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의문이었다. 강조가 거란군을 맞아서 검차를 사용해서 승리를 거뒀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검차를 사용해서 막강한 거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일까?
단서는 뜻밖에 무경칠서를 모아보겠다고 사들인 '이위공문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원문은 알아서 찾아보도록. 대충 제갈량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서진시대 마륭이 제갈량의 팔진도를 응용해서 선비족의 독발수기능의 반란을 토벌한 내용인데, 여기서 녹각거와 편상거라는 이름의 수레가 등장한다. 적의 움직임에 따라 두 가지 수레를 적절히 배치하여 상대한 결과 소수의 병력으로도 다수의 선비족을 토벌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이위공문대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이정은 자신이 개량한 육화진을 설명하며 이들 수레의 역할을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한 편 군진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설명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군진의 공방과 통솔이 이들 수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도 전통적으로 기병의 돌격에 대해 창병을 앞세워 저지선을 만드는 전술을 써오고 있었다. 창병이 기병의 돌격을 몸으로 막으면 뒤에서 검병이나 궁병, 총병들이 기병을 집중공격해서 돈좌시키고 섬멸한다.
고려사에 나오는 거란과 맞서서 강조가 검차를 일렬로 세워 싸웠다는 내용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전장환경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궁기병의 존재다. 말타고 활쏘는 것을 일상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창병과 궁병의 상성은 윌리엄 월레스의 전투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기동성이 떨어지는 창병은 기병이 활을 쏘며 치고빠지기만 해도 그냥 앉은 자리에서 꼼짝없이 녹아버린다. 적 기병의 돌격도 저지하면서 궁기병의 치고빠지기도 막아야 한다. 그래서 그 수단이 수레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아마 녹각거가 검차의 원형이지 않았을까.
대충 재현해보자면 이렇다. 군진의 곳곳에 검차라는 이름의 칼날을 세운 수레를 세워 거란 기병의 돌격을 막는다. 그리고 거란 기병의 돌격이 저지되면 뒤에 배치되어 있던 창수나 도검수, 혹은 궁수가 집중공격으로 적기병을 섬멸한다. 원래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전술이라기보다 당대에 이미 확립된 육화진의 영향이었을 테고, 뿌리를 거슬러가면 제갈량의 팔진도가 나오게 된다.
아무래도 촉은 위에 비해 말을 기르는데 불리하다. 촉에서 중원으로 나오기 위해 지나야 하는 좁고 험한 이동로는 더욱 기병의 기동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기병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당수 기병을 보유한, 더구나 병력마저 우세한 위군을 상대해야 한다. 또 하나 제갈량의 팔진도를 짐작케 하는 것이 4차 북벌 당시 노성에서 사마의와 회전을 벌이며 위연과 양의로 하여금 사마의군을 공격하도록 지시한 장면이다. 다시 말해 당시 제갈량과 사마의의 군은 상당히 대치를 이루고 있었으며 전황을 바꿀 변수로써 위연과 양의의 적극적인 공격이 필요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사마의는 그런 촉군의 공세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숫적으로 우위였을 사마의군이 철저히 제갈량군에 붙잡혀 있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제갈량은 조진과 사마의를 도발하여 야전을 유도하려 했었지 먼저 공세를 취하는 법이 없었다. 보병위주인 촉군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였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만큼 먼저 공세를 취하더라도 상대가 먼저 방비하기 쉬운데다 만일 팔진도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라면 전장까지 진을 유지하고 전진해가기가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전장으로 끌어내어 전투를 벌이기만 하면 확실하게 위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 사마의도 제갈량이 살아있는 동안 먼저 공격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육화진은 다시 송을 거치면서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척게광의 원앙진도 사실 팔진도의 응용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보병이고 단병접전에 능한 왜구를 상대하는 만큼 상대를 저지할 목적의 수레는 낭선이 대신하게 된다. 낭선으로 상대를 견제하고, 당파로 후방에서 적을 막고, 도검수와 창수가 적을 죽인다. 오위진도 사실 원리는 비슷하다. 제갈량 이후 동아시아 전술의 근간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벌써부터 고려가 거란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대기병전술을 수입해 무기까지 만들어 갖추고 있었다. 아마도. 의외의 곳에서 삼국지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