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비로소 깨달은 진실, 추악한 비겁함과 이기

까칠부 2016. 11. 20. 05:10

마냥 믿는다는 것은 방치와 같다. 사람은 결코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당연히 완벽하지도 않다. 때로 힘에겨워 흔드리기도 하고 결국에 꺾이기도 한다. 어디선가는 자신도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저 믿으마 지켜보기만 한다면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해야만 한다. 잔인한 것이다. 자신이 약하고 무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든다.


당연히 좋은 것이 좋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는 것이 그보다 조금 덜 좋은 정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채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시간들을 막연히 기다리며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차라리 아주 나쁘다면 포기하기라도 한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면 포기할 수 있을 때까지 바꾸려 시도하기라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채로 그저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만 끊임없이 확인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옛사랑 한준희(정유미 분)가 도현우(이선균 분)를 쓰레기라 부르는 이유다. 그 모든 고통을 온전히 한준희에게만 떠맡기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해져야 한다. 강하지도 않은데 강해져야만 한다.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자신을 위한 조금의 여유조차 없이 그저 세상과 주위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악착같이 매순간을 살아가야만 한다. 휴식은 나태다. 여유는 사치다.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것은 타락이고 방종이다. 항상 근면하고 검소하고 겸허하게 엄격히 자신을 옭죄고 다그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바란다고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는 끊임없이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모멸감을 견디며 형벌과도 같은 시간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삶이고 무엇을 위한 삶일까?


무엇보다 자기가 행복해야 한다. 자기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데 당장 누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인가.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보며 행복해질 수 있는 누군가란 자신에게 무슨 의미일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이 그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것일까. 입은 옷까지 모두 벗어주고 벌거숭이가 되는 것은 성자의 사랑이지 일반인의 사랑이 아니다. 아니 설사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라 할지라도 벌거숭이가 되어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감정도 가지게 된다. 보는 이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것은 과연 온전히 사랑이기만 할까.


엄마로써 조금 소홀해도 엄마는 엄마다. 아내로써 조금 허술하다고 아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모든 엄마가 완벽할 수는 없다. 모든 아내가 완벽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별 문제없이 살아간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조금 모자르고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가족이기에 그런 서로에게 맞춰 적응하며 살아간다. 청소가 조금 덜 되어 있고 빨랫감이 밀려서 쌓여 있다고 못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서로에 대한 기대를 덜고 바람을 조금 던다면 그런 서로에게 맟추며 익숙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서로이고 자신들인 것이다. 완벽하지 않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시 작가로써 여성으로써 권보영(보아 분)이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그런 엄마이고 아내라고 사랑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들은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자기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역시 가족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장이다. 아내도 괜찮아야 한다. 아이도 괜찮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굳이 그런 고민따위 필요없었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벌고 집안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도 나가서 일을 한다. 온전히 아내로써 엄마로써 가정만 살필 수 없다. 아내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덜어주는 것도 결국 남편의 몫이다. 가장의 역할이다. 아직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아내가 먼저 마음대로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더 나쁘게 하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은 지금의 상태를 벌써 10년 넘게 계속되도록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잘못이다. 무심과 무지의 죄다. 아내가 스스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렸다.


도현우가 오래전 헤어진 옛애인 한준희를 만나야 했던 이유였다. 추억따위가 아니었다. 맞바람은 더욱 아니었다. 도현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가 한준희를 통해 확인한다. 그리고 과거 한준희에게 했던 그대로 지금의 아내에게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아내는 결국 엄마로써도 아내로써도 완벽하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나가 사는 동안에도 엄마로써 완벽할 수 없었다.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받아들이게 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싸우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서로 더 자세히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안되면 그때는 미련없이 새로운 출발을 하면 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도한 아내 정수연(송지효 분)의 죄가 중심에 있었다면 지난회부터 정수연을 그렇게 몰아간 - 정확히 방치했던 도현우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불합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장인 때문이다. 아직까지 가정에 대한 책임은 남자에게 더 무겁게 지워진다.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 성별에 따라 다른 반응이 돌아오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인형뽑기에 매달리는 도현우의 모습 역시 그런 의도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오로지 자기 세계에 갇혀 한 가지 목적만 생각한다. 정작 인형을 뽑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철저히 방치되어 있다.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학생이라고 사기치고 중고물품을 헐값에 사려다가 들키고는 바로 돌아서 도망치려던 권보영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아주 대놓고 커플이다. 아직 서로 상처가 아직 깊다. 서로의 배우자에게서 받은 상처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준영(이상엽 분)이 비로소 헤어진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위해 준비한 살림들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권보영은 그런 안준영의 물건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아내와 헤어진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이려 한다.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냥 딱 이대로 합치면 더하고 빼고 완벽하다. 러브코미디다운 알콩달콩한 장면들이 무거운 가운데 절로 웃음짓게 만든다.


친구 최윤기(김희원 분)의 바람인생에도 끝이 찾아오는 듯하다. 남편있는 여자를 유혹해서 오키나와로 여행간 그날 폭풍이 몰아치며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어도 그 상황에 남편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가로써 직무유기다. 섬뜩한 경고와 함께 아내는 친정으로 향한다. 여전히 물색모르는 최윤기는 아내가 없다는 사실에만 즐거워한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방탕에는 대가가 따른다. 폭풍의 전야다.


때로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진심이란 것이 있다. 그때 상황이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 때문에. 차분히 정리해 기록할 수 있는 글이라는 수단은 그래서 유용하다. 말은 즉흥적으로 내뱉어도 글은 쓰기 위해 최소 몇 가지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그만큼 걸러진다. 비로소 그동안 얽히고 꼬인 관계로 인해 듣지 못했던 남편의 진심을 전해듣는다. 다행히 글은 말과 달리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끝내야겠다 말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 시작할 수 있다.


굳이 드러내놓고 나쁜짓을 하지 않았기에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쁜짓을 하지 않은 대신 좋은 짓도 하지 않았다. 방치했다. 방임했다. 혼자서 견디게 했다. 끝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도록 내버려두고 말았다. 그때도 먼저 헤어지자 악역을 맡도록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다. 스스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 자신하고 있었다. 겨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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