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저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이 무력하게 당하게 모습만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현실도 암담한데 드라마까지 막막하다. 그렇다고 현실을 치열하게 치밀하게 그려내는 타입의 드라마도 아니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까지 현실에서의 답답함을 또다시 느껴야 하는가? 마는가?
남궁민(한무영 역)을 믿었다.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 주어지는 배역 역시 배우로서 자신의 욕심보다 캐스팅하는 주체의 의도가 더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궁민에게 주어질만한 배역이란 어떤 것일까? 그래도 한 번 쯤 현실과 상관없이 시원하게 통쾌하게 만들어주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시청자를 마냥 기다리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뒷맛이 조금 씁쓸하기는 하다. 그렇게 사람들 눈이 무서웠으면 무엇하러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도망치다가 끝내 떨어져 죽을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사람들 눈을 의식할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대한일보가 개새끼들이라는 것이다. 블로그란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이런 때 좋다. 마음놓고 욕할 수 있다. 아, 개들에 미안하다. 벌레라는 욕도 미안하고, 그래도 똥은 거름으로라도 쓰고, 핵폐기물일까? 세상을 더럽게 오염시키는.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며 꺼리지 않아도 된다. 언론이 그 진실마저 모두 가려줄 테니까.
더구나 사람들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한무영 때문도, 권소라(엄지원 분) 때문도 아니었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박응모(박정학 분)라는 이름이 노출되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박응모라는 이름을, 그 얼굴을 알아 버리고 말았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단지 공소시효 만료로 풀려나고 말았다. 인신매매마저 바지사장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고는 자신은 무죄가 되어 풀려나 있었다. 더이상 박응모를 감싸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부담이다. 무엇보다 당장 자기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자 자신들과의 관계를 폭로하겠다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이 참에 제거하는 쪽이 나중을 위해서도 훨씬 더 깔끔하다. 그곳에 한무영의 형 한철호(오정세 분)를 살해한 범인도 함께 있었다. 그들이 진짜 범인이다. 그들이 박응모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죄책감마저 엉뚱한 좋은 사람들이 뒤집어써야 한다.
세상이란 이렇게 불공평한 것이다. 진짜 나쁜 놈들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르더라도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행에 빠뜨리고도 정작 자신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불행해진 이들을 굽어보며 비웃는다. 오히려 혐오하고 경멸한다. 그런데도 좋은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잘못에도 너무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더구나 자기의 책임마저 아닌데도 괜히 상처입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어쩌면 현실에서 나쁜 놈들에게 착한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더 쉽게 더 흔하게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에서도 결국 나쁜 놈들은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 좋은 사람들은 아주 드물게 그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너무 적나라하다. 괜히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과 그런 것 상관없이 아무렇지 않게 지금까지의 일상을 누리는 군상들이.
한 고비를 넘겨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원래 이런 타입의 드라마에서는 정석과 같은 구성이다. 오래전 박봉성의 만화를 떠올린다. 박응모를 넘었으니 다음은 박응모가 가지고 있던 달력의 주인을 쫓으려 한다. 사실 조금 빠른 느낌이 있었다. 박응모의 사무실에서 사라진 달력의 배포처를 찾으니 하필 대한일보 상무 구태원(문성근 분)과 많은 일들을 함께 꾸몄던 조영기(류승수 분)가 그곳의 대표로 있었다. 조영기를 잡으면 바로 구태원이다. 구태원마저 잡으면 그 뒤에, 그보다 더 높은 곳에 누가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 물론 아직 한무영 등은 조영기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박응모가 죽고 더이상 쫓을 단서가 사라졌으니 그저 막연히 쫓고 있을 뿐이다. 이번주는 아마 너무 빠를 테고 다음주쯤 뭔가 또 시원한 장면이 보여질까? 그렇게라도 박응모를 응징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맺히고 꼬인 어두운 통쾌함마저 느낀다. 법도 정의도 진실도 박응모와 같은 범죄자를 응징할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겠지.
바로 어제 '비밀의 숲'이 종영한 때문이었다. 이창준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라도 진실을 밝혀야 했던 한 검사의 깊은 후회와 갈망을 보았다. 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굳이 한무영까지 나서서 그런 무리한 일들을 꾸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제대로 범인을 잡아 법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시민들이 나서서 한 사람을 몰아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막힌 상황들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묘사였다. 돈있고 힘있는 사람에게는 검찰의 기소권조차 그들을 위한 면죄부가 되어준다. 검찰을 거치고 사법부를 거치면 아무리 큰 죄도 아예 없었던 것이 되거나 그나마 아주 작은 것이 되어 그들이 다시 당당히 세상으로 나오는 근거가 되어 준다. 검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언론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기레기들이 나서서 설치는 것이다. 그들이라도 나서야 아무거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내내 화나고, 그러면서도 저런 것이 현실이라 내내 답답해지고, 그나마 드라마니까 비틀린 통쾌함에 자괴감마저 느낀다. 사람 죽는 것 보면서 오히려 통쾌함을 느끼고 만다. 정상은 아닌데 어차피 세상이 벌써 비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저 눈감고 귀막고 진실을 외면했던 이석민(유준상 분)이 긴 잠에서 깨서 비로소 행동에 나서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쉽고 간단한 사실확인만 그때 해주었어도 이토록 오래 오해속에 살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기자의 기본을 말하고 있었다. 먼저 묻고 확인하고 그리고 사실만을 근거로 기사를 써야 한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실이 모든 것의 시작일 터였다.
과연 권소라 역시 검사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범죄자의 비웃음까지 받으며 무력하게 손놓고 물러나야 했었다. 검찰이 나서서 그 살인자를 보호해야 한다. 기자 나성식(박성훈 분) 역시 공범이다. 그 사실을 기자로서 세상에 알려야 했지만 차마 알리지 못했다. 자기가 눈감고 입다물지 않았다면 박응모는 그렇게 풀려날 수 없었다. 시청자도 그래서 공범이다. 시원한데 불편하다. 여름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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