 대한 권리를 유지해달라. 각각의 영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봉신으로서의 의무를 다할테니 영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아다시피 중세의 군사제도는 각각의 봉신이 사병을 거느리고 평소에는 영지에 머물다가 군주의 소집령이 떨어지면 모여서 명령에 따라 군사력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봉신 가운데 누군가 군주에게 불손하다거나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 그것을 토벌하려 해도 다른 봉신들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였다. 당연히 영지의 세습문제는 다른 봉신들의 이해와도 관계가 있었기에 군주로서 아무리 자신의 소유인 영지를 회수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그렇게 흐지부지 영지는 봉신 가문의 사유지로서 그 세습이 인정되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상속세였다. 그렇다면 영지를 세습하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그에 따른 일정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의 상속세라는 것도 개인의 소유에 대한 사회적 공개념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부는 사회적 여건과 환경의 산물일 것이기에 온전히 개인의 소유이기만 할 수는 없다. 부를 세습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부를 축적할 당시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상속자 자신도 사회에 대한 기여로써 그 권리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것이 상속세다.
참고로 고려와 조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서도 공신이나 관리에게 지급하는 토지는 대부분 1대 한정해서, 그것도 수조권만이 인정되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그래서 고려에서는 토지 하나에 수조권자만 10명이 넘는 경우가 발생했고, 조선에서는 아예 토지가 사유화되고 있었다. 상속세가 없는 것은 그 과정에서 토지에 대한 국왕의 권리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근슬쩍 구렁이 담넘어가듯 그렇게 토지는 국왕의 소유에서 세력가의 소유로 넘어간다.
문득 상속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그러면 어째서 현대사회에서 상속세 폐지논란이 나오는가. 여기에 답이 있다. 모든 개인의 재산은 오롯이 개인에 귀속되어 배타적인 권리의 대상이 된다. 사유재산권이다. 그 대원칙에 위배된다. 재산취득 과정에서의 사회적 댓가는 소득세와 재산세로 이미 치렀다.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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