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의 진짜 반전은 국가단위의 거대한 음모에 개인의 일상이 휘말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국가단위의 음모를 꾸미고 쫓는 비일상의 세계가 개인의 일상 한가운데서 있는대로 휘둘리고 있는 역설에 있을 것이다. 아줌마의 어쩌면 평범한 뻔뻔스런 거짓말에 음모의 하수인이 속아넘어가고, 다시 그 거짓말로 지켜낸 증거를 채용을 위한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다. 진정한 승자는 그런 평범한 개인들이 아닐까.
하긴 어차피 일상세계의 절대다수는 고애린과 같은 그저 평범한 개인들일 것이다. 이웃인 심은하나 봉선미처럼 조금 별나기는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개인들이 이 거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계에서 비일상의 세계에 살던 이들이란 그저 작은 이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김본이 아무리 정보원으로서 뛰어나도, 진용태가 아무리 뒷세계의 음모에 밝아도, 그러나 그런 거대한 세계의 질서 안에서 그들의 존재란 그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주인이다. 그들이 중심이다. 정작 가방가게의 주인은 국정원이고 국정원 요원들이지만 가방을 팔겠다는 고애린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청와대 요인마저 암살하며 국가단위의 음모를 꾸미는 진용태가 고작 평범한 아줌마 하나에 농락당하고, 국정원의 정예요원들이 그 아줌마 하나 어쩌지 못해서 있는대로 휘둘린다. 심지어 그 국정원의 집요한 추적마저 오랜동안 우습게 피해 왔던 정예요원 김본이 두 소란스런 아이들에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청와대 요인마저 아무도 모르게 암살한 프로암살자가 아파트의 주부들에게 그 의도를 제지당하고, 진용태의 교묘한 계획과 정체마저 그로 인해 노출될 위기에 놓인다. 그렇게 우스운가. 그렇게 한심한가. 그렇게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들이 대단한가.
주인공일 테리우스 김본이 정작 전혀 하는 일이 없기에 더 재미있는 것이다. 고애린 역시 엄밀히 아직 하는 일이 없다. 그냥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아이를 키우고, 그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취직해서 돈을 벌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거짓말도 하고. 그런데 그것이 국가단위의 음모에 대항해 발벗고 뛰는 김본이나 국정원 요원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그 복수까지 이루어내려는 듯 보인다. 뭐 이렇게까지 되는가. 황당하고 어이없으면서도 그 넉살스러움에 또 한 편으로 그냥 웃고 만다. 그래, 세상은 그렇게 한바탕 코미디와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정인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좋다. 얄미울 정도로 일상의 생활감이 죽죽 흘러내리고 있다. 때로 뻔뻔하고 때로 억척스럽고 때로 순진하고 때로 교활하기까지 한, 그러나 남편이 죽고 없는 지금 아이들 걱정으로 날을 지새는 수많은 아줌마 가운데 하나다. 그냥 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엔 어떤 사고로 저 대단한 인간들을 또다시 곤란하게 만들까. 얼마나 더 아줌마스럽게 저들을 난처한 상황으로 내몰까. 기대 이상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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