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원티드 - 언론과 인간의 날모습, 서로 꼬리를 문 뱀처럼

까칠부 2016. 7. 7. 05:15

어쩌면 이것이 아니었을까. 함께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료였다. 전부터 알았었고 지금도 범인을 잡는 장면을 직접 촬영하기 위해 함께 나와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런 동료가 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혀 목숨을 위협받는데 누군가는 그저 그 모습을 무심히 핸드폰카메라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방송을 위해 정혜인(김아중 분)의 진실을 폭로하고 형사인 차승인(지현우 분)의 과거를 이용하는데 동조했던 불과 얼마전 작가 연우신(박효주 분) 자신의 모습처럼.


그야말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과도 같다. PD 신동욱(엄태웅 분)으로부터 방송을 위해 지금껏 지켜왔던 비밀을 세상에 알리라 강요받던 정혜인이 이번에는 방송을 위해 오로지 자신만 믿으라던 형사 차승인의 과거를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떠올리는 것마저 힘들어하던 차승인의 아픈 과거가 처참한 시신의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다. 아직 살아있는 죽은 형사의 늙은 부모가 그 사진을 보게 될 것을 걱정하는 차승인의 외침은 그저 무심히 허무하게 방송실을 떠돌 뿐이었다. 차라리 유괴된 송현우를 찾아야 한다는 핑계가 그들을 더 노골적으로 더 솔직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방송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유괴범의 의도가 형사 오미옥(김선영 분)의 말처럼 특정한 인물들을 목표로 그들의 과거 잘못들을 까발려 단죄하는 것에 있다면 지금의 이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정혜인은 연기자다. 방송인이다. 첫번째 미션에서 아동학대로 체포되었던 김우진은 교수였고, 두번째 미션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불법임상실험을 한 사실이 밝혀졌던 하동민은 의사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7년 전 차승인과 오미옥도 모르게 어떤 사건을 뒤쫓다가 살해당한 김상식을 직접 살해한 살인범 조남철이 대상이었다. 아마 조남철 자신이기보다 조남철의 배후에 있는 김상식이 쫓고 있던 사건의 당사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정혜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인물들이 과거의 어떤 일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로 인한 피해자가 뒤늦게 그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작하려 한다. 생각한 것보다 더 음습하고 음울해졌다.


과연 정혜인까지 연루되어 있는 과거의 일이란 무엇인가. 과연 정혜인은 과거 누구와 어떤 잘못들을 저질렀던 것일까.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단지 조남철처럼 한 다리 건너,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접적으로 관계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혜인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한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이 끔찍한 사건들을 반복하며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드러난 단서들을 맞춰가며 추적해가는 수밖에 없다. 과연 유괴범이 약속한 10번의 미션이 모두 끝났을 때 어떤 진실이 모두의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모두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생방송 리얼리티쇼를 만들라 요구했던 것인지. 더구나 20%라고 하는 공중파라도 결코 쉽지 않은 높은 시청률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인지. 범인이 내건 조건인 20%의 시청률을 위해 너무나 솔직해져 있었다. 아예 유괴된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를 명분삼아 더 지독하게 시청률에 대한 탐욕을 노골화하고 있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정혜인 자신도 어머니라는 핑계로 시청률을 위해 자신을 향한 진심어린 선의마저 기꺼이 배신하고 만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원티드'라는 프로그램이야 말로 관련자들을 향한 가장 통렬한 복수일 수 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선의도 없고 악의도 없다. 어쩌면 오히려 무심하다. 서로의 입장만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충동과 욕구만이 존재한다. 본능이다. 뜻밖에 공중파드라마치고 등장인물들 사이에 교류나 교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함께 한 공간에 있는데 정작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따로다. 목표도 목적도 모두 따로다. 이래서야 누가 악역일지. 누가 범인일지. 누구에게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 어쩌면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인지.


뜻밖에 반전이 한 번 쯤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잔인하다. 그래서 슬프다. 무심을 가장한 분노가 그동안 그가 받아왔던 상처들을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남편이었다. 아버지였다. 그러나 무엇도 아니었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그들은 아무 사이도 아닐 터였다.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이 건넨 유전자검사결과를 가지고 SG그룹을 찾아가서 현우의 존재를 알린 뒤 도움을 청하라. 실제 그렇게 되었다. 단 한 번도 겉으로 보기야 어쨌든 아들 현우를 찾기 위해 정혜인이 자신에게 한 부탁들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연기가 너무 훌륭한 탓인지 의도한 위악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진실따위 아랑곳않는 언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진실을 핑계로 서로 다른 욕망을 쫓으려 할 뿐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남이었다. 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그들은 단지 남일 뿐이었다. 진실을 따위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의 날모습이다. 오로지 아이를 잃은 엄마 정혜인만이 외롭다. 아니 모든 인간이 그래서 외롭다. 오로지 타인으로서만 서로를 수단으로 방법으로 대한다. 정혜인의 모정만이 아직까지 남은 유일한 진심이다. 불길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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