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안미녀 - 원초적인 악녀 강윤서...

까칠부 2011. 5. 24. 09:02

어쩌면 드라마에서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순둥이같이 착하기만 한 주인공이라면 그런 악역이 있어주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을 안 된다고 주눅드어 움츠러 있기만 하는 이소영(장나라 분)에게 현이사(나영희 분)나 강윤서(김민서 분) 팀장과 같은 존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겠는가 말이다.

 

만일 강윤서가 이소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솔직하게 인정해 주었을 때 굳이 지승일(류진 분) 사장까지 나서서 그녀를 챙기고 했겠는가. 현이사가 고팀장을 시켜서 이소영의 디자인의 단가를 3만원으로 후려치려 했기에 최진욱(최다니엘 분)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콩쥐를 괴롭히는 못된 팥쥐와 팥쥐엄마가 있었기에 소와 두꺼비는 콩쥐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니일과 이라이자가 캔디에게 못되게 굴 때도 안소니가 있었고 테리우스가 있어주었다. 스테어와 아치는 참 불쌍한 존재들이다. 최후의 승자는 길버트 아저씨였다.

 

착하다는 것은 남들에 악의를 품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적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은 아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야심은 때로 욕심과 동일시되며 평온한 일상을 깨기 십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신해서 악의를 품고 다른 이들에 피해를 끼치는 악역의 존재다. 그들의 악의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가운데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서도 자신의 선량함을 과시한다. 최근의 추세는 유능함도 같이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역시나 최근의 또 다른 추세가 악역같지 않은 악역들이라는 것이. 실제 현재 방영중인 다른 로맨틱 코미디들에서도 이렇다 할 악역이라 할 만한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는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오유란은 차라리 불쌍한 존재고, <최고의 사랑>에서의 강세리도 악역이라기에는 순수함이 엿보이는 캐릭터다. <로맨틱 타운>에서도 그나마 주인공 노순금의 아버지 정도가 도박중독으로 주인공의 돈을 노리는 악역로 등장할까? 강건우는 그저 철없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동안미녀>의 현이사와 강윤서 팀장은 얼마나 명쾌한가.

 

항상 음모를 꾸민다. 뒤에서 일을 꾸민다. 곤란하게 만들려 하고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악의의 실체는 분명하고 그로 인해 당하는 주인공의 어려움 또한 확실하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승일과 최진욱을 비롯 주위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소영을 곤란에 빠뜨리는 존재로 여겨졌던 지주희(현영 분)가 결정적인 순간 그녀를 이소진으로 증언함으로써 강윤서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장면은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한가. 주책없은 민폐캐릭터로만 여겨졌는데 이소영의 진정한 친구였다.

 

바로 이것이 이 드라마의 재미일 것이다. 25살의 동생 이소진의 이름으로 임시직으로 채용되어 일하고 있는 이소영을 34살의 이소영 본인이라 의심하며 그것을 밝히려 지주희를 끌어들이는 강윤서에 대해, 사실을 밝혀 이소영을 곤란에 빠뜨릴 것이라 생각했던 지주희가 그녀를 이소진이라 박히는 그 장면이다. 그로 인해 이소영은 위기에서 벗어나고, 다행스러워하는 이소영에 비해 기대를 벗어난 상황에 강윤서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스러울 정도로 착하기만 해서 동정이 가는 주인공 이소영이다. 가만 있어도 잘 되었으면 싶은데 아주 못된 강윤서 같은 여자가 나타나서 더욱 못살게 군다. 더욱 이소영을 편들고 싶어지고 강윤서에 대해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그리 후련하다. 아마 그것은 현시에 욕하고 싶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한 것일 게다. 음모를 꾸미고, 나쁜 계획을 세우고, 그러나 그것이 틀어졌을 때 난처해하고 일그러지는 표정은 시청자 입장에서도 기쁨이다. 그래서 이소영이 잘 되었으면 그것도 기쁠 것이다.

 

진부하지만 진부하다는 자체가 그만큼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어 쓰여 온 구도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 쓰임이 성공적이었기에 나중에도 또 반복해서 쓰이는 것이다. 권선징악이란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주제이며, 권선징악을 위해서는 반드시 선과 더불어 악이 필요하다. 심지어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기억 못해도 신나게 욕하고 비난하던 악역에 대해서는 선명할 정도로 악역의 존재란 중요하다. 더구나 <동안미녀>와 같은 전형적인 미련할 정도로 착하고 순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는.

 

한 마디로 현이사와 강윤서 팀장 두 악역에 드라마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나 할까? 이들이 얼마나 악독하게 이소영을 괴롭히고 궁지로 내모느냐에 따라 시청율이 오르고 내릴 것이다. 물론 참신해야겠지. 진부하더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당연히 이소영의 승리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승일의 집에서 최진욱, 이소영, 강윤서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장면은 인상 깊다. 지승일과 최진욱이 이소영이 승리케 할 것이다.

 

아마 결국에는 지승일과 최진욱 또한 현이사와 강윤서로 인해 곤란에 빠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때는 이번에는 이소영이 나설 것이다. 아직은 나중에. 지금은 인큐베이터에 보호받으며 자라고 있는 중이다. 충분히 강윤서와 맞설 수 있을 때까지. 롤플레잉이 재미있는 것은 약한 주인공이 마침내는 누구보다 강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약한 것은 시청자 자신이며 강한 것은 시청자 자신의 꿈이다.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야 말로 최고가 아닐까.

 

전형적이지만 - 그래서 지겹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도 끝끝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현이사의 악의와 강윤서의 독기, 그리고 그 앞에 겁먹은 초식동물마냥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소영 때문에. 그래서 이소영은 더욱 순수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백지마냥 하얀 캐릭터여야 할 것이다. 현이사와 강윤서와 대비되기 위해서도. 그것이 처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더니만 지금은 장나라와 딱 어울리는 캐릭터가 되고 있다. 장나라의 눈에는 태생적인 슬픔이 있다. 아주 깨끗한 순수한 하얀 슬픔이다.

 

그리 불만스러워하면서 어느새 7회까지 보고 말았다. 에잇 재미없다 하면서도 7회를 보고 이제 8회를 기다리고 있다. 전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이번엔 어떤 일로 - 강윤서가 선남(박철민 분)에게 전화해 이소영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데 이건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이런 걸 두고 중독이라 하는 것일 게다. 진부한 것이 진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연히 잘 해결되겠지.

 

재미있다고 해야겠는가? 이것은 어쩌면 원초적인 이끌림일 터다. 본능 레벨에서의 당연한 이끌림일 것이다. 그냥 당연하게 본다. 그런 정도의 드라마다. 더욱 강윤서에게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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