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 짧은 희망과 저마다의 길, 그리고 삶들

까칠부 2019. 6. 2. 07:07

당시 유럽과 미국을 제외하고 거의 일본에서만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는 존재감도 미미했던 천황의 존재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즉 쇼군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자 했던 당시의 지사들에게 천황의 존재는 쇼군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설 수 있는 명분이자 구심점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 천황은 수 백 년 만에 다시 바쿠후를 대신하여 일본이라는 천하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원래 권력이라는 것은 그를 지지해주는 세력이 있어야 존재도 유지도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혼자서 왕이라 주장한다고 없던 권력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래서 정당하게 왕으로 즉위했어도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도 지지하지도 않는다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 천황의 존재가 그랬었다. 명분상 그래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주인인데 심지어 일본 국민 가운데서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했었다. 국제적으로도 차라리 일본을 실제 지배하고 있는 쇼군을 왕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선에서도 지지기반이 약하면 아예 정종처럼 묘호조차 없이 왕취급도 못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지세력을 모아 세조나 인조처럼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도 했었던 것이었다. 왕권이 강하고 약하고는 그 지지기반이 얼마나 강하고 약한가에 비례한다. 즉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바쿠후를 타도하고자 했던 지사들의 세력이 강할 때 천황의 왕권은 바쿠후의 쇼군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당시 조선의 왕권은 심지어 세도정치기에조차 비할 수 없이 막강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영정조의 탕평 이후 조정에는 당파가 사라졌고, 당색에 따라 나뉘어져 있던 유림들 역시 조정을 중심으로 서열화되고 있었다. 왕과 가까우면 권력을 가지는 것이고 왕과 멀어지면 권력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안동 김씨든 풍양 조씨든 이후 등장하는 여흥 민씨든 결국 왕과의 혼인을 통해 왕의 척족이 됨으로써 왕권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들 세도가들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왕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었다. 가장 유력한 가문과 손을 잡음으로써 그들의 힘을 빌어 누구도 감히 자신의 권위를 넘보지 못하도록 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하던 조정에도 여전히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여기에 새롭게 여흥 민씨까지 공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흥선대원군의 권력 자체가 이들 세도가들의 결탁에 고종의 지지가 더해지며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고종이 생각을 바꾸고 이들 조정의 세력들이 등돌리자 명분없는 흥선대원군의 10년 권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면 고종과 이들 조정의 세도가들의 배후에는 또 어떤 세력과 존재가 있었을까?


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동학이 일어난 전라도와 같이 모든 기반이 사라진 상태라면 김학진처럼 동학과 손잡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동학과 손잡고 집강소를 설치하여 백성들이 바라는대로 함께 폐정을 개혁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관찰사로서 앞으로 호남 백성들의 민심을 달래며 그들을 다스려야 하는 처지였으니까. 하지만 당시 고종의 상황은 김학진과 크게 달랐고 따라서 굳이 동학과 손잡아야 할 당위나 절박함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지탱하는 기반인 세도가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뿌리이기도 한 기득권 양반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오히려 그같은 개혁을 요구하는 백성들을 도전자로 여기고 억압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화약의 결과로 받아들인 집강소가 전국적인 조직과 기구가 되고 그를 통해 내부에서의 개혁이 이루어지며 조선이 일신될 수 있었다면. 그를 통해 단합된 힘으로 외세에 맞설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당시 고종에게는 그같은 백성의 지지가 아니어도 세도가와 기득권 양반들의 지지가 탄탄했고 그들과 이해를 함께 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집강소도 필요없었고, 오히려 동학과 백성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었다. 나라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왕실의 내탕금으로 키운 정예병은 그런 농민들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더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집강소에 대한 황석주의 반발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백이현의 속내는 모르겠다. 과연 전봉준을 통해 새로운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인가. 아니면 이마저 하나의 과정인 것인가. 백이강도 송자인도 결국 자신의 갈 길을 찾아 헤어졌다. 백이강에게는 백이강의 길이, 송자인에게는 송자인의 길이 있다. 아버지와도 다르다. 더이상 조선의 앞날에 보부상이 설 자리 같은 것은 없다. 아버지 송봉길 역시 알면서도 차마 이대로 놓아버릴 수 없기에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것 뿐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저마다 길을 찾고 자리를 찾아간다. 그런 가운데 그런 변화를 막아서려는 이들도 나타나게 된다. 양심적이고 명망높던 선비 황석주가 양반으로서 기득권을 지키고자 나서는 모습은 그런 시대 속에 또하나 자신들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역사는 동학을 단죄했고, 양반들의 기득권을 지켰으며, 그리고 조선이라는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 막간인지 모른다. 어째서 동학은, 그리고 구한말의 역사는 실패했는가. 그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지는 않은가.


싸움은 끝났고 평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생겼다. 사람의 마음도 바뀌고 현실도 바뀌어간다. 하지만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시청자는 알게 된다. 마냥 이대로 행복할 수만 없다는 사실도 알 수밖에 없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인 까닭이다. 어쩔 수 없이 알아버린 진실 위로 저마다의 길과 저마다의 선택이,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수많은 사연과 감정들이 다가온다. 어찌되었든 이 순간의 간절함을 즐기며. 편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디테일이다. 드라마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