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이란 캐릭터다. 그리고 경쟁이란 음악이 연주되는 그 순간에도 다른 음악이 항상 옆에 따라붙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음악 하나만이 아니다.
8월 27일 16강 첫번째 토너먼트에서 게이트플라워즈가 범한 실수일 것이다. 사람들이 게이트플라워즈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최소 27일 방송분을 통해 보여지는 나머지 세 팀이 있다.
게이트플라워즈라면 이런 음악을 할 것이다. 이런 음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영석 심사위원이 지루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게이트플라워즈는 그 순간 또다른 자기 자신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모든 프로음악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중들이 바로 자신에게 요구하는 어떤 기대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이제까지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지루하지 않도록 변화를 꾀해야 한다. 너무 같으면 지루하고, 너무 다르면 당황스럽다.
더구나 경연이었다. 누가 이기는가 하는 경쟁이었다. 100미터를 달릴 때 사람이 자기 혼자서만 달리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나 주위의 사람들에게나 함께 달리고 있는 다른 사람이 항상 떠오르기 마련이다. 지금 부르고 있는 음악은 내 음악이지만 그와 함께 나와 경쟁할 다른 사람의 음악도 함께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째서 <나는 가수다>는 때로 "나는 성대다"라는 말까지 듣고 마는가. 그 가수의 노래만 듣는 것이 아니다. 그 가수의 노래와 더불어 다른 가수의 노래도 듣는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가수의 노래도 함께 듣는다.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 내 노래를 들을 때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떠올리지 못하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하고 있을 때는 자연스레 내 노래가 들릴 수 있어야 한다. 이때도 역시 캐릭터가 강하면 유리하다.
자연스럽게 그 가수 하면 떠오르는 어떤 노래 스타일이 있다. 이 가수는 어떻게 부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연상도 강해진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을 때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현장에서도 아이씨사이다나 시크에 대한 호응이 더 높았던 이유였다. 그들은 그들의 캐릭터에 맞게 노래했다. 그리고 다른 출연자에 대한 인상을 모조리 날려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 순간 청중은 물론 심사위원마저 그래서 그들의 음악과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게이트플라워즈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게이트플라워즈라고 하는 캐릭터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출연자들을 압도할만한 강렬함도 보여주지 못했다. 최대한 억제한 담백한 사운드는 여러번 듣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경연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에는 미치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 순간 함께 떠오르고 마는 자기 자신과 다른 밴드의 음악에 밀렸다고나 할까?
아마 경연이라는 것이 갖는 한계일 것이다. 대중과의 접점에서 많은 음악인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조금씩 스며들어 듣게 되는 음악은 이제 유행이 지났다. 사람들은 항상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고 그만큼 세상에는 음악이 넘쳐나고 있다. 현실이 곧 경연장이다. 항상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음악들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8월 27일의 16강 첫 경연 가운데 가장 좋았던 무대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친 남자의 이야기였다. 때로는 오만하고 대로는 냉소적이며 때로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섬세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허세처럼 들려오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툭 던지듯. 기타는 조금 앞에, 베이스는 옆에 착 달라붙어서, 그리고 드럼이 뒤에서 조심스럽게 모두를 얼싸 않는다. 누구보다 강렬한 에너지로 질러대던 그들이었건만 이 순간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채 꾹꾹 눌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네 사람이 앉아 있다. 고개를 바짝 앞으로 내민 기타리스트 염승식과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보컬 박근홍, 베이스 유재인이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의 머리를 드럼 양종은이 짓궂게 올라타 누르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들. 그리고 진중하게 흘러드는 목소리.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그럼에도 결코 굽히지도 타협하지도 않을 음악에 대한 의지가. 눈이 빛난다. 마치 꿈꾸는 아이처럼 그 순간에도 그들은 앞으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혀 넘치지 않게. 그러나 격앙된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마치 그 순간만 별도의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경연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되지만 않았다면. 비교하기 전에 먼저 몸을 기울이고 귀를 집중해 들었다면. 그렇게 섬세했고 그렇게 집요했으며 그렇게 다정했다.