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셈블리 - 목적과 수단, 백도현이 잃고 진상필이 찾은 것

까칠부 2015. 8. 6. 05:08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된다. 꿈이 있었다. 이상도 포부도 있었다. 반드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했다. 정치를 시작한 이상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 했고, 그저그런 국회의원이 아닌 힘을 가진 국회의원이 되어야 했다. 정당의 공천을 받고, 실세의 눈에 들며, 주위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은다. 모든 준비가 갖춰진다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결국 뒤집어 말하면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아예 없거나 아주 적다면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들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실세의 눈밖에 나서 도움은 커녕 오히려 견제와 훼방을 걱정해야 할 처지라면 선택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니 아예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한다면 어느것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국회의원이란 정치의 단위다.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직접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표결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최인경(송윤아 분)이 홍찬미(김서형 분)를 대신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백도현(장현성 분)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다름아닌 최인경이지만, 그러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에 있어 실제 힘이 되어주는 것은 국회의원인 홍찬미다. 홍찬미가 최인경을 눈아래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선거에서 낙선한 기억을 떠올리는 조웅규(최진호 분)의 표정이 어둡다. 그만큼 힘들었었다. 그렇게나 외로웠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먼저 자신을 찾아오던 이들이 발길을 끊었다. 그래서 더 정치와 권력에 중독된다. 권력의 달콤함을 알고 권력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안다. 누구보다 가진 바 이상이 크다면. 반드시 이루고픈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그래서 진상필도 공천을 받아내고자 기꺼이 백도현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 아니던가. 본능적으로 안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공천이란 자신이 이루고픈 이상과 포부의 대신이 된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구태의 정치를 일소하고 싶었다. 정치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꾸고픈 누구보다 간절한 바람과 결심이 있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실세중의 실세라는 청와대의 최측근이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백도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도태시켜야 할 부패하고 무능한 구태의 정치인들을 명단으로 적어 보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이 큰 뜻을 품고 청와대에 보고했던 그 자료를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애초의 목적이 수단이 되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던 권력이 목적이 된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마저 내던져버리는 정치인의 속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최인경이 결정적으로 백도현에게 실망하게 되는 계기다. 그녀가 바란 정치는, 그리고 백도현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백도현이 만들고 유출시킨 살생부에 반발하여 모인 국회의원들을 비웃으며 진상필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역시 상징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진상필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인가, 국회의원이 되어 해보고 싶었던 바른 정치인가. 소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한 노인과 노인의 손녀가 진상필이 눈뜨는 계기가 되어준다.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무언가 굉장한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작 다리다. 고작 노인 하나와 어린 소녀 하나를 위해 넓지도 않은 개울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인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다. 해주려 한다. 거기서부터다. 고작 한 사람, 단지 지금 여기.


그래서 지역구의 한 어린소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나서 진상필의 말이나 행동들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바라고 의도해서 된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반드시 해내고 싶은 어떤 것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가지는 불신이고 불만이었다. 어차피 백도현은 자신에게 다음 총선 공천을 줄 생각이 없었다. 여당인 국민당 내에서 진상필을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정치인 역시 거의다시피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뒤는 없다. 내년은 없다. 다음은 없다. 더 용감해지고 과감해진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들에만 집중한다. 호쾌하고 통쾌하다. 무엇이 정치인가. 무엇이 정치를 이토록 타락하게끔 만드는가. 개과천선일 것이다. 원점을 이야기한다.


백도현이 진상필의 지역구를 노린다. 노골화한다. 자신에 대한 기록이 잘못되었다며 애써 경제시와 자신과의 인연을 강조하려 한다. 아버지가 경제시 시장이었고, 자신 역시 경제시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다. 목적을 잃었다. 수단이 목적이 되었다. 목적을 이룰 수단들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다. 목적을 되찾았다. 애초의 결심을 되찾았다.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 최인경의 인정 뿐. 백도현에게 실망한 뒤라 진상필의 진심에 더 이끌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름의 방법으로 진상필들을 도와 다리를 놓는다. 정치는 그녀의 기술이다. 두 사람이 맞붙으려 한다. 강자와 약자, 현실과 이상, 탐욕과 순수, 승리보다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역시 아직까지는 진상필의 캐릭터가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고 있지는 못하다. 진상필의 저조함이 최인경의 캐릭터에까지 영향을 준다. 보다 직관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입하며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가 필요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꿈이고 판타지다. 현실에서와 다른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의 정치다.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큼은 근심없이 행복해지고 싶다. 상업드라마다. 진상필의 변화를 기대한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