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하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주제는 명확하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대충 알겠다. 어떤 것들을 보여주려 하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각각의 장면이나 상황들은 나쁘지 않은데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각자 따로 논다. 초반에 느꼈던 기괴함은 단지 작가로서의 미숙함일 뿐이었는가.
두 사람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솔직히 놀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던 이야기다. 만족할 만큼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분노였을 것이다. 자신을 좌절케 했던 현실에 대한 원망이고 울분이다. 자식만큼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았으면.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삶이기도 하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마저 절대시하도록 만든다. 자부심과 열등감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함께 온다. 자부심이 클수록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이 겪어야 했던 현실의 부조리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맨몸 맨손으로 거대그룹의 계열사 사장자리까지 올라갔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모두가 우러르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만한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갖춰져 있었다. 더 이상 높으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다름아닌 현실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몹쓸짓까지 해가며 아들 주홍빈(이동욱 분)의 주변을 관리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토록 기대하고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자신과 같은 굴욕과 좌절은 겪지 않도록 하겠다. 아들이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아들이 원하는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과 다를 수 있음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또다른 아들 주홍주(이주승 분)에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아들이 가지는 재능과 가능성은 아버지가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손세동(신세경 분)의 아버지는 달랐다. 손세동의 아버지 역시 자기에 대한 확신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다만 주장원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라면 손세동의 아버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더 사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사랑했다. 어린 딸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해서 작은 것이나마 하나씩 채워나가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작은 하나하나에는 딸을 향한 자신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과정이 고될수록.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오로지 내 힘으로 내가 진심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만이 가치가 있다. 우연히든 혹은 남에게 기대서든 자기 손으로 이루지 않은 것들은 가치가 없다. 친구의 성의였을 텐데도 그래서 아무 노력 없이 공짜로 얻은 컴퓨터에 기뻐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매를 들어야 했었다.
남자친구가 거대게임회사 회장이다. 당연히 가진 것도 많고 누리는 것들도 많다. 그런 남자친구를 가진다면 여자친구 역시 그것들을 함께 가지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일부는 가지고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하지만 거부한다.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남자친구의 일방적인 호의에 의해 주어지는 것들이다. 남자친구의 호의가 사라지면 역시 함께 사라질 것들이다. 혹시라도 그 호의가 사라질까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아니면 그조차도 당연하게 여기며 그런 현실에 길들여지거나. 어느 쪽이든 남자친구의 호의가 사라지면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남자친구의 호의에 기대어 얻은 것들로 자존심을 대신하기에는 손세동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살아온 과정들은 영혼에 남게 된다.
지나치게 의도적이다. 하필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졌다. 서로 다른 극단의 환경에서 서로 다른 가르침을 받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우연처럼 만나고 운명처럼 사랑한다. 서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주고 받는다. 다만 이 경우 손세동은 주홍빈이 가진 '물질'을 거부하며 주홍빈과 사귀어야 할 이유를 잃고 만다. 주홍빈에게는 손세동이 탐낼 만한 것이 없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주홍빈과 손세동 사이의 어쩌면 현실을 뒤집는 일방적인 관계는 그렇게 성립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가진 자는 손세동이고 강자 역시 손세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무언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마음이 머물 곳은 없다. 이입하기가 힘들다. 정작 주인공임에도 주홍빈이나 손세동 누구에게도 자신을 이입시키지 못한다. 차라리 주홍주를 야단치던 주장원에게 잠시 이입한다. 주장원에게 야단맞고 어두운 밤길을 터덜거리며 걷다가 주장원이 창밖으로 던진 핸드폰을 발견하고 그 속에 마치 빛처럼 비치는 손세동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홍주에게도 잠시 이입할 수 있었다. 상당히 장식적인 연출이었다. 주홍빈과 손세동이 서로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못이루며 벌어지는 헤프닝 역시 상당히 작위적이면서도 감각적이었다. 주홍주에게 문자로 자신의 잘못을 구구절절 전하려는 정원사의 의도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운전사의 모습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뿐. 결국 드라마란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 아쉽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들춰보면 재미있을만한 것들이 넘쳐나는데. 그나마 얼마전까지 독특한 소재와 분위기로 상당히 흥미를 잡아끌기도 햇었다. 하지만 평범해지면서, 더구나 흔한 사랑이야기로 바뀌면서 사소한 미숙함이나 어색함이 더 크게 강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장점을 잃고 장점만 드러난다. 주장원과 윤여사(이미숙 분)의 원숙한 연기력만 아깝게 되었다. 잠시라도 눈길을 잡아두는 것은 이들의 노련함이고 존재감일 것이다. 차라리 처음 의도한 그대로 몸에서 칼이 돋는 괴력의 아이언맨을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방향을 잃고 헤매는 미아의 느낌이 아마 이러할 것이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낯설지만 한 편으로 기대도 컸었다.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신선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주연들의 매력을 정확히 포착해서 전달하는 능력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힘이 부치는 것은 그것을 뒷받침할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황폐한 폐허 위에 오래된 신상처럼 배우들만이 오도카니 서 있는 모습이다. 낡고 부서져가고 있다. 실망이 크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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