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무척이나 신선했으며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게이트플라워즈였다. 자못 거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것이 경연일 테니까. 사실 번아웃하우스가 코치인 신해철과 내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게이트플라워즈도 위험할 수 있었다. 그만큼 게이트플라워즈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팀을 잊을 만큼 압도적인 힘도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자기 이야기만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그것으로도 필자는 만족할 수 있었지만 경연에서 과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가끔 최근 부쩍 늘고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에 대해 음악을 듣는 음악프로그램과 혼동하는 어떤 주장들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서바이벌이란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 음악에 심취하여 음악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바를 들으려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단지 경쟁하여 비교하고 판단하는 프로그램이다. 항상 서바이벌에 올려지는 음악에는 그래서 다른 음악들이 따라붙는다. 그 자신의 다른 음악이거나, 혹은 경쟁해야 할 누군가의 음악이거나. 음악만을 듣게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게이트플라워즈의 "마이웨이"는 경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고 편곡이었다 할 수 있다. 오로지 그 노래 한 곡만을 집중해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연이었기에 보다 강렬하면서도 자기 캐릭터에 충실한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캐릭터에 충실하면서도 또한 한 귀에 다른 이들과 비교되며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그런 강렬한 음악이 - 아마도 그들이 조별경연까지 들려주었던 그런 스타일의 음악일 터였다. 그것이라면 확실하게 경연에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터임에도 "마이웨이"와 같은 노래를 선곡할 수 있었던 자체가 게이트플라워즈다운 "마이웨이"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편곡 없이 솔직담백하게 원곡의 맛을 그대로 살려 자기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러한 용기야 말로. 아니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든 지든 이것이 우리의 음악이다. 나의 이야기다. 당당하다.
하긴 아이씨사이다나 시크나, 심지어 번아웃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기기 위한 선곡이 아니었다. 이길 수 있는 선곡을 코치들로부터 이미 들었음에도 그들은 자기만의 음악을 가지고 그것으로 승부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단지 그것이 게이트플라워즈에 비해 겉보기에 조금 더 경연에 유리하게 비쳐졌을 뿐.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 음악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음악일 것이기에.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가 아닌 게이트플라워즈의 "마이웨이"였지만, 역시 <TOP밴드> 모두를 위한 "마이웨이"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오로지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 한 길만을 가려는 그 고집이 "마이웨이"라는 노래와 그렇게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닮은 것이 게이트플라워즈였었다. 이제까지 없었던 그들만의, 그들 자신의 "마이웨이"였을 것이다.
물론 토너먼트인 이상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길 수 있는, 이기기 위한 그런 음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이런 것도 좋지 않겠는가. 솔직담백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도. 음악을 하는 열정만이 아닌 음악을 듣던 순수까지 일깨운다. 그저 소중하게 먼저 몸을 기울여 귀를 집중하던 그 시절의 간절함에 대해서도. 이겨 나가야 하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무거운 한 방이었다. 음악이란 겨루는 도구가 아닌 것을. 음악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소중하게 듣던 그 시절의 순수에 대해서도. 가만히 귀기울여 들으니 좋다. 음악 그 자체로써 들으려 한다. 음악 그 자체로써 좋아서 듣게 된다. 그런 음악들이 있다.
서바이벌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의 현실에 대해서도. 그래서 저들은 저 가혹한 생사의 경연장에 올라 서로 겨루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음악이 소중하고 간절하기에.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과연 음악을 듣고 있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다.
지극히 <TOP밴드>스러운 경연이었다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마이웨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예민한 것은 시청자 뿐일까? 아마도.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6
'TOP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P밴드 - 신해철과 번아웃하우스, 아마추어가 원래 자존심은 더 세다! (0) | 2011.08.30 |
---|---|
TOP밴드 - 원래 아마추어가 자존심은 더 세다... (0) | 2011.08.29 |
TOP밴드 - 신해철과 번아웃하우스, 그게 바로 밴드다! (0) | 2011.08.28 |
TOP밴드 - I Love LG!!!!!!!!!!!!!!! (0) | 2011.08.27 |
TOP밴드 팬은... (0) | 2011.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