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주의 남자 - 그들은 단지 역사를 살아가려 할 뿐이다!

까칠부 2011. 8. 12. 09:56

원래 김승유(박시후 분)는 김종서(이순재 분)의 셋째아들로 실존인물이었다. 생몰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계유정난으로 김종서와 그 아들 김승규, 김승벽 및 서자인 석대, 목대, 손자 만동과 조동까지 모두 화를 당하는 중에도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김승유가 하필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으로 설정된 이유일 것이다. 언제 태어나 어떻게 살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계유정난과 세조의 찬탈이라는 역사의 격변 속에, 더구나 일가가 거의 멸족되다시피 하는 상황에 그의 이름만 기록 나오지 않는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면 과연 김승유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 참혹하던 시절을 어떻게 살다가 갔을까?

 

물론 남아있는 기록으로 김승유가 드라마에서와 같이 승정원 주서를 지냈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그것을 차용했다. 김종서의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 역시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다. 다만 김승유에게는 당시 처가 있었다. 여흥 민씨였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김효달이라는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처자식이 있고 그 후손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려 하다 보면 기왕에 훌륭한 소재인데 이야기에 제약이 생긴다. 이 부분은 제외한다.

 

어째서 그토록 경혜공주(홍수현 분)와 정종(이민우 분)에 대해 동정하며 심지어 주연을 바꾸라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과 요구가 있었음에도 제작진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정종이 죽는 것이 1457년이다. 계유정난이 원래 1453년에 있었으니 4년 뒤에 정종은 죽게 된다. 그것도 수양대군(김영철 분)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난 뒤 수양대군을 제거하려는 모의만 꾸미다 실패하고 두 차례의 유배 끝에 비참하게 거열형을 당해 죽는다. 그것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과연 그러한 사실들을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란 얼마나 될까? 정종이 죽고 나서 세조의 온정 아래 겨우 연명하는 경혜공주의 비참한 처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극이 갖는 한계다.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난에 성공할 것이고, 마침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여 단종과 정종을 죽이고 김종서의 말처럼 단종을 보위하려는 안평과 금성 두 아우와 사육신 등의 집현전 학사들을 무참히 살해하게 될 것이다. 김종서의 복수를 하겠다 일어난 이징옥의 난이나 이시애의 난도 결국은 진압된다. 결국 정해진 역사적 사실 안에서 그나마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인물 및 관계, 전개 등에 대해 재해석을 시도해 보는 것이 사극이 할 수 있는 전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넘어가면 더 이상 역사드라마가 아닌 단지 시대물이거나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드라마는 역사상의 인물이면서도 정작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적 사실과 그다지 충돌하지 않는 김승유라는 인물을 선택한 것이었다. 계유정난과 세조의 찬탈이라는 격변기와 멸족이라고 하는 참혹한 현실을 김승유라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캐릭터에 덧씌운 것이다. 김종서의 셋째 아들 김승유는 실존인물이지만 세령의 연인 김승유는 가상의 캐릭터다. 인물과 캐릭터의 차이랄까? 역사상 수양대군과 드라마의 수양대군도 상당히 다르다.

 

바로 이 드라마가 갖는 매력일 것이다. 경혜공주가 정종과 결혼하는 것이 드라마에서보다 1년 빠른 문종 1년인 1451년,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것도 드라마에서보다 한 해 늦은 단종 1년 1453년이다. 무엇보다 문종이 수양대군을 두려워했다거나 수양대군이 문종의 생전에도 노골적으로 왕위를 노렸다는 것 역시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신숙주가 수양대군의 편에 서게 된 것도 단종 즉위년인 1452년 명으로 함께 사신으로 갔다 오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경혜공주의 결혼이 한 해 늦춰지고, 계유정난이 한 해 빨라지면서, 더구나 수양대군이 이미 문종이 살아있을 때부터 세력을 과시하고 야심을 드러냄으로써 드라마는 더욱 긴박하게 빠른 호흡으로 흘러가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김승유와 세령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장차 겪게 될 역사의 격랑과 비련의 사랑이 드라마의 중심주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역사적인 맥락 자체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에 맞게 모든 사실들을 재구성하게 된다. 김승유의 처와 아들을 아예 드라마에서 배제한 것처럼. 실존인물이지만 가상의 캐릭터가 되어 버린 김승유와 마찬가지로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가상의 배경으로써 작용한다. 철저하게 김승유와 세령 두 사람을 중심으로.

