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혼자일 때만 자기가 자기로써 존재할 수 있다.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자기의 소유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누구로부터도 구속당하지 않는다. 강세아(한선화 분)가 범한 실수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강세아는 포획자다. 사납고 집요한 사냥꾼이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차라리 공기태(연우진 분)의 아이라도 가지고 싶다. 공기태의 분신이나마 자신의 소유로 남기고 싶다. 뒤틀려 있다. 자기의 방식으로는 공기태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사랑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공기태를 지키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장미(한그루 분)는 이번에도 역시 한여름(정진운 분)도 공기태도 누구도 버리지 못한다. 주방장에게 맞고 코피를 흘리는 한여름의 모습에 먼저 다가가고, 강세아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공기태를 위해 일단 앞으로 나서고 본다.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흔히 '어장관리'라 부를 것이다. 한여름과 진지한 관계가 되어 놓고서 이번에는 공기태의 연인으로 거짓된 관게를 시작한다.
김치라는 소재의 활용이 탁월하다. 버리려 했었다. 버리라고 했으니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버리지 않았다. 한여름이 내놓은 요리는 그의 오랜 과거의 기억이었다. 자신을 버리던 날 어머니가 부쳐주던 김치부침개의 기억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자신의 요리로 모두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굳이 서둘러 버리지 않아도 언젠가 그로부터 모두가 인정하는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진다. 성장해간다.
"이 에피소드가 안 먹힌 여자는 없었지!"
쑥쓰러운 것이다.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짐짓 가벼운 자신을 꾸미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짐을 벗어던진 듯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이야기가 가지는 무게 만큼 진심이 되어 들어주는 그녀가 있었다.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었다. 사랑할 수는 없어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자신이 낯설기만 하다. 괜히 심각해졌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다. 구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 표정까지 달라진다. 웃음까지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한여름에게 운이 없었던 것이 그리고 바로 공기태와 강세아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강세아로 인해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공기태를 보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주장미와는 달랐다. 공기태는 주장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버려져 있었다. 다른 주위의 사정이나 나중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입의 여자가 아니다. 주장미의 충동이 잠시 정리될 것처럼 보이던 네 사람의 관계를 한 순간에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만다. 아직 드라마는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이야기였다. 주장미의 아버지가 술김에 하는 이야기가 오히려 공기태 자기의 이야기였다. 오히려 주장미는 결혼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싫은 것은 공기태 자신이었다. 남의 이야기처럼 주장미의 아버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반발하다. 그것이 그렇게 크게 잘못된 것인가. 하지만 주장미가 해놓은 아침밥을 투덜거리면서도 끝내 깨끗이 먹어치우고 만다. 아침밥을 안먹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먹지 못한 것 뿐이다. 혼자인 것이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여서 좋았던 경험이 너무 없었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마 강세아의 성급함이 아니었다면 공기태의 그같은 바람은 벌써 3년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관계가 더욱 복잡해져간다. 한여름에 대한 주장미의 감정은 진심이다. 주장미에 대한 한여름의 감정 또한 다른 장식을 배제하고 무겁고 직설적으로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와서 두 사람의 사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기태와의 관계 역시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 주장미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앞서가버린 진심이 여전히 두 사람 사이를 결혼을 앞둔 연인으로 남겨 놓는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다. '연애 말고 결혼'이라는 제목은 '한여름 말고 공기태'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진심과 결혼이라는 또다른 진심이 역설처럼 서로 엇갈리려 한다. 물론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로맨틱코미디의 시작이며 끝일 것이다.
강세아와 신봉향(김해숙 분)은 비슷한 듯 다르다. 신봉향은 늪이다. 자기를 녹여 만든 거대한 늪이다. 거기에는 어떤 형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강세아가 오로지 한 사람 자신의 먹잇감만을 노린다면 신봉향은 주위의 모두를 자기의 늪으로 빠뜨리고 만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생각조차 않으며. 강세아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강세아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단지 모든 판단과 선택을 혼자서 한다는 것 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결국 혼자라는 것. 두 사람의 곁에 공기태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후회마저도 강세아는 혼자서 한다. 어쩌면 그녀가 슬픈 이유일 것이다.
선의가 선의가 아니게 된다. 남현희(윤소희 분)는 진심이었다. 주장미 역시 진심이었다. 남현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훈동(허영민 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현희가 간절히 바라는 진심이 바로 이훈동이었음에도. 그녀의 선의가 이훈동으로부터 '실수'라는 고백을 받아내고 말았다. 실수가 언젠가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랐던 남현희의 진심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차라리 복선과도 같다. 섣부른 진심이 오히려 상대를 상처입히고 말았을 때. 사과할 때를 놓치고 더이상 사과할 기회조차 사라져버리고 만다. 성급한 것은 무엇이든 가벼워진다.
다시 시작한다.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번에는 주장미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며 상황을 이어간다. 하필 한여름과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난 그 순간 주장미가 먼저 공기태의 입술을 덮치고 만다. 결국 모두를 속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모두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기태가 걱정된다. 한여름을 향한 진심과는 다른 또다른 진심이다. 이제 무엇을 만들어가게 될까.
주장미는 무모하고 공기태는 비겁하다. 기꺼이 망가질 줄 안다. 한심해질 수 있다. 완전무결한 사랑은 없다. 빈틈없는 관계라는 것도 없다. 삶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오히려 더 큰 틈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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