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셋 - 복수의 이유와 죄의 증거, 딜레마의 실종

까칠부 2014. 10. 13. 03:47

역시 뚝뚝 끊긴다. 배우의 연기도, 장면의 연출도, 이야기의 흐름도. 대강의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제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한 듯하다. 


7년 전 김회장(김학철 분)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평화의 집'을 탐내어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차우진(천정명 분)이 은폐했다. 살아남은 조합장 조봉학(장혁진 분)이 강윤성이라는 가명으로 사형수로 위장 교도소에 숨어 김회장에 대한 복수와 차우진이 감춘 진실의 회수를 위해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건의 전말이다.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아주 흔한 딜레마다. 눈 앞의 죄와 멀리 있는 정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장 눈앞에 수많은 살인을 뒤에서 교사한 범죄자들이 있다. 교도소 안에서 조직까지 만들고 무언가 불법적인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 정황이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들은 거대한 악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피해자인 그들은 사이비종교의 희생자가 되었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오히려 밝은 세상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몸에 누리고 있었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검사인 차우진이 도왔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타인을 절망에 빠뜨리는 계획에 동참하고 말았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김회장이 악인 것을 안다. 자신이 옳지 못했다는 것도 안다. 분명 자신은 그때 검사로서 - 아니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 피해자들이다. 자신 역시 가해자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탈옥을 시도하는지 모르는 그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들의 복수가 정당하더라도 검사로서 그들이 법을 어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정의인가. 조봉학의 탈옥을 저지하려 한 차우진의 행동은 정의로운 것인가. 그동안 옳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김회장과 거리를 해 온 것도 역시 차우진이었다.


결국은 복수다. 개인의 복수를 위해 차우진은 검사로서 자신의 양심을 저버렸다. 인간으로서도 도리를 저버리고 있었다. 다시 조봉학이 복수를 위해 사람들을 배후에서 조종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도 사이비 종교의 신도로 매도당한 그들을 위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실조차 아는 이 하나 없이 철저히 잊혀지고 만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복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었던 자신들의 협력자들처럼. 그래서 그 복수는 옳은가?


하기는 복수란 옳고 그르고의 차원이 아니다. 복수는 감정이 시키는 것이다. 정의는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우진은 검사로서의 자신의 양심마저 저버렸다. 양심이란 이성이 지향하는 목표이며 가치다. 보기에 답답할 정도로 철없이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조은비는 그런 무모한 복수심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와 관계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차우진이 복수를 위해 7년 전 검사로서 자신의 양심을 저버려야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공권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개인의 일방적인 감정에만 휘둘리는 복수로 인해 다른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 차우진의 무모한 복수심으로 인해 세상의 무관심과 망각 속으로 내던져져야 했던 '평화의 집' 사람들처럼. 조봉학이 복수하는 과정에서도 억울한 피해자는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것이 복수다. 그래서 엄정한 기준을 세운다. 사회의 공적 질서와 정의를 위해 죄를 지은 자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처벌한다. 그런데 정작 법을 집행해야 할 차우진 자신이 복수를 위해 그 의무를 저버렸다. 이 모든 일들이 어쩌면 그때 차우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비롯되었을 것이다. 바로 법이, 공권력이 그들을 버렸다.


모순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드라마가 힘을 잃고 마는지도 모른다. 그 모순을 주인공인 자신이 내면에 담아내야 한다. 자신이 저버려야 했던 검사 - 아니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참혹한 복수극, 그리고 그를 다시 저지해야 하는 검사로서의 의무가 차우진 안에서 충돌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차우진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시청자 자신이 드라마의 딜레마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주인공인 차우진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따로 논다. 조봉학의 복수와 조은비의 방황과 김회장의 악의가. 그러고 보면 검찰 내부로부터 차우진이 고립되는 이유였던 비밀장부마저 어디론가 이야기가 사라져버렸다. 차우진과 그 동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 목표마저 모호해진다.


하기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을 잃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 작은 단서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고민을 하려 해도 고민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당황스러울 것이다. 시청자 역시 당황스럽다. 대강의 사정은 알겠는데 드라마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지는 못한다. 차우진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어야 했다. 차라리 한 권 짜리 소설이거나 2시간짜리 영화였다면 충분한 반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외적으로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계산이 무언가 잘못되었다. 착각한 듯하다.


소품의 연극을 보듯 각각의 시퀀스가 독립되어 있다. 독립된 세트에서 독립된 장면을 서로 떨어져서 연기한다. 그것을 잇는 고리역할을 해야 할 장면들이 허술하다. 의도와는 달리 과정은 그다지 능숙하거나 매끄럽지 못하다. 부분만 본다면 훌륭하다. 전체는 아직 미흡하다. 특히 주연으로서 배우 천정명이 놓쳐버린 그의 책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주연이기에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본격적이 되려 한다. 조봉학은 김회장을 납치하고, 김회장이 보낸 킬러는 조봉학의 딸 조은비의 주위를 맴돈다. 여전히 차우진은 감옥에서 조봉학과 함께 갇혀 있다. 주위가 움직인다. 느슨했던 만큼 보다 급하게 드라마를 몰아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시청자를 다그친다. 사실 지금도 너무 늦다.


여러가지로 흥미를 자극할만한 요소들이 많다. 아마 지나고 인상에 대해 말하라면 꽤 재미있었던 드라마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아쉽다. 기대가 있었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