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스스로 선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선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선할 수 있었다면 그것을 굳이 '선'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악이란 욕망이고, 욕망은 곧 본능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본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살기 위해 죽이고, 갖기 위해 빼앗으며, 지키기 위해 속이고 이용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죽이면 안전하다. 빼앗으면 풍요롭다. 속이고 이용하면 편리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차라리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 내어주고 궁핍하기를 선택한다. 속아주고 이용당하며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것마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더 편하다. 그러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을 사실로 만든다. 더 큰 기쁨이 있다. 더 큰 만족이 있다. 당장의 현실의 고단함이나 곤란함에도. 불리함이나 어려움에도. 감각과 경험 너머의 추상을 인지하고 추구한다. 인간의 양심이고 이성이며, 또한 인간이 존엄한 이유다. 더 쉽고 더 편한 길을 두고, 굳이 더 힘들고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 한다. 더 가치있는 길을 쫓는다.
어쩌면 출발은 같았을 것이다. 살인자의 자식이었다. 살인, 강도, 강간, 폭행,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를 죄책감 하나 없이 저지르고 다닌 추악한 범죄자를 아버지로 두고 태어났었다. 한 사람은 실제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친아들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친아버지를 살해한 범죄자를 친아버지로 멋대로 오해하고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로 상반된 선택이 결국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범죄자를 친아버지로 둔 아들은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친아버지가 아님에도 친아버지라 여긴 다른 아들은 아버지를 닮은 자신에 안주해 버렸다. 사람을 살리고 죽었으며, 단지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하필 그 아들을 죽인 것이 범죄자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또다른 아들이었다는 것은 인과응보였을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드는가? 사람들은 순자가 선악설을 주장한 것만 알지, 인간의 악한 본성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엄격하고 바른 법과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낙원에서 죄를 짓고 추방당했기에 인간은 더욱 신의 말씀에 충실해야 했었다. 가장 선하고 정의로운 이들이 가장 악한 죄를 짓는다. 아버지가 예언한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가 예상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준영과 다시 만나게 될 그 순간을 위해서. 이현(서인국 분) 역시 그래서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노력해왔을 것이다. 차지안(장나라 분)의 괜찮다는 한 마디 말은 그런 그의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비로소 누군가 알아주는 이가 나타났다.
전반의 묵직한 주제의식에 비해 후반의 데이트는 조금 지루했었다. 물론 필요한 장면이었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한다. 어찌되었거나 이현과 차지안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매력적인 남녀주인공이 만나 서로 사랑도 않는다면 낭비라 해야 할 것이다. 적당한 계기도 주어졌겠다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진행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무엇보다 변호사 정선호(박보검 분)의 음습한 의도가 차지안을 노리고 있었다. 차지안을 매개로 감추는 것이 많은 정선호와 이현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선호는 또한 이현이 의심하고 있는 이웃집 사는 법의관 이준호(최원영 분)와도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보였다. 마침 이현 역시 이준영을 찾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죄인의 아들은 죄인이 되는가. 죄인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면 결국 인간은 죄를 짓고야 말 것인가. 인간에게 악한 본성이 있다면 인간은 결국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가. 물론 완전히 극복하는데는 실패했다. 아버지의 원죄다. 아버지를 위한 응보다. 너무 약했다. 자신의 운명을 끝내 견디지 못했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인지 모른다. 누가 죄를 저지르는가. 잃어버린 동생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 이준영이 놀아운 반전과 메시지를 가지고 나타난다.
원하는 답을 얻었다. 죽은 이정하에게서. 차지안에게서 들은 한 마디 말로부터. 움직임이 과감해진다. 아직까지도 불안은 남아 있었다. 이준영과는 다르다. 전혀 다를 것이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이준영의 행방을 쫓는다. 차지안과의 사이는 진전된 듯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정선호게 이현에게 그림을 보냈다. 한 발 더 내딛는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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