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8명 있는 집에 쌀이 딱 한 사람 먹을 만큼만 겨우 남았다. 마침 생일이라고 막내에게 그 쌀로 밥을 지어주려 한다. 그런데 먹성 좋은 다섯째놈이 자기도 쌀밥을 달라며 보챈다. 막내에게 주기로 한 쌀밥을 자기가 대신 먹겠다고. 부모 입장에서 어째야 하겠는가.
쓰기는 작가가 썼어도 연기는 배우가 한다. 오로지 배우의 연기를 통해 드라마는 완성된다. 훌륭한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항상 반갑고 즐거운 이유다. 단지 배우의 표정과 눈빛만으로 수만마디의 대사로도 다못할 깊이를 전달한다. 어떤 정교한 연출과 화려한 효과로도 배우의 표정과 눈빛이 전하는 의미를 대신하지 못한다. 배우 김명민(정도전 분)의 표정과 눈빛에서 어째서 정도전이 그토록 이방원(유아인 분)에게 가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이해하게 된다. 이방원이 발악하듯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 이유 역시 그래서 더 깊이 이해되고 만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보챈다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란다고 마냥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에 왕은 하나다. 왕이 둘이 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려 하면 이미 왕위에 있던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아버지 이성계(천호진 분)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공양왕(이도엽 분)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듯 이방원 자신이 장차 왕이 되려 해도 이미 세자가 된 자신의 이복형제 의안대군 이방석을 밀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방원인가, 이방석인가. 그리고 그같은 선택을 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충분히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방원이 왕이 되고자 한다고 이방석을 밀어내고 그를 세자로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포기시켜야만 한다. 때로 야단도 치고 매도 든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할 것이라면 자신이든 주위든 더 다치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어야 한다.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프다. 어째서 자신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그 소원 하나를 들어주지 못한단 말인가. 차라리 왕이 서넛 더 있어서 아들마다 다 왕위에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당장은 상처가 되고 고통으로 남겠지만 극단의 수단이라도 써야만 한다. 우습게도 그런 스승 정도전과 아버지 이성계의 마음을 제자이자 아들은 이방원도 알아 버렸다. 그런데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을 어찌하란 것인가. 이방원이 느닷없이 분이(신세경 분)를 뒤에서 끌어안은 이유였다. 분이만은 결코 자신이든 정도전이든 누구에게도 휘말려서는 안된다. 어서 모두로부터 떠나 반촌으로 가라.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를 깨닫고 만다. 그럼에도 자신은 스승과 아버지의 간절한 뜻을 거스를 수밖에 없음을 안다. 어떻게도 자신은 자신의 야망을 포기할 수 없음을,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음을, 서글프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스스로 깨닫고 만다. 그런 자신이 원망스럽고, 그렇게 자신을 몰아간 스승도 아버지도 원망스럽다. 갑자기 세상에 혼자가 된 것만 같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날 것을 결정하고 궁을 나서는 그의 주위로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이방원의 내면이었다. 모두를 버렸고, 모두로부터 버려졌다. 단 한 사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를 찾아 그녀의 온기에 기대려 한다. 분이만 무사하다면. 분이만 아무일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분이만큼은 결코 이 추악하고 잔인한 운명의 길에서 비껴나기를 바란다.
권력의 잔혹함일 것이다. 권력이란 하나이기에 형제와도 부모자식간에도 서로 나눌 수 없다. 서로 의심하고 견제한다. 끝끝내 권력을 위해 서로 싸우고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권력을 가지고자 한다면. 그래서 권력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방법 역시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지독한 욕망을 어떻게든 끊어내고자 한다면 보통의 수단으로는 안된다. 여전히 정도전은 무르다. 이방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장차 세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이방원이 살아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더이상 이방원이 세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멀리 떼어놓아 그 힘을 빼앗는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이방원을 찾아온다.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명으로의 사신길에서 혹시라도 명황제를 설득하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이는 여러 왕자 가운데 이방원 한 사람 뿐이었다. 그마저도 자신의 권력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 그는 이미 잔혹한 권력의 길을 가고 있다.
