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가면 - 허술해서 더 아슬아슬한 짜릿한 긴장감

까칠부 2015. 6. 12. 04:23

아슬아슬하다. 스스로의 의지로, 완벽한 준비까지 갖추고, 무엇보다 탁월한 연기력으로 철저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할지라도 언제 들킬지 몰라 불안불안했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거짓일지라도 진실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미처 살피지 못한 사소한 사실들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옭죄어 오면 순간의 기지와 임기응변으로 그것을 극복해간다. 장르의 전형이다.


그런데 정작 변지숙(수애 분)에게는 스스로 서은하가 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름만 서은하일 뿐이다. 연기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모든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철저히 원래의 변지숙 자신으로서 이루어진다. 아마도 서은하와 너무나 똑같이 닮은 변지숙의 존재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결혼을 위해 몇 차례 직접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던 최민우(주지훈 분)조차 설마 눈앞의 서은하가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기믹이다. 시청자는 안다. 서은하가 사실은 변지숙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변지숙의 연기가 너무나 허술하고, 심지어 무성의하기까지 하다는 사실 역시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변지숙과 서은하 두 사람을 모두 보았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드라마속 인물들 가운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너무나 뻔하고 서툰 연기가 당장 들켜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러나 변지숙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감히 의심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스릴이 넘친다. 이런데도 속아넘어간단 말인가.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변지숙 자신의 의지결여로 인한 부주의가 원래의 가족마저 송여사(박준금 분)와 최미연(유인영 분)에게 노출시키고 만다. 민석훈이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고 조작하지 않았으면 벌써 변지숙은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가족들은 그들의 욕망을 위한 이용의 대사으로 전락했을 수 있다. 변지숙이 남긴 흔적을 쫓아 동생 변지혁이 변지숙 앞에 나타난다. 눈치껏 누나 변지숙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미연의 의심을 넘기기는 했지만, 변지혁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의 큰 변수로서 다가온다. 변지혁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그를 위해서 어떤 행동들을 보이게 될 것인가.


사채업자 심사장(김병욱 분)의 존재 역시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향한 그의 탐욕과 집념이 자신이 가진 채권을 모두 인수해 간 민석훈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변지혁을 임시지만 수금원으로 고용해 부리고 있다. 사실상 변지숙의 가족이 그의 손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지숙을 위협하면서 한 편으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민석훈은 그의 탐욕과 악의에 맞서야 한다. 6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민석훈의 미묘한 표정의 변화는 그 과정에서의 또다른 드라마를 예감케 한다. 처음부터 민석훈은 변지숙과 닮은 서은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진심이 되어 간다. 거짓이 가장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진실 그 자체일 것이다. 자신은 서은하가 아니다. 그렇다고 변지숙이 되어서도 안된다. 눈앞에 그리던 가족을 보고도 솔직하게 가족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라 거짓말한다. 가족을 부정한다. 최민우가 조금씩 자신을 향해 보여주는 진심은 변지숙이 아닌 서은하를 향한 것일 터였다. 변지숙도, 서은하도 아니며, 변지숙 자신도 서은하도 될 수 없다. 비로소 깨닫는다. 최민우의 품에서 춤추며 잠시 마음놓던 그 순간 저주처럼 현실은 그녀를 일깨우고 만다. 타락이라기보다는 굴복이다. 자신의 거짓과 자신의 죄 앞에 그녀는 조금씩 작아지려 한다.


최미연의 배려 아닌 배려로 인해 최민우의 생모 기일에 동행했다가 그만 외딴 곳에서 단 둘이 하룻밤을 지새게 된다. 최민우의 더 깊은 진심을 들었다. 최민우가 베푸는 배려를 누리며 안겼다. 최미연의 의도래도 두 사람이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그저 행복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 모습을 보는 민석훈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있다. 두 사람을 찾아나서려는 자신을 붙잡는 최미연에게 달래듯 던져준 '사랑한다'는 한 마디가 정확히 대비를 이룬다. 너무 쉬운 거짓된 말과 너무나 어려운 말로 전할 수 없는 진심이다. 선택해야 한다. 그가 쫓는 욕망과 이성은 말에 속한다. 최미연은 홀로 남는다.


확실히 최미연은 여러가지로 오해받기 쉬운 타입일 것이다. 민석훈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알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민석훈을 사랑하면서 누구보다 증오한다. 자신은 어찌되든 상관없다. 어쩌면 최미연 역시 남모를 깊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잔혹해지는 것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큰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민우와 서은하가 진심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최미연의 말은 결말을 위한 어떤 복선일 수 있을 것이다. 서은하가 아닌 최민우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원한다. 민석훈을 심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의외로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의 무게에 비해 내용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랑이야기로 흐르는 듯하다. 인간의 탐욕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전면에 내세워진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사랑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리고 화해한다. 보편적이다. 가면들이 얇다. 쉽게 속내를 드러낸다. 시청자의 특권이다. 정작 드라마의 인물들은 알 수 없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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