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나에게 오늘밖에 없다면.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하기는 너무 당연한 질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대답 역시 어쩌면 뻔하게 들리기도 한다. 언젠가 반드시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기에 허무하기도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 그만큼 더 절박하고 절실하다. 차마 놓아 보낼 수 없는 간절함이 무엇도 가능하게 만든다. 어차피 오늘 이후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 편으로 박도경(에릭 분)이 차안에서 무심히 오해영(서현진 분)에게 건넨 한 마디는 내일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이 가볍지 않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이 급하지 않다. 오늘만 날이 아니다. 더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만들어고 싶다. 동생 박훈(허정민 분)과의 대립은 그를 위한 전조였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도 없다. 누군가는 내일을 살고 누군가는 오늘을 산다. 오늘만 사랑하려는 쉬운 여자 오해영과 내일도 사랑하려는 어려운 남자 박도경이 만난다.
어떻게 참았을까? 그동안 도대체 얼마나 억눌러 왔던 것일까? 이렇게 뜨겁다. 이렇게 격렬하다. 주체할 수 없이 사랑이 터질 듯 넘친다. 무모할 정도로 과격하다.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다. 한태진(이재윤 분)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독백이 맞았다. 자존심보다, 체면보다, 자신의 신념이나 약속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기꺼이 치른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사랑은.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쉬운 여자가 된다. 오늘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포기할 수 있다. 자신을 양보할 수 있다.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지켜나가며 사랑을 완성시킬까? 생각이 너무 많다. 결국 자신의 너무 많은 생각들이 이미 한 번 한 사람을 자신의 곁에서 떠나가도록 만들었다. 주위를 질리게 지치게 만들었다. 오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까운 미래에 자기가 사고를 달해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래서 오해영을 거부했다. 책임질 수 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결국 먼저 오해영에게 전화를 걸고 만다.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다. 하기는 어쩌면 박도경이 마지막 순간 오해영의 노골적인 유혹을 거절한 것도 내일이 없는 사랑에 대한 자기만의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내일이 온다면. 하지만 어차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을 박도경은 알고 있었다.
시간들이 밀려든다. 과거의 시간들이 오늘과 뒤섞인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담아낸다. 인간의 마음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예쁜오해영의 후회와 미련이 쪽팔림조차 무릅쓰는 그냥오해영의 무모함과 대비된다. 느닷없이 고개를 치미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박수경(예지원 분)은 아직 무작정 솔직해지지 못한다. 가려야 할 것도 따져야 하는 것도 많다. 그냥오해영은 그저 박도경과 함께 있는 순간이 좋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저 박도경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긴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박도경과 그의 박훈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 하나의 구제를 가지고 각각의 개성 만큼이나 풍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무엇이 후회를 남기는가. 무엇이 그토록 미련에 사로잡히도록 만드는가. 오늘만 있고, 혹은 내일만 있다. 내일이 없고 혹은 오늘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과 내일이 뒤섞인 채 살아간다. 오늘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내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 그냥 사랑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듯 사람은 항상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사랑에는 항상 후회가 뒤따른다. 아쉬움과 미련이 꼬리처럼 남는다. 한 걸음 다가선다. 언젠가 예정된 그 순간을 위해 오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의외의 또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문득 떠올랐다. 단지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지 그것이 언제 어디서인가는 구체적으로 집어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바로 내일일 수도 있고 아직 까마득한 먼 훗날의 일일 수도 있다. 아주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먼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고비를 넘는다고 바로 죽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이 마침내 내일을 오늘로 만든다.
역시 또한 전혀 뜻밖의 진실이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기보다는 단지 약한 것 뿐이었다. 겁도 많고 외로움도 많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항상 누구가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박도경의 아버지에게 쏟아내던 독한 말들도 단지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투정이었다. 솔직한 자신의 마음이 보답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 애써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 박도경의 어머니 허지야(남지애 분)의 이야기다. 자신과 결혼이야기까지 오가고 있는 장회장(강남길 분)을 박도경이 비난하자 애써 그를 위해 변명하는 모습이야 말로 지금껏 단지 돈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듯하던 인상에 대한 가장 큰 반전이었다. 자식들마저 돌아보지 않을 늙고 외로워진 이후의 자신의 삶을 걱정한다. 나름의 필사적인 발버둥이었을 터다.
창피한 것이야 잠시다. 어떤 수모도 굴욕도 결국 지나가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남겨진 것이다. 남겨지게 될 후회와 미련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진실한 감정이다. 비로소 오해영이 활짝 웃는다. 그녀의 앞에 바로 박도경이 있었다. 그 하나가 이 순간 오해영에게는 전부였다. 나중 일이야 나중에 맡긴다. 불길한 예감도 잠시 잊는다. 겨우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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