아마 그 잔혹함을 닮은 탓이다. 아니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 초영(윤손하 분)을 앞에 두고도 연희(정유미 분)는 담담히 그녀를 배신한 이유에 대해 들려준다. 하마트면 죽을 뻔한 것을 살려주었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에서 그 참혹한 일을 겪고 삶의 목적과 의미마저 잃은 채 정처없이 떠돌다 지쳐 쓰러져 있던 자신을 거두어 지금껏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었다. 하지만 그런 연희에게도 - 아니 그런 연희였기에 더욱 살아있다는 의미가 필요했다.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했다.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일을 주었다. 자신의 오늘이 만들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자신의 삶이 가치있고 의미있다. 그것이 설사 자신의 은인을 배반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지만 누구보다 당당하다. 그리고 그런 연희를 그 순간 초영 역시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가지 못한 길을 가려는 딸을 걱정하면서 떠나보내려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어머니를 보내는 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의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들이기도 하다. 자식이 부모를 떠난다. 부모가 그런 자식을 떠나보낸다. 자식이 부모를 거스르며 부모의 뜻을 배반한다. 화내고 야단치면서도 끝내 부모는 그런 자식을 인정하고 품에서 떠나보낸다. 다만 하필 그 사이에 권력이라는 잔혹한 운명이 모두의 삶을 어그러뜨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누군가는 죽여야 한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적이 되어 만난다. 어머니가 아들더러 자신을 죽이라고까지 말한다. 떠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도전이 잔혹해져야 하는 이유고, 이방원이 지독해지고 마는 이유다. 난세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연희 역시 그토록 분이를 떠나보내려 애써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꿈꾸는 것마저 죄가 되는 세상에서 더이상 꿈꾸기보다 현실을 살아가도록. 거꾸로 무휼(윤균상 분)은 분이와는 달리 이방원의 꿈에 자신을 걸기로 한다. 무사로서의 자신의 삶도 자신이 꿈꾸는 내일도 이방원에게 있다. 그래도 사람은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
이방원의 필체를 모사하여 초영을 유인하면서 시작된 정도전의 계략이 이중삼중으로 이어진다. 전작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중신이 되어 있던 이신적(이지훈 분)이 그토록 밀본의 연판장의 존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무명의 조직원인 초영이 이방원과 함께 있는 모습을 이성계에게 직접 보임으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첫째, 함께 있던 이신적을 체포하여 고문함으로써 이방원의 의심을 지우고 측근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둘째, 마찬가지로 무고하게 추포되어 고문당한 이신적에게 초영 스스로 접근하여 무명의 본거지를 쫓을 단서를 털어놓도록 하는 것이 셋째, 하지만 역시 계략은 사람이 꾸며도 성사는 운명에 달린 것이다. 첫째는 명나라에서 왕자의 입조를 요구하면서, 마지막은 길선미(박혁권 분)의 개입으로 사전에 들통나면서, 그리고 두번째는 결국 이신적이 돌아갈 곳이 사라지면서 모두 무위로 끝나고 만다. 그래도 오랜만에 정도전다운 치밀한 함정이었고 계략이었다. 전혀 눈치조차 못채고 이방원이나 초영이나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어쩌면 무명이란 인간이 가진 욕망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실체가 없다. 굳이 뚜렷이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는다. 없앤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정도전이 꿈꾸는 새로운 나라는 인간의 욕망을 철저히 억누르고 배제한 나라였다. 차라리 그런 무명의 존재와 목적에 충실하다. 연향(전미선 분)이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덜기 위해 이방지(변요한 분)에게 죽고자 한다. 무기력한 삼한제일검의 울부짖음이 인간의 잔혹함을 알게 한다. 마침내 정도전의 함정마저 빠져나와 다음 계획을 준비한다. 무명은 여전히 건재하다. 비통한 아들의 울음만 남긴 채.
명황제 주원장의 넷째아들이면 장차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에 오르는 영락제 주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두 야심가가 하필 요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명으로의 사신길은 이방원에게 위기이며 기회였다. 도전의 시작이다. 새로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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