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권을 싫어한다. 차라리 도박은 나 자신의 실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은 있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실력을 탓하며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권은 그저 사놓고 기다려야만 한다. 나와 상관없는 곳에서 나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결과만을 기다리며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떨어지면 결국 돈만 날리는 것 아닌가. 복권의 당첨확률은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낮다.
하지만 사놓고 나니 알겠다. 당첨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로또를 사고 당첨금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혹시라도 이번에 우연으로 로또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까? 그런 기대도 없이 로또를 살 리 없지 않은가. 아주 희박해도 혹시 만약에 당첨될 가능성을 떠올렸을 것이기에 굳이 돈을 내고 복권을 사는 것이다. 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이 즐겁다. 최소한 꽝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로또 한 장으로 그런 꿈을 꿀 수 있다. 그것만으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은가.
요 몇 주 계속 우울했다. 몸도 아프고 의욕도 없었다. 자꾸만 안좋은 쪽으로 생각이 쏠려서 기분전환할 곳이 필요했다. 그보다는 그 연장이라 봐야 한다. 일하기 싫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로또라도 사볼까. 확실히 조금은 위로가 된다. 일부러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가능성은 희박해도 꿈이란 걸 꿔 볼 수 있다. 인간은 역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다. 꿈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고보면 참 얼마나 오랜 시간을 꿈없이 살고 있었는가.
새삼 깨달았다. 돈이 있어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없구나. 장사도 귀찮고, 집도 성가시고, 방도 너무 커봐야 청소하기만 번거롭다. 그저 조금 넓은 집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간 다음 쭈꾸미놈을 위한 방으로 꾸미고 놀고 먹을까. 그렇다고 대단한 걸 먹겠다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대충 놀고 먹는 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이유다. 사람이 말라간다. 나 자신의 현재를 알게 해 준다. 복권을 사는 이유다. 말라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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