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판타스틱 - 너무나 평범한 사랑과 결혼, 이소헤 쓰러지다

까칠부 2016. 10. 22. 05:10

어쩌면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상당히 오만이고 무례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 부럽기도 했었다. 자기가 죽을 때를 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한 발 앞서 준비할 수 있다. 


분명 자기가 선택한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자신의 모습만큼은 얼마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죽고 난 뒤 아직 세상에 남아있을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자기가 죽었다고 울지만 말고 그저 기쁘고 즐거운 일들만 떠올리며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떠나는 뒷모습을 직접 그려본다. 보다 멋지게. 보다 가치있게. 죽는 순간에조차 자신의 삶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과연 나도 그렇게 멋있게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


솔직히 조금 유치하기도 했다. 결국 기대는 것이 인터넷이다. 블로그에 일상의 사진을 올리고, 게시판에 폭로글을 남긴다. 어느 기자의 기사 하나가 상황을 아예 반전시키기도 한다. 하긴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는데 그런 사소한 주변의 일들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 말기암으로 항상 죽음과 손잡고 살아가는 자신에게 개연성이 어떻고 논리가 어떻고 따져봐야 그저 우스울 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실했고 마지막까지 진실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 그 진실을 볼수만 있다면. 그 진실을 마침내 알게 된다면. 꿈이기도 하다. 판타지다. 진실만이 오로지 모두를 구할 수 있다.


솔직해지려 한다. 충실하고자 한다. 자신의 삶에 아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도록. 이제 곧 자신과 마주할 죽음 앞에서 구차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순간 앞서 세상을 떠난 홍준기의 모습이 이소혜(김현주 분)의 뒤를 쫓고 있었다. 이소혜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죽음이며, 그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자신이기도 하다. 과연 자신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았는가. 오늘을 만족하게 살았는가. 자신도 홍준기처럼 슬픔이 아닌 웃음을 남기며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다. 나름대로 필사적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추억도 남기고. 가장 두려운 것은 할 수 있었으면서 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쯤 왔으면 결말이야 어찌되는 거의 상관없어진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애처롭거나 비장하기보다 오히려 해맑다. 원래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악착같이 발버둥치며 버티는 매순간이 곧 살아있는 이유이며 목적이 된다. 어느새 오늘로 바뀐 내일을 위해 산다. 내일은 오늘을 위한 선물이다. 최진숙(김정난 분)의 비열한 악의마저 결국 그 본질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여전히 그들은 행복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그저 잠시의 사소한 굴곡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이 곧 영원이다.


백설(박시연 분)과 김상욱(지수 분)의 싸움은 옛날이야기에서처럼 후련하지도 통쾌하지도 않다. 하긴 어차피 악이 여전히 악인 이유는 아직 누구도 그들을 악으로써 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를 수사해야 할 검찰마저 그들의 편에 선다. 정의로운 것도 영리한 것도 아닌 오로지 가진 자의 편에서 세상의 질서는 이루어진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가까이 한 사람이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얼마든지 오늘을 견딜 수 있다. 그 한 사람이 이유가 되어 준다. 정확히 그들의 싸움이 그들의 사이를 위한 이유가 되어 주고 있다. 아슬아슬 달달하던 사이가 한 순간에 벌써 오랜 연인들처럼 단단해진다. 


별로 대수럽지 않은 일상들이 이어진다. 평범한 매순간들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 아마 암이라는 전제가 깔리지 않았다면 벌써 지겨워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소소하고 시시한 일상이라고 하는 기적이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가장 행복해지려는 순간 예정된 시간이 다가온다. 그만큼 홍준기가 남기고 간 숙제를 충실히 풀었던 것일까. 대단한 노력 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다.


쓸데없는 디테일과 함께 그들은 하나가 된다. 매순간이 그를 위한 노력들의 결과다. 사랑하기 위해서, 감동하기 위해서,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자신은 자신의 삶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가. 행복해지기 위한 자격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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