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안철수가 자신의 혁신안을 들고 나와 문재인을 압박하고 있을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족쇄가 될 수 있다. 자칫 그로 인해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마 탈당하고 새롭게 자신만의 정당을 만들면서 안철수 자신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양과 변수는 비례한다. 양이 많아질수록 그 안에서 다양성과 복잡성은 증가한다. 한 마디로 많은 사람이 모이면 별 어중이떠중이도 다 모여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정리하기에는 서로 얽히고섥힌 관계가 그 과정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거대양당체제의 한계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다양한 정파가 두 거대양당으로 모이다 보니 어느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도 증가하게 된다.
사실 다당제였다면 굳이 김한길과 문재인이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을 필요가 있다. 서로 입장이 다르고 지향이 달라서 갈라섰는데 연대해야 하네마네 문재인과 안철수가 서로 다투고 있을 이유도 없다. 그냥 맞지 않으면 나와 새롭게 정당을 만들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다수의 지지를 얻으면 그를 바탕으로 원내로 들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아예 지지를 받지 못하면 조용히 사라지면 된다. 둘 다 선택되었다면 서로의 입장과 지향에 따라 이후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그런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결선투표조차 없기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선거를 치르기 전에 먼저 후보부터 연대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거대정당이란 다당제국가에서의 연립정부와 같을 것이다. 같은 정당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모여 경쟁을 통해 공동의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선거에서의 승리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서로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사이조차 필요를 위해 하나의 정당에 몸담게 된다. 그마저 단일한 체제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당장 서로의 입장과 이해를 조율하는 것도 문제인데, 그 안에서 생겨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서로의 입장과 이해를 배려해서 해결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된다. 비리를 저질렀다. 뇌물을 받았다. 그런데 당내 주요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 번에 쳐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관행이란 것도 있다.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결국 드러나면 법과 윤리의 문제로 불거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구성원들도 비슷한 문제를 뒤에 감추고 있다.
누구는 극우파이고, 누구는 온건보수이고, 누구는 온건진보이고, 그 모두의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반독재를 표방하지만 정작 독재자에 대한 인식에도 서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예 티끌만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공과 과를 분리하여 공 역시 어느 정도 수준은 된다 여기며 인정하는가. 역시 공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누구는 배제해야 한다. 누구는 혁신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국가라면 하나의 정책을 공식화해서 추진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 비용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규모의 다양성은 정당의 그것보다 더 크고 더 깊다.
김종인이 더민주의 4.13총선 선대위원장으로 이번에 영입되었다. 제 1야당 더민주와는 너무나 많은 부분이서 크게 다른 사람이다. 무엇보다 5공에 부역했던 사람이었다. 국보위에서 재정부의 숙정을 담당했고, 민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노태우 정부의 청와대비서관까지 지냈었다. 비리전력도 있었다.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2억 1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더민주와는 맞지 않는다. 혁신안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더민주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람이다. 여기서 기존의 다양성을 다시 하나 더 늘리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거대양당의 강점이며 단점이다.
누구라도 받을 수 있다.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와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정당이라는 틀 안에서 국가규모의 다양성을 가지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원래 더민주는 기성의 정치라른 범위 안에 존재하는 정당이었고, 정당의 정체성이나 행보 역시 그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호하기도 하고 불합리하기도 하며 모순되기도 한, 그러나 그 복잡성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게 툭탁거리면서도 결국은 같은 정당이라고 하는 동질성에 승복하여 그를 따르게 된다. 그것이 거대정당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어째서 문재인이 주도한 혁신위의 혁신안이 그처럼 뜨뜻미지근했는가. 그래서 서두에도 말한 것이다. 이제는 안철수도 그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당장 국민의당 발기인이나 영입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안철수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다가는 당을 만드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진다. 하물며 이미 기존에 서로 얽힌 이해와 입장이 있는데 그것을 한 번에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 안철수신당에 대한 비판이 유독 가혹한 것도 그와 관계가 있다. 바로 그런 더민주의 기성정치방식이 싫어서 새정치를 하겠다 비판하고 뛰쳐나간 안철수였다. 그래서 얼마나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고 있는가.
당장 일부 국회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천명한 혁신안에 대해 반발하여 분당에 가까운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지 않았는가. 서로 이해가 다르고 입장이 다른데 당대표가 그리하자고 해서 무작정 따르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혼란의 원인이다. 분쟁의 원인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하자는대로 더 엄격하게 소속 정치인들을 죄려 했다가는 부작용만 더 커질 뿐이다. 현실과의 타협이다. 여기까지 지금으로서는 적정선이다.
필요하다면 데려다 쓴다. 진짜 필요하다 여기면 과거는 묻지 말고 일단 데려와서 자기 편으로 만든다. 어쩌면 그것이 정치라 하는 것일 게다. 당장 제도권에 정당이란 둘 밖에 없다. 나머지는 미미하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사회적 요구의 다양성까지 두 거대정당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 큰 그릇이다. 오만 썩은 물이 다 모이는 큰 호수다. 샘은 맑다. 웅덩이도 맑을 수 있다. 호수가 맑기란 거의 힘들다. 단지 너무 크다 보니 그마저 희석된다. 그럴 수 있을까가 문제다.
정치는 현실이다. 생물이라 말하는 이유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다. 앞과 뒤가 다르고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다. 더구나 위기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정청래와 최민희마저 입장을 바꾼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인정한다. 새정치 역시 그 위에 있을 것이다. 하여튼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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