 

당장 계유정난에 대해조차 수양대군이 임어을운(=임운, 유하준 분)를 재촉해 편지를 가져오게 하여 김종서로 하여금 그것을 보려는 사이 철퇴로 내리쳐 그를 죽인 것은 사실과 같다. 다만 그것은 김종서의 집이 아닌 김종서의 집 문 밖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빌미 역시 수양대군의 사모 뿔이 떨어져 그것을 김종서에게 빌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수양대군이 청이 있다 하여 편지를 보도록 한 것이었지 세령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치 세령으로 인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처럼. 결국은 세령이 갖는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결국 세령으로 인해 김승유의 부모와 형제가 죽었다.

 

아마 <공주의 남자> 주인공들에 대한 민폐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정해진 역사다. 고정된 사건으로 결과는 아미 나와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것은 수양대군의 야심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비극으로 끝나게 될 터다. 그런데 하물며 허구의 캐릭터 둘이 등장하여 그 한가운데서 그 비극과 직간접적으로 맞물려 있으니. 제작진이 지나치게 세심했던 데 따른 부작용이랄까? 적당히 얽히고 넘어가면 되는데 너무 역사 속에 깊이 들어가 버렸다. 더구나 모두가 비극으로 치닫는 비장한 상황에 그들은 드라마가 의도한 대로 전혀 예기치 않은 운명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누구도 축복해주지 않는 그들 자신에게도 비극인 사랑을.

 

사실은 계유정난이란 역사적 사건은 김승유와 세령에게도 비극일 터였다. 김승유는 부모와 형제, 가족을 잃었고, 세령은 그로 인해 김승유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더 큰 비극은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 한가운데에 있었고, 극적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건들을 그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결과 그들에게 그 비극의 모든 책임이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세령이 궁녀로 자신을 속였어도 그것을 이용해서 김종서를 제거하려던 것은 다름아닌 수양대군 자신이었다. 세령이 아니었어도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그의 일가족을 죽였을 것이다. 세령이 실존여부조차 불분명한 허구의 캐릭터인 것처럼. 역사는 그들과 상관없이 그래도 흘러가게 된다.

 

전체적으로 그렇다. 김승유와 세령은 마치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허깨비다. 실제 역사 안에서 그들의 역할이란 전혀 없다. 김승유와 세령이 없어도 역사는 역사대로 흘러간다. 당장 드라마에서 김승유와 세령을 지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나치게 몰입해 버린 탓에. 너무 쓸데없이 잘 만들어 버렸다. 마치 실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마냥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이 사람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면서 김승유와 세령마저 그 가운데 실재하는 것마냥 여기게 되고, 작가의 의도대로 김승유와 세령이 실제의 역사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여기며 그들에게 책임을 덧씌우게 되는 것이다. 부작용일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거대서사에 쉽게 몰입하는 한국 대중의 일반적인 성향도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지역, 어떤 직업을. 이를테면 누가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그가 누군가 하는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의 행동과 판단은 모두 그러한 소속한 집단의 서사로부터 나온다. 김승유이기 이전에 김종서의 아들이며 세령이기 이전에 수양대군의 딸이다. 경혜공주는 그런 점에서 문종의 딸이며 단종의 누이인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정종 역시 마찬가지다. 신면(송종호 분) 또한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오로지 김승유와 세령만이 서로의 부모는 아랑곳없는 듯 개인으로써 사랑을 하고 있으니. 사실 그것부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 제작진이 기획단계에서 오판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사멜로는 일반적으로 역사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거대서사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개인도 역시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명과 소명을 가지고 시대를 위해 그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고 또한 살아갔었다. 그에 비해 최근의 추세는 그로부터 한 발 물러난 개인으로 바뀌고 있다. 딱 <공주의 남자>다. 그것은 역사를 얼마나 객관화해 볼 수 있는가에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대중은 그러한 성향에 어울리는가.

