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 - 어린아이의 무지와 무모함, 사고와 도전에 대해서

까칠부 2018. 8. 29. 07:09

내가 이래서 애새끼들을 싫어한다. 아주 잠깐은 귀여워해 줄 수 있지만 도저히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천지분간도 못하고,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의 근심걱정을 오히려 재미로만 여긴다. 그런 주제에 야단이라도 치면 뭐가 그리 억울한지 빽빽 울어대느라 사람 피곤케 만든다. 결국 예선우의 사고도 그런 아이놈들의 무지한 장난이 빚어낸 참사였다. 그런데도 장애가 남았다는 이유로 모두의 걱정을 받고 있었으니.


그런데 한 편으로 어른들이 하는 짓거리도 거의 비슷하다. 돈이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의사니까. 부모니까. 기자니까. 근심걱정 많은 어른들은 항상 변명으로 일관한다. 뭘 해도 되고 뭘 하면 안되고.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 가리지 않는다. 공이 있으니 가지고 논다. 운전 중인 차 안 이라도 공이 있으니 던지며 가지고 논다. 그 다음은 생각지 않는다. 두려울 것이 없는 재벌회장이나 두려움보다 다른 것을 먼저 떠올리고 마는 사람들이나. 생떼같은 자식이 어찌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겠다. 어떻게 무엇이 원인이 되어 죽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이대로 화장할 수는 없다. 자기 앞에서 환자가 죽었는데 죽은 원인이라도 알아야겠다. 자기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했으니 의사로서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다면 바로 정정해야 한다. 구승효만 중간에서 피곤하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사고치는 것은 거의 어린아이들이다. 그놈의 북극은 왜 가는가. 에베레스트산은 왜 오르는가. 마리아나 해구는 왜 내려가는가. 달에는 무엇한다고 가는가. 빛의 속도가 얼만지 도대체 알아서 무엇하려는가. 하긴 그래서 인류가 지금의 문명을 이루며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른이 되지 못한 유아기만 길어진 영장류라는 데서 찾기도 한다. 대부분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다 자라고 나면 버리게 되는 호기심이란 것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모하게 막막한 바다도 건너고, 메마른 사막을 가로지르며, 북극의 얼음을 넘어 대륙을 넘어가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를 넘어섰는지 모르겠다. 예선우의 사고와 어쩌면 어린아이와도 같은 예진우와 오세화 등 의사들의 행동을 대비하여 보는 것은. 부모이기에 그저 자식이 죽은 원인을 알고 싶은 마음과도 이어 보게 되는 것은.


문제는 재벌회장 역시 그런 부류라는 것이다. 두려운 것도 모르고 근심걱정이 뭔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고, 그러고자 하면 주위에서 먼저 알아서 움직여 준다. 필요없으면 잘라내면 된다. 거추장스러우면 치워버리면 된다. 그래도 전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어린 예선우의 장난에서 비롯된 사고처럼 예진우의 앞뒤 가리지 않은 행동이 그런 재벌회장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은 물론 주위에도 위기를 불러온다. 그 사실을 정작 예진우 자신은 모른다. 그나마 오세화만이 어렴풋 눈치채고 있다. 구승효만이 오로지 그들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그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는가. 무얼 할 수 있는데. 과연 예진우와 병원 의사들을 향한 화정그룹 회장의 분노에 구승효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악역은 화정그룹 회장이 모두 가져갔다. 구승효의 캐릭터가 많이 밋밋해진 이유다. 그렇다고 아직 선역은 아니다. 대자본인 화정그룹의 이기와 탐욕을 대신하는 역할일 뿐이다. 이노을마저 그런 구승효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러니까 구승효의 캐릭터가 지금처럼 밋밋해진 채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구승효가 병원과 의사들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려 한다면 여전히 화정그룹 회장의 대리인으로 남을 뿐이다. 물론 현실이라면 그쪽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이지 않은가.


예진우의 캐릭터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의 이유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예진우는 사회인으로서의 정의감이나 의사로서의 사명감보다는 그저 어른이 되지 못한 철부지의 불평불만만 가득한 모습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냥 싫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뒷일은 생각지 않는다. 주경문이 나서는 이유는 그런 예진우의 모습이 너무 불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너무 작다. 아직 너무 약하다. 그런 주제에 너무 무모하다. 그동안 병원장이 아버지 대신이었다면 이제는 주경문 교수가 아버지 대신이다.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라지 못한 탓에 그런 식으로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아버지만 찾게 되는 모양이다.


진짜 판이 커졌다. 이제는 굴지의 재벌을 상대해야 한다. 병원장 오세화마저 자신을 쫓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에 쫓겨 도망쳐야만 한다. 아직 일개 팰로우에 불과한 예진우가 감당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한 해피엔드다. 시청자를 위한 판타지다. 이노을을 실망시키고 떠나가게 만들었다. 한 번의 어긋남으로 구승효는 화정그룹의 회장으로부터 버려지려 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언론사보다 본연의 진실을 쫓고자 하는 이가 있다. 뭐 그래봐야 다 판타지다. 드라마는 꿈을 꾼다. 그래도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