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사랑 내곁에 - 사랑이 증오로, 악으로 바뀔 때...

까칠부 2011. 8. 1. 09:20

솔직히 조금은 실망이었다. 너무 뻔하다고나 할까? 고석빈(온주완 분)과 도미솔(이소연 분) 사이의 어색한 기색을 눈치채고, 고석빈의 핸드폰에서 도미솔의 사진을 찾아내며 두 사람의 사이를 의심한다. 그래서 도미솔을 원망하며 고석빈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 집착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상당히 일관되기도 하다. 악하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악에 빠져들게 되는가? 고석빈의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 역시 전혀 악의 없이 악에 물들고 만다. 그녀로 하여금 악에 물들도록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석빈에 대한 사랑일 터다. 고석빈에 대한 사랑이 그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 집착이 질투를 부르고, 질투가 다시 오해를 낳고, 오해가 증오를 키운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진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이미 자라나기 시작된 증오는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것조차 사랑이 아닌 증오에 의해서일 때. 그 증오조차 사실은 고석빈에 대한 사랑일 때. 그래서 더욱 도미솔을 원망하고 그녀를 증오하고 그녀를 방해하고자 부끄러움과 죄책감마저 저버릴 때. 하지만 조윤정의 시어머니인 배정자(이휘향 분) 역시 아들 고석빈에 대한 애정과 가난하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연민으로 악에 빠져들고 말았으므로.

 

선과 악의 경계란 사실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그러한 선과 악이 만나는 경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악인가? 넓은 쪽이 선이고 좁은 쪽이 악이다. 조윤정이 더 이상 고석빈의 말도 도미솔의 말도 들으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처럼. 배정자가 친구인 봉선아(김미숙 분)에 대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처럼. 강정혜(정혜선 분) 회장의 재산에 눈이 먼 - 그래서 심지어 그 재산이 이미 자기 것이라 착각하게 된 배정자에게 있어 봉선아도 자기와 같은 무리에 불과하다.

 

이제 더 이상 배정자에게 봉선아에 대한 우정이란 남아 있지 않다. 친구에 대한 연민이나 죄책감 역시 없다. 그나마 간간이 보이던 손자 봉영웅에 대한 애정이나 미련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지금쯤 그녀에게는 아들 고석빈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석빈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으로 괴로워하고 있는지 그녀는 알까? 단지 자신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욕망과 컴플렉스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아들을 위한다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자신조차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동정의 여지는 남아 있던 모습에서 이제는 도저히 돌아볼 가치조차 없는 명실상부한 악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양심에 대해 조금씩 속이고 양보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부끄러워하고 사양할 줄 아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마저 잃어버리게 되어 버린 때문이다. 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의 뻔뻔스런 모습이란. 그러나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의 과정들이 있었기에 배정자의 악역은 설득력을 갖는다. 절박하고 애처롭기까지 한 것으 보는 자신마저 욱신거리게 만든다. 어쩌면 저것은 나의 모습이기도 할까?

 

고석빈도 어느새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고. 조윤정 역시 고석빈과 같은 얼굴을 하게 되었다. 배정자가 아들을 이유로 하나씩 양보하고 포기하는 가운데 저런 모습이 되어 버렸다면, 고석빈은 어머니를 핑계삼아 지금의 모습을 정당화하고 있다. 도미솔은 어쩌면 그렇게 변해가는 고석빈이 부여잡고 있는 단 하나 남은 한 조각 양심일 것이다. 반면 조윤정의 고석빈에 대한 집착은 그러한 오롯한 순수가 남아 있는 사랑일까? 아니면 증오의 다른 표현일까?

 

조윤정과의 관계가 극단을 치달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는 것은 그러한 조윤정 앞에 고석빈의 아들까지 낳은 도미솔이란 더욱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은 고석빈의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고석빈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존재가 필요한데, 그러나 이미 오래전 도미솔은 고석빈의 아이를 낳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착이 증오로 바뀌었는데 그런 사정을 알았다고 이해하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고석빈, 조윤정 커플과 도미솔, 이소룡(이재윤 분) 커플은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도미솔이 이미 고등학교 시절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고석빈이라는 사실에 고민하던 이소룡은 아버지 이만수(김명국 분)의 조언을 받아들여 도미솔을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만 솔직하기로 한다.

 

증오와 사랑이 닮은 이유일 것이다. 미워하는데는 이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미워하고 나서는 이유란 필요없다. 좋아하는데도 이유는 필요하지만 좋아하고 나서는 이유란 더 이상 필요없다. 그같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을 때 왜곡됨이나 그늘짐 없이 서로의 마음은 전해지고 전해받게 된다. 어쩌면 바보같기까지 한 이소룡의 순수함과 도미솔의 우직한 강인함은 그래서 닮았다.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속이고 전하지 못한 채 안에서부터 변질되어가는 고석빈, 조윤정과는 다르다.

 

봉선아에 대해서도 진심이고 강정혜에 대해서도 진심이다. 죽은 아내 선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심이며 새로이 좋아하게 된 봉선아에 대해서도 진심이다. 강정혜가 끝내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이유일 것이다. 고석빈의 아버지 고진택(김일우 분)도 그렇고, 이소룡의 고모 이주리(이의정)이나 도미솔의 삼촌 봉우동(문천식 분)도 그렇고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갖는 순수일 터인데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게 되는 것.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봉우동을 만나러 가는 이주리를 모른체 해주는 이소룡의 어머니 최은희(김미경 분)이나 봉우동과 만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그것을 역시 못 본 체 모른 체 해 주는 이주리의 어머니 정말자(사미자 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진심이 왜곡되면 어떻게 되는가.

 

얼핏 도미솔과 이소룡의 가족이 보여주는 민폐성 코미디와 배정자와 고석빈 주위에서 나타나는 음습함의 이유일 것이다. 상당히 민폐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나쁘다기보다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 여전히 드라마를 쓴다며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이주리나, 일하기 싫어하면서도 이주리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게 된 봉우동이나.

 

의도한 것일까? 결국 그렇게 배정자가 몰아세운 끝에 고진국과 봉선아는 더욱 가까워지는 역효과만 내게 되고. 덕분에 강정혜 역시 극단적인 반대에 대한 반동으로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배정자는 더욱 악을 궁리하게 되고. 드라마의 주제를 '악녀 배정자의 일생'이라 정하면 어떨까? 더욱 흥미로워지는 배정자의 변화일 것이다.

 

아무튼 참 평이한 내용이었다. 중년이라는 것만 다를뿐 남자의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이라니.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환경과. 그렇게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고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도 중년이 그러니 또 새롭다.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기에. 가족이란 짐이며 또한 동지고 동반자다.

 

평이하지만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있어 긴장을 잃지 않는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있어 여전히 몰입하게 된다. 드라마란 단지 놀라움이 아니다. 놀라운 사건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다. 짜임새이고 완성도다. 제대로 만든 통속드라마일 것이다. 통속적이지만 속되지 않다. 좋다.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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