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아 아즈나블의 마지막 싸움을 그린 애니메이션 '역습의 샤아'에서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악역으로 등장한 샤아 아즈나블은 두 가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선택을 동시에 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 지온 줌 다이쿤의 이상을 물려받아 인간이 더 이상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인류가 강제로라도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그러나 한 편으로 액시즈를 지구에 낙하시키려는 자신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론드벨의 에이스 아무로 레이에게 네오지온의 신기술 '사이코프레임'이 건네질 수 있도록 아예 노골적으로 손쓰고 있었다. 자칫 1년 전쟁의 영웅이며 스스로도 라이벌로 여기는 아무로 레이에게 신기술이 적용된 최신기종이 건네진다면 작전에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다.
하기는 아무로 레이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건담에 붙들린 채 액시즈의 낙하를 막는데 강제로 동참하고 있던 순간에도 정작 샤아 아즈나블은 액시즈에 대해 그다지 많은 말을 하고 있지 않았었다. 오로지 아무로 레이와의, 그리고 아무로 레이와 공유하고 있는 라라아 슨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홀가분해져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듯 그는 행복해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이 다하려는 순간이었음에도. 어째서였을까?
아주 오랜만에 그동안 완결까지 나온 '기동전사 건담 오리진' 전권은 읽게 되었다. 아마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 6권까지 나왔을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보았던 건담시리즈를, 특히 샤아 아즈나블과 관계된 '기동전사 건담'과 '기동전사 Z건담'을 곰곰히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냈다. 정작 '기동전사 Z건담'에서도 다카르에서 지온 줌 다이쿤의 아들로서 연설하기 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 지온 줌 다이쿤의 이상이라는 것을 자신이 먼저 입밖에 꺼내 말한 적이 없었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샤아 아즈나블의 동기와 목적은 오로지 자비가에 대한 복수 한 가지 뿐이었다. 그나마 뉴타입의 미래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조차 자신이 찾아낸 뉴타입 라라아 슨에 대한 관십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실제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도, 만화책 '오리진'에서도 그토록 뉴타입의 미래를 부르짖던 샤아 아즈나블이 아무로 레이와의 마지막 싸움 이후 급격히 냉정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좌절도 상실감도 없이 묵묵히 아무일 없다는 듯 키리시아 자비를 향한 마지막 복수에 나선다. '기동전사 Z건담'에서도 다카르의 연설 전까지 오히려 주위에서 먼저 리더로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었음에도 항상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어린 카미유에게 얻어맞기까지 한다. 가이 시덴은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그를 외면한다. 갑자기 사람이 바뀐다.
어째서 샤아 아즈나블은 자신의 손으로 재건한 액시즈의 네오지온을 버려두고 크와트로 바지나라는 이름으로 에우고에 숨어들었는가. 네오지온이 취약한 지구권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얻으려 했다느 것은 단지 변명에 불과하다. 정보가 목적이었다면 에우고의 장교로 복무하면서 얻은 정보들을 가장 먼저 액시즈의 네오지온에 전달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하만 칸이 직접 네오지온을 이끌고 에우고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 사이에는 오랜 단절의 벽이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도망친 것이었다. 숨은 것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재건한 네오지온으로부터. 네오지온은 재건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기대와 책임으로부터. 일관되다. 1년전쟁 당시에도 그는 지휘의 책임보다는 전사로서의 전투에 더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자비가의 은밀한 감시와 위협으로부터 아직 어린 동생 알테시아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다. 그것은 역시 아직 어린 나이에 불과했던 샤아 아즈나블에게도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과연 복수를 위해서였을까. 진정 복수를 위해 샤아 아즈나블은 동생 세일러 마즈를 떠났던 것일까. 화이트베이스와 건담을 쫓던 도중 동생 세일러 마즈와 재회하고서도 샤아는 그녀를 끌어안기보다 다시 어디론가 안전한 곳으로 떠나보내려고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샤아 아즈나블이 자신과 함께하자 했다면 세일러 마즈는 거부했었을까? 마지막 아 바오아 쿠에서 아무로와 싸우던 도중 어린시절 세일러 마즈를 지키기 위해 암살자와 싸우던 기억을 떠올린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일러 마즈에게는 어느새 자신이 아니더라도 돌아갈 곳과 지켜야할 것과 지켜줄 사람이 생겨나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이 보호자로서 세일러 마즈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실제 이후 샤아 아즈나블은 단 한 번도 유일한 가족이랄 수 있는 동생 세일러 마즈에 대해 아예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없는 사람이다.
