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렌지로드를 읽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한때는 만화책도 모으고, 비디오테이프도 다 모아서 외울 정도로 보고는 했었는데. 대학시절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에게 소개받고 많이 빠져있었다. 문화충격과도 같았다. 마크로스와 오렌지로드와 터치는.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잊혀졌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읽어야 할 신간들도 많았고,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만화책을 사기보다 대여점에서 빌려읽는 것에 더 익숙해진 시기와도 일치할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로 기껏 사모은 만화책 역시 보이지 않게 된 채였다. 진짜 오랜만에 대여점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만화책을 찾아 읽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화책을 읽으면서 다시 흥미가 생겨서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도 찾아보고, 음악도 찾아듣고, 그러다가 우연히 보았다. '오렌지로드'의 진엔딩은 바로 극장판이다. 누가? 언제? 왜? 그러면서 또 오랜 기억을 다시 되살리게 되었다. 신오렌지로드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마츠모토 이즈미를 비웃고 있었다. 오렌지로드 이후 이것저것 해도 안되니 다시 돈이 아쉬워 후속편을 만드는구나. 하지만 신오렌지로드에 마츠모토 이즈미는 참여하지 않았고 TV판 애니메이션 각본을 썼던 테라다 켄지가 역시 원안과 각본을 맡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어 알았다. 마츠모토 이즈미의 추천이었다. 마츠모토 이즈미는 테라다 켄지가 각본을 쓴 '오렌지로드' 극장판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었다. 아마 지금도 일본에서 '오렌지로드' 극장판 DVD가 발매되지 않고 있는 이유다.
어째서 마츠모토 이즈미는 테라다 켄지의 오리지널 '오렌지로드' 극장판을 용납하지 않았는가. 어른이 된 세 사람 카스카 쿄스케와 아유카와 마도카, 히야마 히카루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신오렌지로드'의 각본을 테라다 켄지에게 맡겼는가. 의외로 답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당장 나 자신이 읽고 있었으니까. 마츠모토 이즈미 자신이 그린 '오렌지로드' 만화책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이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이것으로 작품은 완결된 것이다. 진엔딩도, 그리고 먼 훗날의 이야기도 필요없다.
누군가 동화적이라고 했다. 충분히 설득력있는 과정 없이 너무 급하게 끝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3년이었다. 히야마 히카루가 카스카 쿄스케를 좋아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히야마 히카루를 주위에서 카스카 쿄스케의 연인이라 여기게 된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히야마 히카루가 허술하게 카스카 쿄스케를 좋아했는가.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자기 편하게 여유를 남겨가며 카스카 쿄스케를 좋아했었던 것인가 말이다. 항상 최선이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전력투구였다. 그래서 더 카스카 쿄스케나 아유카와 마도카나 히야마 히카루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물론 본능으로 카스카 쿄스케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자신이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첫사랑이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그같은 불안과 동요조차 이내 작은 조짐만으로도 쉽게 해소되고 만다. 사랑에 두려움은 없다. 의심도 없다. 카스카 쿄스케든, 아유카와 마도카든. 오히려 그들 자신이 의심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런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단지 오해였고,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두 사람 카스카 쿄스케와 아유카와 마도카가 곤란해졌다 한다. 자,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히야마 히카루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바로 모든 감정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카스카 쿄스케를 좋아했던 감정도, 그로 인한 배신감이나 상실감도 바로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화책에서도 히야마 히카루 역시 카스카 쿄스케에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 다만 노력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따르는 언니 아유카와 마도카를 위해서. 아유카와 마도카 역시 히야마 히카루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사랑을 양보하려 했었다. 자신도 포기할 수 없으면서 미국으로 떠날 결심까지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아유카와 마도카를 '아바카브' 밖에서 숨여 엿듣고 있었다. 카스카 쿄스케나 아유카와 마도카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히야마 히카루는 바로 자신이 차였다며 울고 있었다. 사실을 받아들인다. 카스카 쿄스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아유카와 마도카는 카스카 쿄스케를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이에 자신이 끼어든 것이었다.
