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상류사회의 품격, 유쾌한 위선과 가식

까칠부 2015. 2. 25. 03:32

유쾌하다. 이런 것이 바로 진짜 상류층의 모습일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 비례하는 여유와 품위, 격조, 예절, 교양... 비록 그것이 위선이고 가실에 불과할지라도 최소한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어느날 아들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데려온 정체도 알 수 없는 여자아이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고 최대한의 성의를 다한다. 만에 하나라도 그로 인해 꼬투리를 잡힐 일을 만들지 않겠다.


확실히 지나치게 빠른 성장이기는 했었다. 뿌리없이 가지만 무성하게 열매를 맺으려 했었다. 한국드라마에서 상류층이라고 묘사되는 이들의 모습이 거의 그랬었다. 너무 쉽게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악의를 감추거나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게을리한다. 주위에서 자신을 어떻게 여기든. 그래서 세상이 자신들을 두고 무어라 이야기하든. 하기는 그마저도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얼마든지 누를 수 있다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과연 모든 눈과 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때가 되었다. 해방이 되고도 무려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반세기 넘는 시간이 지나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고, 또 누리고 있는 것들 만큼, 그에 비례해서 세상의 인정과 존경까지 모두 가지고 누리고 싶어하는 진짜들이 나타날 때도 되었다. 국가고위직에 앉겠다는 이들이 시정잡배들이나 쓸만한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여 푼돈을 아끼고, 부를 늘려왔다. 차라리 비웃음이나 연민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혹은 자신이 가진 힘을 동원하면 두려움에 떨게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러나 사회적인 존경을 받기에는 너무 아쉽다. 최소한 가식일지라도 그에 걸맞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란 얼마나 귀중한가.


그래서 밉지 않다. 아들이 데려온 여자를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 과연 여자가 임신한 아이가 아들의 아이가 맞는 것인지. 여자에게는 다른 불순한 의도가 없는 것인지. 설사 아들의 아이가 맞더라도 온전히 가족으로 맞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아들 한인상(이준 분)이 데려온 여자 서봄(고아성 분) 앞에서는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봄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친절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결국 어머니 최연희(유호정 분)는 서봄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조금 더 일찍 폭발했어야 했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은 한인상을 보는 순간 폭발하고 있었다. 


물론 가식이었다. 진짜 서봄을 생각했다면 진통이 시작된 순간 바로 구급차부터 불렀을 것이다. 출산을 위한 모든 설비가 갖춰진 병원에서 경험많은 의사의 도움을 받도록 조치했을 것이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119 구급대원들을 거짓말을 해서 돌려보낸다. 산파의 경험도 없는 가정부 정순(김정영 분)에게 서봄의 출산을 돕도록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일상적인 수평적 구조만틈이나, 아니 그보다 엄격하고 완고한 수직적 구조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민주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그 구조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한 번 얼굴도,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생판 모르는 여자아이다. 어느날 갑자기 임신한 몸으로 아들의 손에 이끌려 찾아왔는데 그러마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다만 그 방법은 아니나 다를까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다. 먼저 아들과 여자를 떼어놓는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를 따로 떨어뜨려 놓고 관리한다. 여자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다.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여자와 아이다. 아들을 먼저 고시공부를 핑계로 고립된 장소에 격리하여 자신들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만든다. 만에 하나 여자와 아이를 따로 분리해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 여자나, 혹은 아이의 존재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만든다. 떨어져 있으면 약해진다. 그만큼 수고도 덜 든다. 그러면서도 정작 엄마와 떨어진 아이를 위해 아기방을 꾸며주고 최고의 돌보미를, 그것도 먼저 다른 사람과 예약이 되어 있던 것을 빼와서 보살피게 할 정도의 성의는 보여주고 있다. 아마 그들이 말하는 양식일 것이다.


얼마나 그 말을 하고 싶었을까?


"너는 수치심도 없니?"


그 순간에조차 비서는 바로 곁에서 더 이상 거친 말을 쏟아내지 못하도록 최연희의 입을 막는다. 어쩌면 자신보다, 자신의 진심보다 더 가치있는 무엇을 위해서. 그것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그러나 워낙 상식을 벗어난 상류층의 모습이 드라마등을 통해 너무 많이 보여져 왔기에 한 편으로 재미있기도 하다. 차라리 이만큼이라도 위선이고 가식이나마 품위와 양식을 지키려는 상류층의 모습이 흔했더라면 드라마는 의도대로 '블랙코미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웃기에는 그 노력들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서봄을 잊지 못해 이사한 주소까지 알아내어 찾아가서는 임신한 사실에 지레 놀라고 당황해 벌벌 떠는 이준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하기는 한참 나이를 먹은 뒤에도 정식으로 결혼한 법적인 아내의 임신소식에도 당황하고 마는 것이 남자인 것이다. 만으로는 아직 10대,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했다. 한 번의 관계였고, 그동안 편지 한 장 말고는 연락도 없었다. 한겨울에 강물로 뛰어들려 했을 만큼 충격이었을 것이다. 꿋꿋하게 버티는 것 같던 서봄 역시 이준 앞에서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해달라 이것저것 보여주고 있다. 그 필사적인 노력이 강물로 뛰어들려는 한인상의 모습에 그만 무너지고 만다.


"수치심은 제가 이겨낼게요."


그 모든 것을 쥐어짠 한 마디였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그로 인해 학교마저 그만두어야 했던, 그럼에도 아이를 지키고자 했던 한 어린 엄마의 필사적인 의지였을 것이다. 그 모든 고통과 후회와 수치심과 두려움에도 끝끝내 당당해야 했던 그야말로 엄마였을 것이다. 그 순간에조차 완전히 당당해지지 못하는 움츠러진 모습에서 고아성은 필사적으로 쥐어짠 용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한 장면으로 고아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누군가의 아들이다. 혹은 누군가의 손자다. 그 누군가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 앞에 온다. 너무 대단한 때문이다. 한낱 미약한 자신보다 더 대단한 누군가의 이름이 자신의 존재마저 짓눌러 버린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럽기 위해서. 그것이 얼마나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고통이 되는가. 하지만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또한 그들이 가진 의무이기도 하다. 최연희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억누르는 것처럼. 흥미로운 이유다. 서봄이 아버지 서형식의 딸이듯 한인상은 아버지 한정호(유준상 분)의 아들이다.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한 편으로 조화시켜 갈 것인가. 그냥 이기기만 하는 것은 너무 쉽다. 두 아들과 딸의 험난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너무 적들이 막강하다. 그들은 아직 너무 미약하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마였다. 색감도 어둡고, 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것도 그다지 썩 유쾌한 소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코미디였다.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위선이고 가식일지라도 상류층으로써, 더구나 법을 직업으로 삼은 법조인으로써,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고자 필사적인 모습들이 신선하게만 다가왔다. 그들의 또다른 진심을 보았기에 더욱 그 노력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보는 내내 아주 기쁘게 웃을 수 있었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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