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일어나기 시작한 인디운동은 다름아닌 자본과 결합한 록의 변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자본과 결합한 록이 잘못인가? 그건 아니었다. 어찌되었거나 모두가 즐겨 듣는 대중음악이었으니까. 그러나 더 많은 록음악인들은 보다 순수한 음악적 지향점 자체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자신의 음악을.
그래서 당시 인디음악인들이 주목했던 것이 초창기 개라지록이었다. 말 그대로 동네꼬마들이 창고에 모여 툭탁거리며 만든 이론도 기본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거칠지만 순수한 흠악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인디음악인들은 그 어떤 자본과 미디어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자신들의 음악을 꿈꾸었다. 90년대 미국의 얼터너티브나 역시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브릿팝은 그 정점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인디정신이란 그런 것이다. 순수함. 대중적 인기도, 물질적 풍요도, 어떠한 명성도 거부한 음악 그 자체다. 자신이 서는 무대, 무대에서 만나는 관객, 그리고 음악.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상업적인 성공이 그의 영혼을 옭죄어 자살로 이르고 만 커트 코베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무척 섬세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톡식이 아예 메이저 기획사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예리밴드, 아이씨사이다 등의 친분이 있는 밴드들과 손을 잡고 DMZ라는 인디레이블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조금 실망이기는 했다. <TOP밴드>란 밴드음악인들의 축제인 동시에 침체되어 있는 밴드음악을 주류무대로 끌어올릴 스타밴드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었다. 톡식은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스타성이 높았던 빅밴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그런 밴드였다. 그런데 인디레이블이라니.
하지만 그런 것이 바로 인디정신이니까. 밴드라고 하는 것이다. 배철수가 말한대로 밴드란 하나의 단위다. 음악의 단위다. 밴드로부터 생산되고 밴드로부터 소비된다. 독립적이라는 것은 비타협적이라는 말도 포함된다. 서로 음악적 지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순수하게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만을 할 수 있는 레이블을 만든다. 그들은 진정한 밴드다.
솔직히 놀랐다. 물론 장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거대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반드시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막대한 계약금과 더불어 보장된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다. 대중에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보장된 길을 외면하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간다. 필자가 <TOP밴드>를 통해서 본 톡식은 진짜였다.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홀로 개척해갈 수 있는 진취성과 강함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성공에 이끌려 거대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주류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이 진짜인 이상 그들의 성공은 바로 밴드음악을 주류무대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무대를 고집하고 추구한다. 어차피 대한민국 밴드음악의 현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굳이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올곧은 음악인들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밴드음악의 미래를 밝혀주는 좋은 전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그래서 밴드음악을 하는 것일 터다. 메이저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서도, 그토록 현실에 치이며 고단하게 음악을 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못하는 것일 게다. <TOP밴드>를 보면서도 가장 감동한 것이 바로 그런 순수함. 다른 무엇보다 무대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그대로 즐길 줄 아는 밴드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야말로 밴드, TOP밴드일 것이다.
아쉽지만 멋진 소식이었다. 결국 스타밴드의 출현에 따른 밴드음악의 견인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은 유니버셜과 계약한 액시즈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 역시 젊고 매력적이고 재능과 가능성이 넘치는 밴드일 것이다. 비록 더 훌륭한 밴드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젊음이란 언제나 가장 강력한 무기들일 것이다. 톡식은 자기 갈 길을 정했다면 그 길을 묵묵히 후회없이 가면 된다. 언제고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 더 멋진 모습으로. 그것을 기대한다.
브로큰발렌타인의 단독콘서트와 이제 다시 게이트플라워즈의 단독콘서트, 하비누아주, POE, 제이파워, 번아웃하우스, 블루니어마더, 2STAY,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게 될 밴드들일 것이다. 역시 다시 무대에서 만나기를 기약한다. 인연이란 우연이며 필연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잊지 않는다. 톡식의 선택을 존중한다. 기쁘다. 더욱 기쁘게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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