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람이 떠나는 것은 돌아올 이유를 찾기 위함인지 모른다. 사람이 싸우는 것도 싸움을 끝낼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싸우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당장 싸움을 시작해야 할 이유가 더 크고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사람은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정작 싸움이 시작되고 어느새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 쯤 싸움을 끝낼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싸울 이유를 모두 싸움으로 쏟아내고 나면 남는 것은 싸우지 말아야 할 이유 뿐이다.
어느 순간 가까이 있는 것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익숙한 일상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갑작스레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타지에서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일탈을 누려보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 제목도 '공항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한 일상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지겨웠던 사람들마저 간절히 보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물론 아무리해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영영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문득문득 혹시라도 두 주인공 서도우(이상윤 분)와 최수아(김하늘 분)가 돌아갈 길을 잃을까봐 꼼꼼하게 표시를 해놓는 듯안 느낌마저 받는다. 여승무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즐기는 듯하던 박진석(신성록 분)은 뜻밖에 매우 엄격하고 냉정하게 선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 서은우(박서연 분)를 억지로 먼 외국으로 등떠밀어 내보내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던 냉혹한 엄마 김혜원(장혜진 분) 역시 자신의 딸에 대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것은 서도우 자신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딸에 대해 궁금해하고 하나씩 알아간다. 과연 그들의 앞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연히 서도우와 대화하던 도중 자신이 비행 직전 보았던 사고의 피해자 여학생이 서도우의 딸 서은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드는 것은 그것이 마치 어떤 운명의 예고처럼 여겨진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깊이 서로 얽혀 있었다.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부터 서도우의 딸의 죽음을 목격하며 그들은 깊은 인연으로 엮여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그럴 수도 없다. 혼자만의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도취에 빠지며 자기를 위로하고 연민한다. 단지 현실이 그만큼 고단하고 지루할 뿐. 힘들고 고통스러울 뿐. 그래서 아직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타인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다. 얼굴만 몇 번 보았을 뿐이었다. 마주하고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거의 없다. 그저 서로의 딸 효은(김환희 분)와 은우가 우연히 외국에 유학가서 같은 집에 머물렀던 인연이 전부였다. 서로의 딸을 매개로 몇 번 전화로 대화를 나눴고, 최수아가 은우의 짐들을 챙겨서 돌아오며 그를 매개로 잠시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풍경같은 것이다. 은우가 보았던 그 풍경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그저 막연히 문밖의 풍경만 바라본다. 하늘과 구름과 풀과 나무와 흐르는 강물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상관없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을 때 그마저도 잠시의 위로가 되기는 한다. 그저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무심했다. 친딸처럼 여긴다 말하지만 정작 딸이 직접 자주 만나러 가는 친아버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아내의 전남편이기도 하다. 오히려 어색하다.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굳이 묻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의 아내인데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한 번 쯤 물어 볼 법도 하다. 딸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굳이 직접 만나는 것은 무리더라도 딸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박진석과도 비슷하다. 박진석이 오로지 자기의 의도만을 강요한다면 서도우는 철저히 자신의 의도를 배제한다. 둘 다 결과는 같다. 그저 덮어두고만 있으면 상처는 곪고 썩어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잠시 먼 여행을 떠난다. 딱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점심 때까지는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저녁 때까지는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하룻밤 만큼. 일주일, 혹은 한 달, 일 년... 선배 사무장의 조언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무려 7박 8일이라는 긴 스케줄에 당황하는 최수아를 보며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모든 것에 만족할 수는 없다. 최수아의, 그리고 서도우의 여행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될까?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일상에 지친 그들의 표정에 웃음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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