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을 위협하는 것도 남성이지만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해주는 것도 남성이다. 하긴 재판에서도 같은 여성이면서 남성의 편에서 피해자를 곤경으로 내몰고 있었다. 특히 차장을 노린다는 여성은 스스로 하급자인 남성을 성추행하기도 했었다. 남성과 여성은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다만 스스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자기 책임일 것이다.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 물론 개인과 개인이 만나 아무도 모르게 나누는 대화야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개된 커뮤니티에서 일상적으로 농담처럼 잡답처럼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는 남성인 나조차 차마 낯부끄러워 보기 힘든 내용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말한다. 그런 것이 왜 문제인가. 어째서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대부분 남성중심 커뮤니티에서 미투에 대해 반발하는 이유다. 자기들도 그러고 있으니까.
이를테면 아마 어제 발표되어서 문제가 된 성범죄 무죄수사를 성범죄 수사와 동시에 진행하지 않겠다는 조치 역시 남성 중심 커뮤니티나 SNS등에서 오가던 정보에 기인한 것이다. 여성이 성범죄로 신고하면 무고죄로 역고소하라. 오히려 여성이 진짜 성범죄 피해자일수록 자신이 당한 수치와 굴욕을 피의자의 입장에서 수사받는 상황을 끝까지 견디기 힘들어질 것이다. 취하하거나 합의에 응하게 된다. 당연히 취하했으면 무고인 것이고, 합의에 응했으면 돈을 노린 꽃뱀이다. 잠시 같은 직장에 있던 인간 하나도 어린 시절 한 여중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그 부모와 합의했다고 그런 식으로 무용담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돈을 바라고 신고한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성폭행 자체는 사실이었다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이 성희롱하고 성추행하고 성폭행하는 그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이이고 딸일 것이란 생각 자체를 못할 테니까. 그런 점에서 또한 재판의 마지막 장면도 흥미로웠다. 성희롱 가해자인 부장의 아내가 변호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재판 내내 여성에 대한 모멸적이고 비하적인 발언을 늘어놓던 변호사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의뢰인인 부장의 성희롱을 변호한 만큼 스스로도 성추행을 일삼고 있었다. 부장판사인 한세상(성동일 분)도 집으로 돌아오면 역시나 성범죄에 노출된 두 딸과 아내가 있었다. 박차오름(고아라 분)은 스스로가 그같은 성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했었다. 당해보고 나니까 안다. 남성들이 일상으로 하는 그런 말과 행동들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되는가를.
그래서 결국 사람이 사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법이 아니다. 판사가 아니다. 검찰이나 경찰도 아니다. 미투가 아니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주제였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성희롱 재판 역시 다름아닌 사람이, 동료직원들이, 회사가 일찍부터 사람인 피해자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응원하고 싸워주었다면 처음부터 아예 열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다른 사정과 이유들에 구애되며 피해자는 버려지고 가해자도 방치된다. 계속해서 같은 피해가 발생한다. 법은 단지 그렇게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심판할 뿐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매우 어려운 시도일 것이다. 판사는 스스로 수사하지 않는다. 직접 사건에 개입해서 무언가를 하기 어렵다. 주어진 증거와 증언들만을 가지고 사실을 판단하고 법에 근거해 판결을 내릴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드라마가 된다. 그럼에도 더 옳은 판결을 내리기 위한 갈등과 고민과 투쟁을 담아낸다. 스릴러의 긴장은 없지만 진실의 칼날 위에 선 양심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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