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흔한 소재일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와 우렁각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의 모든 것을 살피며 해결해주는 해결사, 구세주. 누구나 바라지 않을까? 그것이 이성이라면.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와 고도화된 인간의 이기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요구한다. 손해 볼 것. 손해를 보고 오해를 사면서도 끝까지 도와준다. 마지막 순간 진실을 깨닫는 것은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끝내 진실을 알지 못하면 그것대로 아름다운 비극일 테고.
어떻게 일이 그렇게 꼬이는가. 동생 이소진(오연서 분)으로 인해 유부남과 사귄다고 오해받고, 꽃뱀으로 몰려서 회사에서 쫓겨나는 지경에까지 몰리게 된다. 그런 때 진실을 밝히고 이소영(장나라 분)을 구하기 위해 무려 밤을 새워가며 당사자인 유부남을 찾아 나서는 최진욱(최다니엘 분). 그러나 그런 그의 선의는 해고당하고 회사를 나서는 이소영을 불러세워 다시 복직시켜준 지승일(류진 분)에 의해 가려지게 된다. 괜히 넉살좋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탓에 좋은 일 하고서도 욕만 들어먹는 최진욱은 정말 동정심이 생길 정도로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다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최다니엘의 능글맞은 연기의 힘일 것이다. 그는 정말 이 역할에 딱이다.
또 한 사람의 키다리 아저씨인 지승일. 그는 이소영에 대해 딱히 호감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있다면 동정심일까? 그보다는 객관적으로 사실을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에 옮기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그래서 지승일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실상 이소영을 괴롭히고 궁지로 모는 것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다. 당장 장기홍 과장(홍록기 분)이나 정미순 대리(손화령 분), 박나라 주임(유연지 분)등의 디자인실 직원들이 이소영을 특별히 미워해서 괴롭히고 하는 것은 아닐 터다. 그저 무관심이다. 진지하게 대하려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한 무심함이 오히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소영을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만다. 진지하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지켜봐주고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면. 원래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역할을 하는 것도 그런 한 사람이다. 백부장(김미경 분)이 바로 그런 사람이고 지승일이 또한 그런 사람이 될 터다. 지승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그가 남성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무엇보다 그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이소영의 옷차림을 살피고, 그녀의 신발을 보고, 그녀가 스케치한 디자인을 애써 훔쳐보려 노력한다. 그는 500원을 줍기 위해 자신의 집을 더럽히던 이소영의 땟국물 흐르던 맨발을 보았으며, 맨홀에 빠져 굽이 부러진 하이힐을 반대편 굽까지 부러뜨려 균형을 맞추고 걸어가던 초라한 뒷모습도 보았다. 모두가 오해하고 있는 이면의 진실을 보았고 그녀의 가치를 눈치채려 하고 있다. 일찍이 그녀로 하여금 임시직이나마 디자이너로 일하게 한 것도 지승일이었으며 쫓겨날 위기에서 최진욱보다 먼저 그녀를 구제해 준 것도 지승일이었을 터다.
그렇다고 지승일이 이소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친분에 따른 호감으로 이소영에게 호의를 베푸는 최진욱과 오히려 거리를 두고서 냉정하게 결과적으로 호의를 베풀게 되는 지승일, 무게가 다르다. 더구나 이소영처럼 쉽게 오해받고 스스로 좌절하여 포기하고 마는 경우라면 그렇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그 본질을 꿰뚫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차이라면 최진욱의 도움은 보이지 않는곳에서 이루어지지만 지승일의 도움은 보이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
흥미롭다는 것은 지승일의 캐릭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라기보다는 아버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디자인실 팀장 강윤서(김민서 분)의 접근에도 아예 거부조차 없이 무심한 모습은 남성이 거세된 아버지를 느끼게 한다. 하필 이번 5회에서 등장한 딸 현이(안서현 분)의 존재가 그같은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킨다. 남성이 아닌 아버지로서 오히려 이소영을 지켜보고 또 도와주는 존재. 그러고 보면 이소영의 집에 아버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설정은 있는데 나타난 바 없다.
아버지라고는 없이 철없는 동생 이소진만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존재와 직장 상사로써 비상하게 아버지의 이미지를 갖는 사장 지승일, 그리고 마치 철없는 막내동생처럼 투덜거리면서도 살갑게 누나를 최진욱. 미묘한 대비랄까? 집에서조차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이소영의 처지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이소영의 집은 역시 회사가 될까? 동안미녀 이소영 성공기?
흔한 아버지 같은 남자에게 동경을 느끼는 이소영이 이야기의 주제일까? 아니면 동생같은 최진욱에게서 남자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일까? 이제까지의 흐름으로 본다면 최진욱이 더 가까울 테지만 지승일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더 크다. 그에게서 거세된 남성만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아니 이소영에게 필요한 것이 남자가 아니기는 하다. 그는 남자가 아니다.
최진욱의 출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어디 이름난 족발집 아들이리라. 족발에 대해 너무 잘 안다. 그러면서도 족발을 싫어한다. 사과장사를 하다 보면 나중에는 사과 냄새조차 싫어질 때가 있다. 아마 족발집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차인 과거가 있으리라. 강윤서가 그 당사자였을까?
이소진에 대해서도 숨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그저 철없이 막나가는 그런 아가씨는 아니라는 뜻이리라. 흉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은 이소영의 어머니가 이소진을 편애하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는 듯하고. 사귀던 남자가 유부남인 것을 알았을 때 냉정하게 돌아서는 모습에서는 진심이 보였다. 오연서의 연기가 오버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 또한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것일까?
아무튼 어째 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김태원이 장나라에게서 어떤 슬픔을 느껴서 곡을 주었다더니만 볼수록 장나라만 보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좋은 일이란 없을 수 있을까? 되는 일이란 없고 철저하게 주위로부터 고립된 채 불행으로 내몰린다. 온갖 세상의 불행이 이소영만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이래서야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유쾌하고 즐거운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가능할까? 최다니엘의 상당한 수준의 코믹연기에도 불구하고 삐에로의 그것처럼 우울해지는 것은 그래서이리라.
다만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이소영이 술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장면은 어느 정도 반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서 이소영도 비로소 우울하게 주눅든 모습이 아닌 당차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설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이 우울한데 드라마에서까지 우울하기는 싫다. 오해도 유쾌하게, 엇갈림도 즐겁게, 궁지에 몰려서도 긍정할 수 있도록, 절망 속에서도 낙천할 수 있게끔. 하필 최근 로맨틱코미디가 주중 드라마를 휩쓸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가장 큰 불만이다.
조금 더 밝게. 즐겁게. 유쾌하게. 행복할 수 있도록.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너무 무겁다. 잿빛이 짙다. 기대하는 바가 생겼다. 지켜보려 한다. 아직은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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