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한 번 스치려 해도 전생에 삼천번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 틀어진 인연을 다시 바로잡으려 한다면 도대체 몇 번의 만남이 더 필요한 것일까? 헤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만나고 다시 후회를 쌓아간다. 그래도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은 그것을 운명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고백보다도 절절하다. 멋있지만 너무 위험하다. 위험해서 싫은데 눈을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유시진(송중기 분)이 먼저 물러선다. 유시진이 우르크로 다시 돌아와서 강모연(송혜교 분)을 만나고 들려준 말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같이 있어주지 못해요."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건물이 무너지고 사방이 죽거나 다친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러나 정작 자신은 사랑하는 강모연의 곁에 계속 있어 줄 수 없다. 그녀를 지키고 그녀를 도울 수 없다. 어떤 비감같은 것이다. 당장 아무거라도 해주고 싶은데 정작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간절한 미안함이다. 도망치는 것이다. 자신은 그녀가 기대하는 것을 결코 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돌아온다. 나라의 명령이 있기 이전에 그는 돌아와야만 했다. 그곳에 강모연이 있으니까. 곁에 있어주지 못해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도, 그러나 그곳에는 그녀가 있다. 그것은 어떤 이유보다도 우선하는 당위다. 그리고 강모연에게도 그 순간 유시진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사정보다 우선해야 하는 당위였었다. 단지 그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전장으로 떠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고 무겁다.
유시진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고 얼마 지나지않아 강모연은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리 말해서는 안되었다. 그리 보내서는 안되었다. 유시진도 후회한다. 그렇게 떠나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이미 멀리 떨어져 있다. 유시진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강모연은 우르크에 남았다. 강모연은 우르크에 남았고 유시진 자신은 한국으로 돌아와 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 오해를 풀고 후회를 되돌릴 기회가 다시 두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이제 곧 강모연도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아무 이유없이 다시 만나기에는 한국은 쓸데없이 너무 넓다. 두 사람 사이에 아직 남은 풀지못한 오해와 원망이 너무 멀기만 하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난다. 이미 한 번의 헤어짐을 위해 유시진은 우르크로 파병되었고 강모연 역시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우르크에 자원봉사단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솔직해지기에는 너무 일렀기에 또 한 번의 헤어짐을 준비한다.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상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원래 있어야 했을 자리와 그곳에 있어야 했을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도 상당히 짓궂다. 아니 악취미다. 그렇다고 설마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지진을 단지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계기로 내던지고 마는가. 죽음과 재로 범벅이 된 몰골로 돌아온 유시진을 맞이한다. 아무말도 없이 그저 신발끈을 묶어주고 그것을 바라본다.
함께 전장에 선다. 항상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유시진에게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 강모연이었다. 불안과 거리감을 느껴야만 했었다. 과연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함께일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헤어지게 될 사이라도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영원을 약속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께다. 군복을 입고, 구급조끼를 걸쳤지만 함께 사람을 살리는 전장에 나란히 서있다. 유시진은 군인으로서 사람들을 구하고, 강모연은 의사로서 사람들을 살린다. 참 빠르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이렇게 빠르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일까. 또 한 번의 헤어짐은 차라리 삼각관계보다 더 지루하고 진부하다. 함께할 수 없어도 두 사람은 함께한다.
윤명주(김지원 분)와 서대영(진구 분)도 전장에서 다시 마주친다. 이미 두 사람은 군인이다. 전사다. 서로의 감정보다 서로가 해야 하는 일에 더 우선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윤명주의 아버지 특전사 사령관(강신일 분)이 딸 윤명주가 있는 우르크고 서대영을 보내고자 결심한다. 그 이전에 이미 서대영은 우르크로 가겠노라 자원하고 있었다. 어느쪽이든 서대영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왔다. 자신의 곁에 있다.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질투나도록 부러운 일인가. 오로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과연 유시진은 멋있다. 어째서 멋있는가 문득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무심하다.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낯간지러울 수 있는 대사들을 툭하고 내던진다. 그런데 한결같은 진심이다. 그늘은 있지만 그림자는 없다. 감추고 숨기는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을 아마 사람들은 진실하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강모연은 감추는 것도 숨기는 것도 너무 많다. 자기가 자기를 감추고 자기가 자기에게 숨긴다. 아마도 오로지 군인으로서의 명예만을 모든 것으로 여기는 유시진과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강모연이 가지는 본질적 차이가 아니었을까. 의사로 돌아갔을 때 강모연도 유시진과 같아진다. 군인이기만 하면 되는 유시진과 의사일 수만은 없는 강모연의 어쩔 수 없는 엇갈림이다.
어느새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갔다. 너무 남자끼리만 어울리는 것도 그다지 보기 좋지만은 않다. 친구가 없는지 혼자 낚시를 하며 유시진은 서대영만을 찾는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누구에게 잘보여야 하는가를 안다. 강모연과 윤명주의 사이는 그다지다. 지진이라는 숨가쁜 순간을 지나 만남이라는 먹먹함으로 엔딩은 순식간에 다가온다. 시간이 아쉽다. 다시 한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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