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동정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꿈과 현실 가운데 현실을 선택했다. 그런 주제에 어설펐다. 아예 이를 앙다물고 매몰차게 꿈만을 쫓거나, 아니면 더 철저하게 현실에 자신을 맞추거나. 한 번 꺾은 자존심을 뒤늦게 되찾으려 하면 그 모양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지키지 못했으니 조롱과 경멸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덕분에 동생을 치료할 돈이 생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원래 산다는 자체가 그렇게 어설픈 것이니까. 준비할 틈도 없이 닥치고 결심도 하기 전에 저지르고 만다. 심사숙고한 결정이 아니었다. 그냥 순간의 충동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오로지 이기려 하는데 그만 객석에서 여동생이 응원하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여동생은 아팠다. 치료가 필요했다. 돈이 필요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예 져주겠다 결심한 상태에서 시합에 들어갔더라면. 이도저도 아닌 것이 결국 모든 것을 망치고 만다. 어설픈 연기는 바로 들통나고 이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만 한다. 댓가로 꿈을 접어야만 한다.
판타지로 넘어간다. 바로 경기장 앞에서 김탁수(김건우 분)를 돌려차기로 쓰러뜨리는 장면부터 판타지다. 나중에 원래는 고동만(박서준 분)이 낮술먹고 잠시 잠든 사이 꿈꾼 것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김탁수를 쓰러뜨리고,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상사에게 그만두겠다 선언하기도 하고. 확실히 지금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지금 기대고 있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어느것도 바뀌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족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적당히 매달 월급이 들어오고 충분하지는 않아도 큰 걱정없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길들여진다. 바로 그 익숙한 편한 일상을 한순간에 돌려차기로 부숴버리고 만다.
고동만과 최애라(김지원 분) 사이에 전혀 아무 진전도 없는 이유다. 지금이 편하지까. 당장 지금 이대로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혹시라도 더 나빠질 것을 걱정한다. 지금보다 더 안좋아질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이대로도 상관없다. 적당히 서로 더이상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그저 이웃해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늘 가장 가까운 곳에 서로의 모습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때라도 찾아가서 만날 수 있고 함께 있을 수 있다. 옆에 있을 수 있고 마주볼 수도 있다. 형식만 정식으로 사귀는 것이 아닐 뿐 이미 그들은 어느 연인보다 가깝게 편하게 서로와 함께 하고 있다. 일상을 깨뜨려야만 하는 이유다.
각각 자기만의 껍질에 갇혀 있다. 원래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어쩌면 억지로 자기에게 씌워진 껍질일 터였다. 안전하게 숨는다. 꽁꽁 자신을 감추고 그 안에 기대려 한다. 여기라면 괜찮아. 여기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 안에만 있으면 돼. 하지만 현실을 더 가혹하게 그들을 몰아친다. 더 깊숙이 들어가 고개도 내밀지 말고 꽁꽁 숨거나, 아니면 아예 껍질을 깨고 나와서 맞서거나.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받아야 한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라이벌의 등장이 관성에만 기대어 나태해져 있던 백설희(송하윤 분)의 위기감을 자극한다. 이대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채 비루하고 초라한 자신으로만 남아 있으면 김주만(안재홍 분)이 영영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고동만은 자신이 선택했던 자신을 얽매고 있던 틀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고 불안한 격투기의 꿈을 쫓기 위해 비로소 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여전히 최애라는 백화점 인포데스크라는 현실에 갇혀 있다. 아나운서를 향한 자신의 꿈마저 백화점 방송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침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익숙한 현실에 길들여지며 꿈이라는 단어마저 잊고 살아가는 수많은 또래들을 대신해서 어쩌면 그들은 이제부터 꿈이란 것을 꾸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가장 안정적인 현실 위애 있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김주만이다. 그러면 그가 부숴야 할 껍질과 진정한 자신의 꿈은 무엇일까?
고동만과 최애라의 너무도 뻔한 자신들만 모르는 관게가 내내 실없는 웃음을 흘리게 만든다. 누가 보더라도 둘의 사이가 어떤지 한 눈에 알겠는데 정작 자신들만 모른 채 멋대로 오해하고 단정짓고는 헤매고 있다. 나이라도 어리면. 아니 오히려 벌써 서른이 다가오기에 더 조심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앞서 쓴대로 그나마 지금의 관계마저 잃고 싶지 않다는 익숙해져버린 두려움 같은 것이다. 그 이상을 바라면서도 알아서 한계를 그어놓은 탓에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진 듯 괴로워하는 모습이 짓궂은 웃음마저 짓게 만든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어차피 저들은 행복할 사람들이다.
망가진다기보다는 평범하다. 그보다는 더 노골적으로 찌들어 있다. 박서준은 원래부터 생활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지는 배우라 여겼었는데, 김지원도 못지 않게 지독하게 찌들고 닳아버린 청춘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기를 가꿀 여유조차 없는 현실의 고단함과 가난함이 예쁜 것을 알면서도 예쁘다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지쳐 버스 손잡이에 기댄 직장여성들이 안쓰러운 이유와 같다. 반할 것 같다.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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