복수란 단지 어린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단지 증오만 하면 되었다. 죽일 계획만을 세우면 되었다. 그는 혼자였다. 혼자인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못나지 않은 탓에 그의 실력과 인품에 이끌려 모여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와 바람이 다시 자신의 한 몸에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자신 말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래서 하만 칸을 키웠다. 그녀를 새로운 리더로 만들었다. 하만 칸이 샤아에게 느끼는 배신감의 정체일 것이다. 그는 비겁했다. 그리고 비열했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지온 줌 다이쿤이라는 이름은, 그리고 붉은 혜성이라는 별명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크와트로 바지나가 되었어도 적이었던 이들조차 그에게 기대온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였다. 세일러 마즈가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오빠 캬스발의 진심이 아니었다. 다른 이른 샤아 아즈나블의 본성과도 거리가 멀었다. 단지 가식이었다. 기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위의 강요와도 같은 기대는 샤아 아즈나블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의 본성으로 본질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자신은 지온 줌 타이쿤의 후계자이며 부패한 연방과 맞서 스페이스노이드를 구원할 사명을 가진 존재다. '기동전사 ZZ건담'에서 세일러 마즈가 브라이트 노아에게 오빠 샤아에 대해 '어떤 우주의 의지와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다'며 혐오와 경멸의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여기며 그에 도취되어 버린다. 치열한 이해도 고민도 없이 단지 인상만으로 그것을 정의해 버린다. 그 답은 당연히 더 크게 깊이 고민하거나 노력할 필요 없는 너무나 쉬운 것일 터다. 지구에 액시즈를 떨어뜨린다. 타협도, 양보도, 조화도 모두 자기 것일 때 가능하다.
답은 나와 있을 것이다. 액시즈를 지구에 떨어뜨리는 것은 지온 줌 다이쿤의 아들이며 지온과 스페이스노이드의 영웅인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이다. 지구연방의 낡은 역사를 끝내고, 우주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연다. 스페이스노이드야 말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된다. 그를 위해 가장 쉽고 빠르게 결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러나 결국 그것은 샤아 아즈나블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여전히 도망치고 싶고 숨고 싶다. 이번에는 전장에 숨는다. 라이벌 아무로와의 싸움을 통해 숨어 자신을 감춘다. 아무로 레이와 싸우는 동안에는 액시즈가 떨어지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네오지온이든 지구연방이든 자신이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놀아달라 말한다. 아무로는 그런 샤아의 내면을 꿰뚫고 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도대체 다 큰 어른이 되어 이 무슨 유치한 짓이란 말인가.
인간에 대한 증오조차 없다. 아무런 진심이 담기지 않은 자기로부터도 유리된 사고와 판단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아무로 레이와 싸울 때는 진심이 된다. 캬스발 램 타이쿤이라는 이름을 버린다. 샤아 아즈나블로 살려 한다. 샤아 아즈나블로 돌아온다. 아무로 레이와 싸울 때만 자신일 수 있다. 어쩌면 샤아란 허탈할 정도로 허무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자신조차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속인다. 다만 도망치려 했을 때조차 그가 돌아갈 곳은 전쟁터 뿐이었다. 그는 항상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다. 아버지 지온 줌 다이쿤이 죽고 항상 자비가의 감시와 위협에 떨어야 했었다. 적과 아군이 명확한 전장에서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어째서 라라아 슨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는가. 전쟁터야 말로 그의 집이었으니까. 그곳에서 함께 문제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라라아가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샤아의 독백 역시 결국은 어머니의 곁을 떠나 지구로 망명한 뒤 단 한 번도 마음을 놓아 본 적 없는 그의 어린시절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란 샤아에게 평화와 안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행복을 뜻했다. 라라아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어머니가 곁을 지켜주던 그때처럼 다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샤아가 인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복의 조건이었다. 이후 역시 단 한 번도 샤아는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꿈꾸지도 추구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샤아가 뉴타입들을 이용했다는 오해도 이를 통해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샤아가 아는 세상이란 전장이 전부였다. 전장 이외의 현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배려였다. 전장으로 이끈다. 자신은 그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바보인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성장기를 거치지 못하면 평생 아이인 채로 남는 경우가 있다. 타고나길 너무 잘 타고났다는 것이 우주세기의 불행이었을 것이다. 그의 천진함에 모두가 휘둘린다.
캬스발이라는 이름에 속는다. 타이쿤이라는 성에 속는다. 그래서 이름도 성도 모두 버렸다. 하지만 꼬리표처럼 모두의 기대와 신뢰가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극단의 선택을 하게 한다. 아무로는 지구가 아닌 샤아 자신을 위한 구원이었다. 그것이 그의 진심이다. 잊혀진 본질이다.
오타쿠가 아니다. 마니아도 아니다. 건담을 마지막으로 본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냥 떠올랐다. 얼마전 '기동전사 건담 오리진'을 마지막까지 읽었다. 재미있다. 정말 오랜만이다. 시간이 벌써 지나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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