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멍청하여 하는 일이 없을 때 흔히 혼군, 혹은 암군이라 부른다. 왕이 사리에 어둡고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와는 달리 폭군이란 능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무고한 이들을 함부로 죽일 때 붙이는 이름이다. 대개는 이 둘이 함께 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별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왜 세조가 폭군인가? 결정적으로 조카인 선왕 단종을 죽였다. 형제인 양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였다. 집현전 학사들도 죽였다. 금성대군을 죽이던 2차단종복위운동 때에는 순천부 백성마저 수천을 학살하고 있었다. 세조가 찬탈을 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죽음이었다. 과연 그토록 무수한 피를 흘려가며 쌓아올려야 했을 치적이란 무엇이었던가? 여기에서 세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세조가 조선사회에 뿌린 두 개의 독, 하나는 명종대까지 왕권마저 위협하며 전횡을 일삼던 공신들의 훈구세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 훈구세력과 지방의 유지들을 포섭하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한 탓에 조선의 재정이 취약해진 것이었다. 연분구등의 원칙이 무너지고 모든 전세가 하지하로 통일된 것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관리들에게 녹봉으로 지급할 토지는 공신들이 다 가져가고,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여야 할 세금도 줄이고, 더구나 백성들의 토지마저 공신들이 약탈하여 겸병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같은 모순된 현실에 도전하던 사림들이 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무수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숙부를 때려죽인 홍윤성조차 공신이라는 이유로 그 죄를 묻지 않았다. 무고한 백성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함부로 죽였음에도 홍윤성을 비롯한 공신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세조의 왕권강화란 그러한 공신들에 대한 방치를 통한 그들의 지지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세조가 죽고 난 이후 공신들은 고스란히 조선의 경제와 정치, 사회를 장악한 채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연산군의 폐정이 바로 그 연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어진 중종반정과. 그러니까 공신이라는 이유로 백성의 재산을 빼앗고 목숨까지 빼앗은 이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중요한 세조가 폭군이 아니라는 뜻인가?
폭군이란 능력이 없어 폭군이 아니다. 한 일이 없어서 폭군도 아니다. 하는 일이 무도하여 폭군인 것이다. 조카를 내쫓아 죽이고, 동생과 조카사위를 죽이고, 고락을 함께 하던 집현전을 비롯한 유학자들을 죽이고, 백성을 죽이고, 백성을 죽이는 공신을 방치하고. 과연 세조는 명군이라 할 수 있을까?
세조의 업적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어차피 모든 정치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세조가 조선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생각한다면, 세조 이후 조선사회가 사실상 정체되기 시작되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조를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가?
어째서 당시 세조의 찬탈과 관련해 전해지는 민담이나 야사가 하나같이 세조에 대해 부정적인가? 그것이 당시의 여론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이러쿵저러쿵해봐야 당시의 인식이 그러했다. 단지 세조 자신이 이미 왕이었고, 그 후손이 수백년간 왕위에 있다 보니 그 평가에 있어서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세조가 한 행위만 놓고 보았을 때 그 평가란 어떠한가?
유리한 부분은 부각시키고, 불리한 부분은 애써 숨기거나 축소하고, 그러고서도 역사의 객관성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왔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무리하게 세조에 대한 변명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통은 아닌 것 같은데. 흥미롭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뿌리깊은 나무 - 태종과 세종에 대한 새로운 해석... (0) | 2011.10.06 |
---|---|
공주의 남자 마지막회는... (0) | 2011.10.06 |
계백 - 무왕과 의자, 왕이라는 것에 대해서... (0) | 2011.10.05 |
포세이돈 - 최희곤과 흑사회가 보이지 않는다! (0) | 2011.10.05 |
공주의 남자 - 김종서가 충신이 된 이유... (0) | 201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