설사 그러고 난 뒤에도 여전히 히야마 히카루에게 카스카 쿄스케에 대한 미련과 아유카와 마도카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히야마 히카루의 성격상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스카 쿄스케와 아유카와 마도카 또한 그런 히야마 히카루의 선택을 존중해주었을 것이다. 카스카 쿄스케 역시 우유부단하다고 말하지만 그동안 히야마 히카루에게 조금도 소홀하거나 허술한 것이 없었다. 그만큼 진지했고 진심이었기에 히야마 히카루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히야마 히카루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들의 사이에 남은 것은 없다. 굳이 '내일의 죠'의 대사가 아니더라도 그만큼 3년동안 그들은 마음껏 고민하고 갈등하고 방황하며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굳이 그 뒤의 이야기를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
마츠모토 이즈미가 극장판 '오렌지로드'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몇 년 뒤 어른이 된 세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자신의 손으로 쓰지 않으려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필 마츠모토 자신의 추천으로 극장판의 각본을 썼던 테라다 신지가 '신오렌지로드'의 각본까지 썼다. 어차피 자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자신의 '오렌지로드'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작품이다. 초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세 사람의 진심을 오해했다. 세 사람의 캐릭터를 부정했다. 세 사람의 그동안의 시간을 무시했다.
여러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책의 엔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나서도 미국으로 떠나는 아유카와 마도카의 앞에 나타나기까지 히야마 히카루도 상당한 시간을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히야마 히카루에 대한 미안함까지 카스카 쿄스케는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를 비로소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용기가 아유카와 마도카에게도 용기를 준다. 여전히 혼란은 남아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려 한다. 한없이 love에 가까운 like에서 아직 남은 여백은 히야마 히카루에 대한 미안함이며 안타까움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하려 한다. 굳이 완결이 필요없다. 그 자체로 그들의 지난 3년의 시간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정말 그림을 못그린다. 아주 못그리는 그림은 아닌데 읽고 있으면 당시 어시스턴트가 누구였는가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18권동안 전혀 다른 사람이다 싶을 정도로 그림이 바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다카다 아케미의 일러스트보다 마츠모토 이즈미의 오리지널 흑백 일러스트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유카와 마도카만의 복잡한 매력이 그의 그림속에서 더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다카다 아케미의 마도카는 그냥 예삐기만 하다. 더구나 많은 작품의 캐릭터를 그리면서 서로 뒤섞이고 있기도 하다. 이즈미 노아와 히야마 히카루, 아유카와 마도카가 서로 뒤섞인다. 오렌지로드는 마츠모토 이즈미의 만화다.
어쩌면 다카하시 루미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다. 개그컷의 연출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하기는 이런 러브코미디 장르 자체가 다카하시 루미코와 아다치 미츠루에 의해 정립된 것이기도 하다. '우르세이 야츠라'와 '미유키'를 '오렌지로드'와 비교해 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소녀들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소년들도 사랑을 한다. 당연한 사실을 세상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마도카란 그래서 판타지다. 히야마 히카루 역시. 츤데레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요즘은 그린라이트라는 말이 유행한다.
정말 즐거웠다. 여전히 진입장벽이 있다. 초반의 허술한 그림이나 유치한 설정, 그리고 이후 여러 작품들에서 뻔하게 반복되어 온 요소들까지. 그럼에도 여전히 '오렌지로드'가 재미있는 것은 그만의 진지함이 있어서가 아닐까. 노골적이면서 미묘한 줄타기는 '오렌지로드'만의 매력이다. 다시 보아 좋았다. 여름의 이야기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아 아즈나블, 운명에 속은 남자 (0) | 2015.08.08 |
---|---|
건담 - 치명적 설정의 오류... (0) | 2015.08.04 |
창천항로 - 조조? 혹은 마오? (0) | 2015.06.21 |
H2 -마지막 시합의 의미... (0) | 2015.06.06 |
건담 - 샤아가 아무로에게 진 이유... (0) | 2015.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