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탐정들은 굳이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고작 몇 마디 단서만으로 얼마든지 사건의 진실을 꿰뚫을 수 있었다. 세계는 고정되어 있었고, 완결되어 있었다. 필요한 몇 가지 단서와 논리만 주어진다면 먼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세계는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탐정들은 직접 발로 뛰며 온갖 함정과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추리가 아닌 수사를 통해 사건은 해결되고 있었다.
프로파일링이란 그처럼 직접 발로 뛰며 위험하고 불확실한 현실과 부딪혀야 했던 탐정들을 위한 문명의 이기였을 것이다. 역시 단지 주어진 몇 가지 단서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 실제 범죄자의 상당히 구체적인 부분까지 앉은 자리에서 재구성해낼 수 있다. 나이와 성별, 직업, 학력, 경제력, 성격, 성장환경, 대인관계 등등 얼굴을 제외한 범죄자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굳이 발로 뛰어 알아낼 필요 없이 프로파일러 개인의 기량에 의해 밝혀진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보다 고도화되며 한없이 복잡해지고 있었지만, 심리학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마저 질서를 부여하고 있었다. 세계는 무한하지만 인간은 유한하다. 다시 탐정들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찌보면 주인공 이현(서인국 분)은 고전적인 탐정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실제 현장을 발로 뛰며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사관들의 몫일 것이다. 더구나 대학교수다. 수사관이 아니다. 단지 수사관들이 보고 있는 현장과 단서들을 통해 수사관들이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파헤쳐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사관들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쫓고 있는 사건이 따로 있다. 그것은 망각의 저편에 감추어져 있는 자신을 향한 저주이며 주박이다. 공권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천재적인 범죄자의 존재 역시 상당히 고전적이며 전형적이라 할 것이다. 형제이며 쌍동이다. 또다른 자신이다. 이준영(디오 분)이 아버지 이중민(전광렬 분)을 죽이던 그 순간 이현은 자신의 친동생을 잃고 있었다.
마치 첫사랑과도 같다. 잃어버린 혈육이기도 하다. 실제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 일부를 가지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현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된다. 잃었던 것을 찾고, 잊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차지안(장나라 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현의 뒤를 쫓아왔었다. 이현의 아버지 이중민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파일도 그녀의 손안에 있다. 오랜 짝사랑처럼 그 사실을 오로지 차지안 자신만이 안다. 아직 이현은 알지 못한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미묘함. 사건을 쫓으며, 진실을 쫓으며, 서로의 마음을 쫓는다. 역시 공중파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빠지면 아주 심심할 것이다.
물론 시작이다. 프로파일만을 가지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은 처음에만 가능한 일종의 특전일 것이다. 사건을 더욱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그를 쫓는 과정 역시 더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그렇더라도 현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오로지 자신만의 사건에 몰두하는 탐정의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고전적인 추리물에 익숙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탐정에게 협력을 구하면서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경찰과의 미묘한 거리 역시 매우 익숙하다. 탐정과 경찰은 원래 협력자이면서 경쟁자다. 사건의 해결은 원래 경찰의 일이었다. 다행히 경찰쪽에도 주인공과 견줄만한 비중있는 역할들이 제법 있다. 단지 탐정의 손발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고와 같은 것일 터다.
던전과 같은 긴 통로 끝에서 만난 어두운 방과 어린시절 갇혀 있던 좁은 밀실이 묵시적인 암울함을 느끼게 한다. 이준영이 암시한 것처럼 그는 그렇게 망각과 단절의 밀실에 갇힌 채 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의 밀실의 문을 열게 한 것이 이준영이었듯 이번에는 다른 누군가가 그 밀실의 문을 열게 될까. 이준영을 만나기 위해 돌아왔다. 이준영과의 해묵은 악연을 풀기 위해 굳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끔 누가 주인공인가 아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강력한 스포일러가 된다. 주위의 어디엔가 이준영은 숨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라면 사이코패스라고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일 터다. 어차피 주위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하면 주위와의 관계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익이 되도록 만들고 유지할 것인가 역시 학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신이 프로파일러이면서 오히려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로 남게 될 상실과 단절을 강요한다.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채 억압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강요하려 한다. 오히려 이준영이 이현의 구원자였을 것이다. 이준영과 이현이 만나는 장면이 매우 의미심장한 이유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대하는 것 같지 않다. 이 부분은 또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캐스팅을 보는 순간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다. 서인국은 갈수록 연기가 좋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장나라는 여전히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상큼한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답답할 정도로 암울한 악의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다. 미묘하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연쇄살인이다. 괴물이라 할 정도로 천재적인 범죄자다. 그 뒤를 쫓는다. 각자 무거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랑을 한다. 출발은 좋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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