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욕망에 흔들리는 한인상, 서봄 결심하다!

까칠부 2015. 5. 13. 04:38

어쩌면 현실적이다. 물적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정의한다. 사회만이 아닌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란 자체가 어쩔 수 없이 물질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것이 물질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욕망과 본능은 물질을 전제로 충족된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더 안락한 삶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다.


아마 그동안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그냥 주어지고 있었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굳이 물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공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도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이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것들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게 될 것인지. 서봄(고아성 분)은 영리하다. 하기는 자신 역시 같은 과정을 겪어 왔었다.


흔들린다. 아니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만다.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다. 한인상(이준 분) 자신에게서 그 모든 것을 소유한 아버지 한정호(유준상 분)에게로. 한정호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자기가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아버지 한정호가 얼마나 서운하고 기분나빴을지. 단지 한정호 부부가 나가라 했더라는 말만 듣고서도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은 모든 것이 서봄의 잘못이라 지레 단정짓고 만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 역시 죄인이다. 그것이 권력이다. 모든 것의 기준. 모든 것의 중심. 그렇게 자신을 잃고 권력에 동화되어 간다. 한인상이 아버지 한정호에게 그동안 잘못한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서봄의 표정이 달라진 이유였다. 이미 그 순간 서봄은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인상과 자신은 다르다. 처음부터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현실이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해서도, 판단해서도, 결론을 내려서도 안된다. 아니 생각은 자유다. 판단 역시 재량이다. 그러나 어느것도 스스로 결론짓거나 결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무의미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하든 그것은 결국 힘을 가진 누군가의 결정에 맡겨질 뿐이다. 한인상과 한이지(박소영 분)라면 가능하다. 그들은 한정호의 자식이다. 피로 이어진 이른바 천륜이다. 관계를 단절하기보다 인내하고 관용하는 쪽이 더 편하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 자식인 자신은 얼마든지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을 돌려도 되는 존재다. 그래도 무엇하나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한계였을 것이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모든 것을 한정호 부부에 맞춰 왔었다. 한정호 부부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납득시켜 왔었다. 하지만 서봄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너무 잘 키웠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아마 이비서(서정연 분)가 그 계기가 되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고용인들의 집단행동 역시 그녀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것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존재 역시 전혀 별개였다. 차라리 맞서려 한다. 그 댓가로 모든 것을 내놓으려 한다. 서봄이 진정 지키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엄이며 의지였다. 스스로 결론짓고 결정할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개인으로서의 권리였다. 그를 위해서라면 더 소중한 것도 포기할 수 있다.


문제라면 한인상의 경우 서봄이 일찍부터 깨닫고 있던 그 권력의 실체를 이제서야 겨우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서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당장 어떻게 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힘이었고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어느새 휩쓸리고 만다. 자신도 모르는 새 자기 자신마저 잃어 버리고 만다. 비로소 자신을 되찾게 된 뒤라도 한인상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대로 힘의 유혹에 휩쓸린 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원래의 자신을 되찾을 것인가. 가장 현실적인 것은 지금의 자신을 원래의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스스로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너무나 자연스런 수순이다.


문득 해피엔드와는 거리가 먼 불편한 결말을 예상하게 된다. 한인상과 서봄의 호의에 기대어 한정호 부부로부터 많은 것들을 양보받은 이비서가 자신이 알고 있는 양비서(길정화 분)의 약점을 빌미로 한인상 부부가 물려받게 될 재산을 가로채려는 계획을 꾸민다. 박선생(허정도 분)과 박집사(김학선 분) 부부도 동참하고 있었다. 선량한 얼굴 뒤에 가려진 약자의 비열한 이기심을 보여준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그런 것들이었다. 양비서 양재화 역시 한정호의 일을 돕던 방식 그대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장차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될 막대한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한인상과 한인상의 선의에 기대어 그것을 탐내려는 이비서의 입장이 충돌한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인상이 선택하기 전에 서봄 자신이 먼저 선택하려 한다. 한인상이 결론내리기 전에 서봄이 먼저 자신의 결정을 말한다. 자신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지우고 자신을 잊으며 일방적으로 맞춰가는 비참한 삶은 더이상 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이고,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이다. 한인상에게 묻는다. 아니 확신하고 있다. 너무나 표나도록 달라진 한인상의 표정과 말투등을 보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다. 마지막 자존심일 것이다. 신데렐라는 동화속에서나 아름답다. 아름다운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어째서 회사일은 순서가 나오는데 집안일은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까?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자신과 대등한 존재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힘의 우열이 개인의 관계까지 정의한다. 그가 살아온 세계였다. 욕망이 지배하고 본능에 이끌리는. 그에게 이성과 논리란 그것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체계와 구조로써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감정을 무조건 부정만 하는 것이 이성은 아닐 것이다. 이성과 감정은 별개가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이란 의미가 없다. 단지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옳다. 정의롭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한정호가 가진 힘이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자신과 대등한 다른 여성에게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약자들의 연대가 어떻게 어이없이 무너지는지 적자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한인상과 한이지는 자신들이 받게 될 유산에 이끌린다. 이비서를 비롯한 고용인들도 원래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에 대해서마저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서형식은 자신의 딸만을 생각하고,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는 동생 서봄과 남자친구 윤제훈(김권 분)에 대한 걱정으로 앞장서서 말리고 있다. 그래서 권력은 강하다. 그들은 흔들 수 있는 모든 욕망과 공포를 권력은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 어지간한 용기와 의지없이 연대조차 쉽지 않다. 한정호의 능란한 대처 앞에 한인상이든 서봄이든 너무나 무력하다.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한인상에 대한 후계자플랜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들썩이는 주가를 보며 최연희(유호정 분)등이 대중의 심리를 비웃자 송재원(장호일 분)이 무심히 한 마디 한다. 자신들이 주식으로 앉아서 돈을 버는 이유가 바로 그 개미들 때문이라고. 대중의 무지일까, 기득권의 오만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적나라해서 아무렇지 않다.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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