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누군가가 무척 궁금해진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과 같다. 온전히 자기 안에 그 사람을 가질 수 있다. 평소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래서 자기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자기의 진심에 지고 만다. 오해영(서현진 분)이 그랬듯 속일수도 숨길 수도 없는 자신의 마음에 끝내 꺾이고 만다.
어째서 박도경(에릭 분)의 누나 박수경(예지원 분)이 동생의 결혼식을 망친 당사자인 예쁜오해영(전혜빈 분)을 다시 만났음에도 어떤 적의도 원망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오히려 박도경의 모든 미움과 원망을 묵묵히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쁜오해영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죽을 병에 걸렸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오해영 자신 역시 한 번 쯤 생각해봤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이기에. 자칫 자신으로 인해 천륜인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더 크게 들어질지 모르기에.
이렇게 지독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었다. 드라마의 진짜 악역은 박도경의 친어머니인 허지야(남기애 분)였다. 오히려 피해자인 양 천연덕스럽게 자기연민에 빠진 모습이 감탄스러울 정도다.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인데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몰아붙인다면 과연 어떤 여자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박도경에 대한 사랑으로 꿋꿋하게 버티던 오해영이 허지야가 건넨 녹음파일의 내용에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기에 예쁜오해영은 결혼식 당일 사랑하던 박도경을 떠나야 했던 것일까?
박수경은 알고 있었다. 딸이었기에 누구보다 - 심지어 남자인 동생들보다 더 많이 더 깊이 더 정확하게 자신들의 어머니인 허지야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굳이 듣지 않았어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느닷없이 박도경을 찾아온 어머니 허지야의 몇 마디 말로도 전말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들을 낳아준 어머니의 허튼 욕심 때문이었다. 그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 동생인 박도경이나 박도경이 사랑했던 예쁜오해영 역시 모두 불행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차마 마음껏 원망할 수조차 없다. 미워할 수조차 없다. 허지야를 쫓아보내며 박수경은 울고 있었다.
박수경이 매일같이 머리를 내린 채 술에 취해 몸도 못가누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나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름의 아픈 상처가 그 안에 감춰져 있었다. 차라리 외계인이 쳐들어와 지구를 박살내주기를 바란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모두는 죽는다. 모든 것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만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차마 죽을 수 없기에 그런 자신을 한 편으로 원망하고 혐오하게 된다. 과연 박수경에게도 지금의 혼란과 방황을 끝낼 운명과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뜻하지 않게 고백하게 되었다. 억지로 찍어누르고 있었다. 자기에게 변명하고 있었다. 그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버렸다. 그의 대답을 듣기가 두렵다. 돌아오라는 말에 금새 밝은 표정이 되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달려간다. 듣지 말라는 말은 제발 들어달라는 말과 같다. 그가 자신에 대해 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곤란해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그가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생각은 않는다. 박도경에게 선물받은 스탠드를 보며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원래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변화무쌍한 표정이 즐겁다. 고작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수도 없이 표정이 바뀐다. 울다가 웃다가 화내고 토라지는 모든 각각의 다른 색을 띄며 화려하게 피어난다. 드라마의 초반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다양한 표정으로 울고 있던 처음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표정으로 설레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더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포기하려는 그 순간에조차 그냥오해영은 생기가 넘쳤다. 단지 한 가지 예쁜오해영과 함께 있을 때만 빼놓는다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예쁜오해영의 존재만으로 자신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한심해진다. 무가치해진다.
관계의 역전이다. 우열이 바뀐다. 예쁜오해영이 박도경을 떠난 이유가 밝혀졌다. 박도경의 마음은 예쁜오해영이 아닌 그냥오해영을 향하고 있었다. 박도경의 어머니인 허지야를 만나고 옛생각에 괴로워하는 예쁜오해영을 그냥오해영은 거부한다. 무심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이번에는 예쁜오해영이 상처받고 있었다. 곤란하다. 너무 착하다. 더구나 억울한 사정까지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쁜오해영 역시 무심했었다. 박도경과 그냥오해영의 관계를 오해하고 쏟아내는 넘어선 말들이 그냥오해영의 돌팔매에 적절히 끊긴다. 어떻게 전개될지. 결국 그냥오해영도 박도경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진짜 시작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그들은 자신의 진심과 마주해야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겨우 마음을 열었다. 아니 억지로 열렸다. 고백을 들어버렸다. 고백을 들은 사실을 알아 버렸다. 무시할 수 없다.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또한 그들의 진심이다. 고민은 부질없다. 갈등도 부질없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박도경의 예지처럼. 그냥오해영의 독백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사랑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예쁜오해영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것들을 품고 또 넘어서야만 한다.
딸의 방에 외간남자가 침입했는데 오히려 좋아한다. 딸의 방이 외간남자의 방과 문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 오히려 반가워한다.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단지 아들을 돈줄로만 여기는 허지야와 비교된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즐거운 것은 딸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딸의 행복이 부모를 당당하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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