 

말했듯 이미 끝난 사건이다. 벌어진 일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주인공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 흐름에 얹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해도 그러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주체이며 또한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거대담론에 희생되는 개인의 작은 서사들이다. 하지만 그러자면 개인이 먼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개인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논란이 불거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처럼.

 

드라마를 이해하는 핵심일 것이다. 실재했던 김승유는 역사속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속의 김승유는 역사와는 유리된, 그 역사마저 뒤틀며 튀어나온 상상의 존재다. 정해진 역사 속에 작가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었으며, 그를 통해 완결된 역사 속에 미완의 개인으로써 존재한다.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그러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오해도 줄어든다. 김승유는 실존인물이지만 역시 작가에 의해 창조된 드라마 속의 캐릭터다. 역사는 실재했으나 허구의 존재들이다.

 

분리가 필요하다. 완결된 역사적 사건과 실재했던 역사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과 만나고 얽히며 개인의 서사를 써나가는 허구의 주인공들. 전자는 객곽화하며 후자는 주관화한다. 어떻게 김승유와 세령이라는 허구의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미완의 서사가 역사라는 완결된 서사와 만나게 되는가. 역사와는 별개로써. 드라마가 이 둘을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뒤틀어 놓았듯이.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는 데에도 어느 정도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드라마가 더 재미있어지는 비결이다. 불필요한 논란도 없애는 방법이다.

 

하여튼 첫사랑에 정신 못차리는 소녀일 것이다. 어째서 처음 그리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이제 와서는 순종적인 조선의 여인으로 바뀌었는가? 경혜공주의 당시 나이가 17살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다. 진취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철이 없는 말괄량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길러져왔다. 다만 아직 어린 탓에 철이 없어 무모한 행동을 즐길 뿐. 하기는 지금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인가? 어릴 때는 다 그렇다. 그 무렵 필자는 또 얼마나 무모했을까?

 

김승유가 위험하다는 판단에 다른 생각따위 할 여지도 없이 담을 넘어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는 그 대담함에. 그러나 정작 김종서를 만나고 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생각도 않고 있었다. 광에 갇혀서는 오로지 김승유를 살려낼 생각에만. 사랑에 빠진 외곬수를 적절히 잘 묘사하고 있다고나 할까? 세령의 바보같은 순수함이 그런 캐릭터에 어울린다.

 

세령이 민폐라면 경혜공주도 민폐일 것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이 궐을 나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혜공주의 사저로 향하면 그때 김종서를 치고 단종을 확보하여 다른 반대파들을 몰살시키겠다. 그러나 동생인 단종을 보고 싶기에. 그리고 단종 역시 누이인 경혜공주가 보고 싶었기에.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다 그러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을 이용하려는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나쁜 놈들인 것이겠지. 하기는 세령은 수양대군의 딸일까? 어쨌거나 그들도 아직 어리고 무지하다.

 

마침내 계유정난은 시작되고. 김종서는 방심하다가 수양대군의 기습에 목숨을 잃는다. 김승유의 형 김승규 역시 기록에 나온대로 아버지 김종서를 몸으로 덮어 지키다 죽임을 당하고. 신면은 수양대군의 뜻을 쫓아 단종의 신변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면과 김승유의 우정을 믿으려 하는, 아니 김승유 역시 신면의 우정을 믿고 싶어 한다. 얼마나 가련한 청춘들인가.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무수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김승유는 과연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될까? 세령은 또한 어떤 운명 앞에 놓이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 그 운명에 대처하며 헤쳐나가게 될까? 여전히 순수하기만을 바라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현실에서.

 

참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다. 아니 지나치게 잘 만들어 버렸다. 배경이어야 할 역사가 너무 디테일하게 무겁게 만들어진 탓에 정작 중심이 그리로 쏠려 비틀거리고 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제대로 중심을 잡아 나가기를. 재미있었다. 평일 저녁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